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가 환영 행렬…현재는 군악 가미
▲ 투구주와 홍대둑.

풍물(風物)은 “무릇 거동하실 때에 어가(御駕)의 앞뒤에서 고취하거나 칙사를 환영하는 연향(宴享)할 때에 사용되는(凡擧動時, 駕前駕後鼓吹及, 迎勅宴享時所用)<인조 25년 1647년>” 악기를 일컫는다. <세종실록·오례>의 고취에 의하면, 풍물은 방향(方響), 화(和)와 생(笙), 노래(哥), 비파(琵琶), 필률(觱栗), 우(竽), 월금(月琴), 적(笛), 현금(玄琴), 가야금(伽倻琴), 아쟁(牙箏), 대쟁(大箏), 향필률(鄕觱栗), 퉁소(洞簫), 해금(奚琴), 대적(大笛), 장고(杖鼓)라 할 수 있으며, 영조 41년인 1765년 영조의 보령 71세를 경축하기 위한 수작을 기록한 <을유수작의궤>에 의하면, 풍물은 필률, 대금, 당적, 퉁소, 비파, 해금, 장고, 교방고,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풍물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그 구성을 달리하였던 것이다.

“흉터는 과거에 당한 부상의 기호가 아니라 부상을 입은 적이 있다는 현재적 사실이다. 말하자면 흉터는 부상에 대한 응시이다.(<차이와 반복>에서)” 조선 시대의 풍물과 달리 현행 풍물에는 군악에 대한 흉터가 있는데 이는 풍물에 군악의 요소가 있었다는 과거의 기호가 아니라, 군악적 요소가 현재한다는 현행적 표현이다.

풍물에 존재하는 군악적 흉터는 달 표면의 곰보 자국처럼 여기저기 도처에 분포되어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복장이다. 복장은 왕조가 바뀌더라도 시대가 바뀌더라도 변하지 않는 동토(凍土) 속의 아이콘이다. 지금도 국립국악원의 악사들이 착용하고 있는 복두( 頭)는 당나라 때부터 사용되었던 관(冠)이다. <신당서(新唐書)> 거복지(車服志)에는 복두에 대해서 “태종이 일찍이 후주(後周)에서 시작된 복두( 頭)를 사용하였는데, 무사(武事)를 편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현재 국립국악원에서 세종이 지은 신악 문무(文舞) 보태평이나 무무(武舞) 정대업을 연주할 때, 악사들이 착용하는 관은 개책이다. 그런데 이 개책도 당나라 때부터 사용하였던 관(冠)이다. 『신당서(新唐書)』 거복지(車服志)에서 군신의 복장(群臣之服)에 관해서 언급할 때, “개책(介 )은 등가(登歌)하는 악공의 복장이다. 등가의 공인은 붉은 물감으로 이어진 치마에, 혁대하고, 검은 가죽 신을 신었다”고 하였다.

세종의 신악 무무 정대업의 춤을 출 때는 문무 보태평 때와는 다른 복장을 사용한다. 문무에 진현관(進賢冠)을 사용한다면, 무무에는 피변(皮弁)을 사용한다. 그런데 이 피변의 생명력은 놀라울 만큼 오래되었다. <예기(禮記)> 명당위(明堂位)에서 “당상에 올라 청묘를 노래하고 당하에서 관악기로 상(象)을 연주하며, 붉은 방패와 옥으로 자루를 장식한 도끼를 잡고 대무(大武)를 추고, 피변(皮弁)과 소적(素積) 차림에 석의를 드러내고 대하(大夏)의 춤을 추었다”고 하였다.

청묘(淸廟)는 주나라 문왕(文王)에게 제사하는 시(詩)이다. 그러므로 문왕의 덕을 형용한 <시경> 유청(維淸)의 반주에 맞추어 상무(象舞)를 추었다. 방패와 도끼는 무력을 상징한다. 주나라 무왕이 무력으로 은상의 마지막 왕 주(紂)를 토벌한 사건을 상징하였던 것이다. 대하(大夏)는 하나라의 우(禹) 임금이 문무를 겸한 것을 형용한 것이다. 이때 피변(皮弁)과 소적(素積)의 차림을 한다.

세종이 신악 균화(鈞和)를 창제할 때, 태조 이성계가 언로(言路)를 열고 공신(功臣)을 보전하였으며, 토지제도가 무너져 강한 사람은 합치고 약한 사람은 줄어드는 폐해를 바로잡아 국가의 창고는 꽉 차고 백성은 휴식하게 되었는데, 토지 제도를 바로잡고 예악(禮樂)을 정한 문덕을 기리어 '보태평(保太平)'을 지었다. 태조가 요동방면을 지배하던 원나라 잔여세력 나하추를 물리친 것과 왜구를 무찌른 공 그리고 고려 말 신우(辛禑)가 왕위를 도적질한 것을 평정한 무공을 형용하여 '정대업(定大業)'을 지었다. 이 무무 정대업을 출 때 착용한 것이 피변이다. 하나라의 우 임금이 문무를 겸한 것을 형용한 춤을 출 때 사용한 피변이 조선의 세종을 거쳐, 지금 국립국악원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피변의 흉터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풍물에서 열두 발 상모를 돌릴 때 착용한 것이 바로 피변이다. 피변 속에는 군악의 냄새가 짙게 배어 있는 것이다.

정대업의 무무를 출 때 사용되는 의물 중에 투구(冑)가 있다. <악학궤범>에 의하면, “투구는 베를 배접하여 만들고, 바깥은 흑단으로 짠다. 금(金)으로 된 꼭지와 홍색 상모를 얹고, 좌우에 금으로 된 운월아를 붙인다. 운두의 안은 홍초를 쓰고, 처마의 안은 홍단을 쓴다. 자주로 만든 끈을 단다”고 설명하고 있다. 현행 풍물에서 상모를 돌릴 때 소위 벙거지라고 하는 것이 다름 아닌 조선의 군인들이 썼던 투구이고, 이 투구에 얹힌 상모를 지금 상모라고 하는 것이다. 상모라는 용어는 <악학궤범>의 홍대둑(紅大纛)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대둑에는 길이가 9치인 홍색 상모를 쓰고, 흑둑에는 길이 7치인 상모를 사용하는데 현행 부포의 유래다.

/송성섭 풍물미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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