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대교 건너
오성산 10여년째 '우여곡절'
2009년부터 근린공원 복원 중
을왕산 고단한 개발사 닮은꼴
2014년 좌초 후 새 사업도 제동
◆ 영종대교 건너
유령도시 분위기 미단시티
뼈대만 솟아있는 거대 건물숲
야심찬 출발과 부침의 연속
사업 재개 여부도 불투명 상태
국제도시, 세계적 국제공항, 대규모 복합리조트와 카지노, 여름이면 수십만의 피서객이 찾는 해수욕장과 서해 너머를 물들이는 일몰. 도심서 길게 뻗은 다리를 차로 건너면 금세 닿는 영종도는 화려한 수식을 연상케 하는 인천의 섬이다.
그러나 영종의 속사정은 복잡하다. 개발이 할퀸 흔적이 섬 곳곳에 남아 기대보다는 우려를 키우기도 한다.
영종도에서는 지난한 세월 동안 말 그대로 '억 소리'나는 개발사업들이 추진됐다가 지연되거나 혹은 좌초되기를 반복했다. 단군 이래 최대 개발사업이라 불렸던 에잇시티부터 그 뒤를 이었던 용유노을빛타운을 비롯해 밀라노디자인시티, 영종브로드웨이 프로젝트 등 대형 프로젝트들이 잇따랐지만 표류하며 주민들의 애를 태웠다. 영종이 품은 아픔의 역사다.
송도, 청라 등 인천의 다른 국제도시에 비해 더딘 개발 속도도 영종을 이야기할 때면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이야기다. 이처럼 누구나 알지만 모르는 영종도의 내면을, 영종도 속 대표적인 대형 개발 현장들을 지난 이틀간의 시선에 따라 담아본다.
▲문화·레저·관광 중심지?…사업 장기화 빈번
지난달 26일, 인천대교를 건너 먼저 마주한 건 오성산 자락이었다. 산자락을 따라 도로를 달리자 오성산전망대로 향하는 오르막길이 모습을 드러냈다. 길 입구는 보수공사 중임을 알리는 입간판 등으로 일부 막혀있는 모습이었다.
공사로 인해 진입하지 못하는 전망대 대신 그보다 좀 더 아래 주차장에서 주위를 둘러보자 도로 너머로 인천국제공항과 여러 대의 비행기가 눈에 띄었다.
공항 활주로 인근에 자리한 오성산 일대는 원취지에도 불구, 10여 년째 시민이 돌려받지 못하고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는 대규모 근린공원 조성사업이 추진 중이다.
오성산 일대는 인천공항을 개발·건설하는 과정에서 항공안전을 고려해 대부분 절토(切土)됐다. 해당 부지에 대한 공원 복원 조건에 따라 2009년부터 시와 공사는 공원조성계획을 협의해왔지만 사업자 선정 난항 등으로 지연되며 우여곡절을 겪었다. 결국 지난 2020년에야 공원조성계획을 마무리 지었고, 지난해 8월 시가 공항공사가 신청한 오성근린공원 조성사업 실시계획을 승인했다.
오성산 자락을 뒤로하고 그와 닮은꼴인 을왕산 일대로 이동했다. 을왕산 역시 항공기 안전 운항, 왕산마리나 건설 등을 위해 장애 구릉 절토사업이 이뤄진 곳으로, 고단한 개발사(史)를 품은 곳이기도 하다.
'IFUS HILL SG산업개발㈜' 간판이 세워진 입구로 들어서 인적 드문 언덕길을 오르자 같은 간판과 그 옆의 작은 컨테이너 건물이 먼저 보였다. 건물 안은 불이 꺼진 채로 비어있었다.
가파른 언덕을 도보로 오르자 무성하게 자란 나무들 너머로 깎인 을왕산 일대가 넓게 펼쳐졌다. 너른 모래벌판 중간중간 키 작은 나무와 풀들이 자란 사막 같은 풍경이었다.
해당 부지는 앞서 지난 2014년부터 추진된 '을왕산 파크52' 개발사업이 사업자 공모 무산 등으로 좌초된 이후, 2018년 경제자유구역에서 해제됐다. 이후 인천경제자유구역청 등이 복합영상산업단지 '아이퍼스 힐(IFUS HILL)' 사업을 위해 경제자유구역 재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을왕산 부지 대부분을 소유한 인천공항공사와 국토교통부와의 협의에 실패하면서 사업에 제동에 걸린 상황이다.
을왕산에서 다시금 발길을 돌려 왕산해수욕장 인근 왕산마리나로 향했다.
정박장에는 수십 대의 요트가 줄지어 서 있어 이국적 분위기를 자아냈다. 마리나항 일대는 대체로 조용한 분위기였고 운항 중인 요트 대신 항을 찾은 몇몇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인천의 대표적 해양레저시설인 왕산마리나는 지난 2014년 인천아시아게임 당시 요트경기장으로 사용된 이후 2017년부터 전면 개장해 본격적인 운영을 시작했다.
▲'한국의 라스베이거스' 꿈꿨지만…시간 멈춘 미단시티
이튿날인 27일에는 영종대교를 건너 영종도 미단시티를 찾았다.
미단시티는 중구 운북동 일대에 관광·레저·주거·상업 등이 모두 어우러진 '융합도시'를 목표로 조성되어온 곳이지만 이날 찾은 미단시티 일대는 오가는 사람과 차를 찾아보기 어려운 고요한 모습이었다.
공사가 한창인 '누구나집' 건설 현장을 지나쳐 이동하자 고층의 미완성 건물과 함께 미단시티 복합리조트 공사 현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업이 장기화하고 있는 현장 인근은 흡사 유령 도시 같은 모습이었다. 오가는 차를 보기 어려웠고, 뼈대만 갖춘 채 솟아있는 거대한 건물은 다소 기괴한 분위기를 풍겼다. 건물 주변으로는 가림막이 쳐져 있어 내부를 가까이 들여다볼 수는 없었고 공사 현장 주변에는 층수를 표시하는 숫자 표지판이 흩어져 있었다.
현장에서 차로 멀지 않은 곳에 리조트 홍보관 건물이 있었으나 주변 주차장은 텅 비어있었고 건물은 문이 닫힌 채 꽤 오랜 기간 사용되지 않은 듯 보였다. 방치된 건물 2층 입구에는 2019년 6월 96만5940원을 미납해 전기를 끊는다는 예고장이 붙어 있었다.
미단시티 복합리조트는 야심 차게 출발했지만 부침을 겪어왔다. 지난 2017년 중국 푸리그룹과 미국 시저스엔터테인먼트가 합작법인을 설립해 리조트 조성을 추진했지만 자본금 확보 부진, 공사비 미납 등으로 공사가 이어지지 못했다. 이후 지난 2021년 카지노 운영을 담당할 예정이었던 시저스가 투자를 철회, 푸리그룹이 시저스 지분을 모두 인수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현재는 본래 준공 예정 시기였던 2018년을 한참 넘겨 오는 2023년까지로 사업 기간을 연장했으나 사업 재개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글·사진 정혜리 기자 hye@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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