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 6m 도로 일부 파헤치고 펜스
한 명 지나기도 벅찬 샛길로 변해
주변 50년 넘은 나무들도 다 벌채
“안일한 행정 피해 시민이 받아 …”
▲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 한 사유지 신축 공사현장에 펜스가 쳐져 있는 모습. 펜스 왼쪽으로 폭 1m가량의 좁은 임시 통행로가 설치돼 있다.

“고작 60평짜리 건물 짓는다고 물길도 막고 50년 넘은 소나무도 다 베어버리는 게 말이 되나요?”

지난달 30일 오전 10시께.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에 위치한 한 사유지 신축 공사현장에 시민 네댓명이 찾아와 건설현장 담당자에게 항의하고 있었다.

해당 현장은 성남시민들이 30년 넘게 이용해오던 등산로 초입으로, 공사 이전엔 자동차까지 드나들 수 있던 6m 폭의 도로가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도로 일부가 파헤쳐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주변으로 공사 펜스까지 쳐져 사람 한 명 지나가기 벅찬 샛길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특히 도로를 둘러싸고 있던 오래된 나무들이 모두 베어져 산이 휑해지자 시민들의 분노도 폭발했다.

인근 거주민 이윤재(37)씨는 “여기 소나무가 1~2년 된 소나무가 아니라 두 팔을 뻗어 한아름일 정도로 50~100년 이상 된 큰 나무들이었는데 다 잘라놔 너무 놀랐다”며 “(공사 현장에) 계곡물도 지나가는데 수로를 막아서 그런지 올여름 폭우 때 동네가 물난리가 났다. 고작 60평짜리 꼬마 빌딩 짓겠다고 이렇게 했다니 어이가 없다”고 한탄했다.

성남시 내 한 사유지 건축공사를 둘러싸고 주민들과 소유자, 지방자치단체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해당 사유지가 신축공사를 진행하며 성남누비길로 이어지는 등산로와 문화유적인 사찰 초입로를 막아 시민 불편을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3일 성남시 등에 따르면 이곳에 진행 중인 공사는 대지면적 1833㎡에 건축면적 312.52㎡, 연면적 622.15㎡ 규모로, 3월 구청으로부터 제1종근린생활시설을 짓기 위한 건축허가를 받았다.

공사가 진행되는 200m구간은 아름드리 나무가 우거졌던 곳으로, 불곡산과 영장산 등 등산로 초입이자 조선 후기 지어진 사찰 골안사로 향하는 길이 놓여 있었다. 그러나 공사가 시작되자 포크레인과 지게차가 길을 가르기 시작하더니, 기존의 등산로는 절반 가량 파헤쳐지고 현재는 약 50m 구간에 1~2m 폭의 임시 샛길만 놓여 진 상태다. 때문에 등산객들을 위해 설치해 뒀던 각종 편의시설까지 운영이 중단된 채 사유지 내 공사현장에 방치된 상태다.

▲30일 오전 10시쯤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에 위치한 한 사유지 신축 공사현장에 시민 네댓명이 찾아와 건설현장 담당자에게 항의하고 있는 모습 /박지혜 기자 pjh@incheonilbo.com
▲30일 오전 10시쯤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에 위치한 한 사유지 신축 공사현장에 시민 네댓명이 찾아와 건설현장 담당자에게 항의하고 있는 모습 /박지혜 기자 pjh@incheonilbo.com

공사로 길이 막히자 골안사를 향하는 신도와 등산을 위해 방문한 시민들의 불편이 극심해졌다.

골안사 관계자는 “이곳 골안사는 지어진지 300년이 넘는 조선 후기 문화유산이자, 신도 수가 2500명이 넘는 사찰”이라며 “골안사 신도의 80% 이상이 어르신들인데 입구를 막고 자동차도 못 올라오는 길이 되다보니, 어릴 적부터 이곳을 오가던 분들이 발이 묶이고 무리하며 오가다 넘어지실 뻔하는 등 위험한 상황이 연출된다”고 호소했다.

10년 넘게 등산로를 이용 중인 시민 김동수(60)씨는 “지난 12월쯤 도로를 파내더니 올 초엔 나무를 베고, 그대로 수개월간 방치해두더라”며 “그 상태로 지난 6월부터 8월까지 폭우가 내리니까 토사가 쏟아지고 물이 넘쳐 사람이 아예 다니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수령이 오래된 나무는 이전을 해도 됐을 텐데 무참히 훼손된 산림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며 “도심 내 녹지공간이 저 정도로 훼손되기 전에 주민들과 사전협의를 한다든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허가를 냈어야 하는데, (사유지라는 이유로) 안일한 행정을 한 결과의 책임과 피해는 오롯이 시민들만 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구청은 “수차례 민원 신고가 들어와 문제 상황을 파악하고 있으며, 관련 부서 등과 긍정적인 방향으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 곳 공사 관계자는 주민들의 항의에 특별히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30일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에 위치한 한 사유지 신축 공사현장에 시민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방치돼 있는 모습. 해당 시설은 공사 이전 등산로를 이용하는 시민들을 위해 사유지에 설치돼 있었다. /박지혜 기자 pjh@incheonilbo.com
▲30일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에 위치한 한 사유지 신축 공사현장에 시민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방치돼 있는 모습. 해당 시설은 공사 이전 등산로를 이용하는 시민들을 위해 사유지에 설치돼 있었다. /박지혜 기자 pjh@incheonilbo.com

/글·사진 박지혜 기자 pjh@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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