“갈 길을 찾아 국자 위에서 버둥거리는 물방개를 본 일이 있는가? 좋은 경품 놔두고 '꽝'만을 찾아다니는 쇠 대야 안의 물방개. 나는 꽝이 아니라 잉어를 타고 싶다.”
어릴 때 학교 앞에는 갖가지 야바위꾼들이 나를 유혹했다. 특히 물방개의 유혹은 강렬했다. ‘스뎅대야’에는 찰랑찰랑 물이 담겼다. 도톰한 물방개는 그 안에서 자유형을 즐겼다. 대야 안쪽은 물방개가 들어갈 만한 크기로 자잘하게 칸막이가 나눠져 있고, 칸막이마다 검정 매직으로 ‘잉어·꽝·용·꽝·단검·꽝·호랑이·꽝’이라고 쓰여 있다. 말하자면 운명의 수레바퀴, 운명의 칸막이들. 대야 한가운데는 물방개를 투입하는 ‘홀’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설탕을 녹여 만든, 그러나 잡히기만 하면 「월간낚시」 붕어 표지모델이 분명한 잉어한테서 비릿한 냄새마저 풍겨왔던 것 같다. 물방개는 좌로, 우로, 좌로, 우로... 결국에는 꽝을 향해 헤엄친다. 돈을 날린 아이는 물방개의 자유의지를 의심한다. 훈련받은 물방개에게 당했다며 야바위꾼을 원망한다. - 김종찬 글.
徧(편)은 영향이 두루 미치는 것이고, 用(용)은 작용하는 능력을 말한다. 도덕경 제43장 徧用(편용-두루 쓰이다)에서는 두루 작용하는 道의 실체를 언급하였다. 도덕경 주석에 있어 최고봉이라 하는 하상공(河上公)은 漢나라 사람으로 이름과 생졸년은 알 수 없다. 황하 물가에서 초가집을 짓고 살았는데, 존칭(公)을 붙여 그렇게 불렀다. 그는 ‘가장 유약하고 유순한 그것’을 ‘물’이라 했는데, 이견이 없다. “지극히 부드러운 것은 물이다. 지극히 견고한 것은 쇠와 돌이다. 물은 견고함을 뚫고 굳셈에 잘 들어가 통하지 않는 바가 없다.(至柔者水也. 旨堅者金石也. 水能貫堅入剛 無所不通).” 제8장에서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고 하였다(上善若水).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자기의 공을 다투지 않고, 어느 한쪽에 기울지 않으며, 가장 낮은 자리에 고여 있다. 가장 약하지만 가장 강한 금석을 자르고 녹이는 물, 그것은 도의 형상形相이다. 제78장에서는 구체적으로 ‘세상에서 물보다 더 부드럽고 여린 것은 없다’고 못박았다.
천하를 통틀어 가장 부드럽고 약한 것이 천하에서 가장 굳고 단단한 것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 형상이 없는 것이 틈이 없는 것 속으로 파고 들어갈 수 있다. 그렇기에 나는 무위를 따르는 것이 가장 이로움을 안다. 말 없는 가르침과 무위의 유익함에 있어서 천하에 아무것도 따라갈 것이 없다.
①扁(넓적할 편)은 대문(戶호)에 거는 대나무액자(冊책)을 표현하였다. ②彳(척)은 사거리(行)의 한쪽 부분을 그린 것이지만, 실제로는 辶(착)과 함께 ‘가다/움직이다’는 뜻으로 쓴다. ③徧/遍(편)은 길을 따라 문물이 전달되는 것처럼 어떠한 영향이나 작용이 두루 미치는 것을 뜻한다.
생물학자 조복성의 수필 「물방개가 돈벌이로 등단」은 제2차 대전으로 인해 노역에 시달리다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때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온 사람이 많았다. 서울로 모여든 사람들, 좌익과 우익이라는 갈등으로 물방개처럼 어디로 가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관함식에 참가한 한국 해군이 욱일기를 단 일본 호위함을 향해 경례하는 일이 벌어졌다. 과거사 반성 없는 그들과의 공조는 ‘꽝’을 향해 헤엄치는 물방개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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