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을 두고 와서 집에 다녀오겠다는 말에 후배들이 화들짝 놀란다. “스마트폰 페이가 있지 않나요?” 스마트폰으로 계좌이체와 개인인증을 이용하지만 페이를 사용하지 않는 내가 문득 옛사람이 된 것 같았다. 스마트폰이 지갑을 대신할 수 있는 세상에 지갑을 챙기느라 늦었다는 이야기는 더 이상 핑계가 되지 않는다.
지갑만큼이나 새롭게 등장한 질문이 있다. “책, 어떻게 보세요?” 종이책 혹은 전자책을 선호하는지 묻는 말만은 아니다. 책을 구매하거나 빌려 읽는 방식 그 이상을 의미한다. 월구독료를 내면 전자책을 마음껏 열람할 수 있는 플랫폼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제 종이책을 한 아름 안고 있던 독서 소녀는 가상 책장에 전자책을 가득 채우고 태블릿PC를 한 손에 들고 길을 나선다.
활자를 시각적으로 소비하는 매체가 책이라는 생각도 변화했다. 유명한 이들의 목소리로 만나는 리딩북은 듣는 책 문화를 만들었다. 책을 읽는다는 '독서(讀書)'의 의미는 콘텐츠를 소비한다는 요즘 의미로 대체되고 있다. 낯선 이들과 함께하는 독서 모임에서는 책이 사람들과 만나는 매개체로 작용한다. 책을 좋아하는 이유가 다양한 만큼 책을 만나는 방식도 점점 다양해지는 세상이다.
책을 만나는 공공의 장소인 도서관도 달라졌다. 각 지자체마다 이미 전자도서관 서비스를 구축한 지 오래다. 지역 서점과 연계하여 책을 대여하고 반납할 수 있는 서비스는 책을 사고 빌리는 행위의 경계를 지우고 책과 만나는 장소로서 서점과 도서관을 하나로 이어준다.
과거 책을 수집한 공간이었던 도서관은 권력자만이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이후 공공에 개방된 도서관은 지식의 창고로서 시민들이 소통할 수 있는 장으로 발전해왔다. 박물관과 미술관이 시민을 위한 문화 공간으로 캠핑, 명상 등 다양한 방식을 추구하고 있는 가운데, 도서관도 책을 향유하는 새로운 방식에 대해 고민해보아야 한다. 보이지 않는 독서 인구를 위한 독서 문화의 장으로서 도서관은 어떠한 모습을 해야 할까. 근래 지어진 도서관은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여 친환경적인 건축 구조와 개방성을 강조한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커뮤니티를 위한 공간으로 도시 재생의 구심점으로 작동한다. 전자책 인구를 위한 디지털화에도 적극적으로 나선다. 책을 읽는 공간에서 책을 통해 소통하는 공간으로 진화하는 도서관은 거대한 문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번 주말부터 인천공공도서관 100주년을 기념하는 '2022 인천독서대전' 행사가 인천 곳곳에서 열린다. 출간을 한 작가이자 책을 사랑하는 독자로서 책과 함께하는 축제에 기대가 크다. 다양한 콘텐츠의 홍수 안에서 종이를 통해 소통하는 책과 독서문화가 100년의 획을 긋는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는 100년 이후 다음 도서관이 가져가야 하는 질문을 정리해볼 차례다. 책을 향유하는 문화를 반영하는 시설이라 하기에 우리의 도서관은 여전히 과거의 형태에 갇혀 있지 않은지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책을 통해 사람들과 교류하는 새로운 흐름을 수용하기에 충분한 공간의 유연성을 확보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적절한 대안을 함께 고민해 나가야 하겠다. 100년 전 인천의 첫 공공도서관을 기념하는 올해, 책과 우리의 모습뿐만 아니라 도서관이라는 장소에 대한 의미도 다시 한번 논의되길 기대해본다.
/유영이 <다이얼로그: 전시와 도시 사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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