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7일 국립세종수목원에서 엽사들에 의해 동원하여 고라니 12마리가 사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수목원 측은 직원들이 정성스럽게 기른 튤립과 국화, 사철나무, 측백나무 등을 고라니들이 먹어치웠기에 수목 보호 차원에서 이러한 조치를 했다고 밝혔다. 이 소식을 들은 정의당과 환경단체는 수목원이 식재된 수목과 화초가 훼손된다는 이유로 고라니를 사살한 것은 “생명 가치를 존중해야 할 공공기관으로서 본분을 망각한 행위”라고 규탄하였으며, 수목원장의 즉각적인 사과와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요구하였다.
고라니 사살에 대한 시민들의 반발여론이 급속히 번지자 수목원장은 엿새 만에 사과하였고, 미활용부지 2㏊를 활용하여 고라니 서식지를 조성하기로 했다. 수목원 측의 뒤늦은 조치는 환영할 일이지만, 하루아침에 목숨을 빼앗긴 고라니의 생을 다시 찾아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세종국립수목원이 조성된 장남 평야는 전월산과 장군산 등의 산지로 둘러싸인 분지에 하천의 퇴적물이 쌓인 지형으로 멸종위기종인 금개구리의 집단서식지로 알려졌으며 매·발구지·새호리기·붉은어깨도요 등이 관찰되었고 천연기념물인 원앙과 황조롱이가 서식하는 등 생태환경이 우수한 지역이다.
고라니 또한 장남 평야를 터전 삼아 생존해온 생명체로 이곳의 터줏대감 중 하나이다. 그런데 세종시가 건설되며 장남평야 일대를 시민 여가시설인 공원과 수목원으로 조성하며 이곳에 서식하던 수많은 생명체들이 쫓겨나가게 됐으며 급기야는 고라니 집단 사살과 같은 일들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장남평야에 정주하고 있던 고라니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들의 행위는 자신의 터전을 침략하고 파괴한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고라니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간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인간들이 벌여온 파괴와 학살에 대해 반성한다.
지금도 전국 각지에서 수백만 평의 갯벌을 아스팔트로 뒤덮는 공항건설이 추진 중이고 농지와 임야를 콘크리트 건물로 대체하는 산업단지가 조성 중이다. 그 과정에서 수천년을 지속해온 생명의 터전은 무너지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의 창궐, 이상기후로 인한 가뭄과 폭우의 발생 등 지구환경 위기의 도래는 다름 아닌 자연과의 공존을 외면한 인간의 탐욕때문이었다.
고라니 12마리의 죽음 자연파괴를 당연시하는 인간 문명의 자화상이다. 이제 '개발 제일주의'에서 벗어나 공존과 생태의 가치로 전환해야 한다. 그것이 억울하게 죽어간 고라니에게 사죄하는 길이다.
/이혁재 정의당 세종시당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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