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용석의 지구촌./인천일보DB

세계에서 의회민주주의를 처음으로 시작한 영국 선거를 현지에서 취재하고 기사를 쓴 것은 1970년이었다. 650명의 하원의원을 뽑는 선거는 6년간 집권한 노동당의 해럴드 윌슨과 이에 도전하는 보수당의 에드워드 히스 간의 대결이었다. 노동당의 장기집권을 기필코 저지하겠다는 보수당과 재집권 의지가 충만한 노동당 간의 대결은 특히 중도 성향이 짙은 선거구에서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군중들 앞에서 열변을 토하는 대신 영국의 하원의원 선거는 외면상으로는 조용하게 보였다. 그러나 양당 대표는 보수당과 노동당 지지수가 비슷한 선거구에서는 불과 몇 백 표 차이로 당선자가 결정됨으로 열전을 벌리고 있었다. 노동당 윌슨 당수는 런던의 중산층 교외지역 선거구 일포드(Ilford)에서 하루에 무려 20여회의 실내 모임에서의 대담과 연설을 강행하고 있었다. 보수당의 에드워드 히스 당수도 런던의 부촌으로 알려진 푸트니(Putney) 지역에서 15회의 실내 모임을 주재하고 있었다. 그 해 하원의원 선거에서는 보수당이 다수당이 되어 히스가 수상으로 취임했다.

▶그로부터 9년 후 보수당 후보로 총리가 된 마가렛 대처는 1970년대 영국의 혼란했던 시대를 정리하고 이른바 '대처리즘'으로 1980년대를 새롭게 연 영국 그리고 유럽 최초의 여성 총리로 꼽힌다. 영국 역사상 11년간 최장기 집권을 한 총리로도 꼽히는 대처 수상을 처음으로 가까이서 본 것은 1984년 시작된 전국광부연합(NUM)의 파업때였다. 두 번재 프랑스 주재 유럽 특파원 임기를 끝내고 귀국 준비를 하고 있던 중 대규모 전국 파업에 대처하는 대처 수상을 다우닝가 10번지 수상 관저와 기자회견 등을 통해 취재했던 것은 또 다른 체험이었다.

▶대처는 그 동안 노동당 정부가 고수해왔던 기간 산업의 국유화와 복지정책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민간의 자율적 경제 활동을 중요시하는 경제개혁을 추진했다. 광부연합의 전국 파업을 적자가 나는 광산은 폐광한다는 단호한 결단으로 중지시켰던 대처는 보기 드문 강골 인상의 여성 정치인이었다. 대처는 복지예산 삭감과 세금 인하와 노동 조합의 활동규제 및 금융시장의 활성화와 작은 정부 실현 등으로 영국경제를 회복시킨 대처리즘의 창시자가 되었다.

▶그로부터 30년 후 세 번째 영국의 여성 총리가 된 리즈 트러스는 옥스퍼드 대학 출신에 35세에 하원의원이 되어 외무, 법무, 교육, 환경, 국제통상 등 5개 부처 장관직을 역임하고 지난 9월 영국 최초로 40대 여성 총리가 되었다. 취임 초부터 '철의 여인'으로 호칭되었던 대처 총리처럼 강단 있는 자세로 추락하고 있는 보수당의 신뢰를 되살려 줄 것으로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대규모 감세 정책을 부적절한 재무장관에게 맡겼다가 44일만에 사임하면서 영국은 최장수 그리고 최단명 여성 총리를 배출한 국가로 꼽히게 되었다.

▲ 신용석 언론인.<br>
▲ 신용석 언론인.

/신용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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