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0년대 조선 사회는 깊은 혼란과 위기에 놓여 있었다. 오랫동안 지속된 세도정치로 인해 국가 기강이 문란해졌고, 지방관의 횡포와 착취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러 농민의 삶은 극도로 피폐해졌다. 여기에 전염병 같은 천재지변과 서구를 비롯한 외세의 침략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는 상황에서 성리학을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사상을 필요로 하였다.
'재가再嫁한 여자의 자손은 과거를 금지한다'는 굴레에 얽힌 최제우는 문과에 응시할 수 없었다. 그는 한때 무과를 준비하기도 했으나 모두 접고, 10년 동안 유랑하며 장사꾼으로 일한다. 고향(경주)으로 돌아온 그는 天道를 얻기 위해 수행하면서 당시 조선이 망해간다는 현실을 깨우친다. 그리고 새로운 가르침과 새로운 문화가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개벽을 주장하는데, 이때 그는 자신의 이름을 제우(濟愚.어리석은 이를 구제한다)로 바꾸었다.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1824~1864)의 호는 水雲(수운)으로 노자가 말한 道의 양태(樣態.사물이 존재하는 모양)와 같다. 그는 데리고 있던 두 여종의 족쇄를 풀어 주면서 한 사람은 며느리로 또 한 사람은 딸로 맞이하였으니, 동서양을 통틀어 이처럼 평등사상을 완벽하게 실천한 사상가는 없다. 하지만 조선의 위정자들은 그를 혹독한 고문 끝에 참수하였다. 그의 사상은 사인여천(事人如天.사람 섬기기를 하늘과 같이)과 인내천(人乃天.사람이 곧 하늘)으로 체계화되었다.
去(거)는 나아가는 것이고, 用(용)은 쓰임새를 말한다. 도덕경 제40장 去用(거용-본래 쓰임대로)에서는 道가 움직이는 방향과 작용방식에 대하여 짧으면서도 핵심을 요약하였다. 본문에서 反(반)은 '되돌아가다'는 뜻으로 쓰였다. 이러한 이치는 자연현상에 두루 작용한다. 초목은 여름을 거치며 우거지지만 겨울이 되면 다시 앙상한 가지로 돌아간다. 물은 모여서 구름을 이루고 다시 물로 돌아간다. 인간의 삶도 무한히 반복反復하는 과정을 겪는다. 특히 위정자는 갓난아이로 돌아가 순수한 덕을 회복하라고 주문한다. 弱(약)은 구부러진 활(弓)에서 왔다. 활이 휘었다는 것은 기존 상태로부터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변화는 도에 따라 이루어진다.
道는 시공을 초월한 절대적인 무형의 존재로서 천지의 생성과 운행은 그것을 따라 움직인다. 도의 활동(無)은 현상계(有)를 통해 나타나지만, 그것은 인간들이 대립시켜 설명하는 것일 뿐이다. 도는 혼연일체로 이루어진 실체이니 인위적으로 有와 無를 가릴 수는 없다(有無相生).
되돌아가는 것이 도의 움직임(활동)이고, 변화하는 것이 도의 쓰임새(작용)다. 천하만물은 유에서 생겨나고, 유는 무에서 생겨난다.
(反者 道之動, 弱者 道之用. 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 「道德經」 第40章-去用)
道 도 [길 / 도리 / 깨닫다]
①首(머리 수)는 머리털( )과 눈(目)을 강조한 글자로 '사람'이나 '우두머리'를 뜻한다. ② (쉬엄쉬엄 갈 착)의 본자는 (착)이다. (조금 걸을 척.변형)과 '발'을 뜻하는 止(그칠 지)가 합쳐졌다. 천천히 걷는 모습이다. ③사람(首)이 가야( ) 할 바른길을 도(道)라 한다.
벼이삭이 빨리 자라게 하려고 목을 비틀 수 없고, 번데기에서 일찍 나비가 나오게 하려고 배를 가를 수 없다. 이렇듯 '道'는 인위를 가하지 않음으로써 이루어진다.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국정을 이끌려고 한다면 民은 그를 불신한다. 개인적인 욕심보다 선정에 힘써야 한다. “도는 사람으로부터 멀리 있지 않고, 사람은 나라에 따라 다르지 않다(夫道不遠人, 人無異國). - 최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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