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분필'에 반해 인생 행로를 바꾸다

수학강사하다 수입·판매 사업
제조사 인수 후 공장 포천 이전
유명 수학자 방송에 매출 '쑥쑥'
“제일의 원칙은 품질…성패 좌우”
▲ 신형석 세종몰 대표가 포천시 영북면 회사 입구의 '하고로모 분필' 조형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
▲ 신형석 세종몰 대표가 포천시 영북면 회사 입구의 '하고로모 분필' 조형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

수학계의 노벨상, 필즈상의 영예를 안은 허준이 교수, 이 시대 최고의 지성인으로 평가받는 도올 김용옥 선생, 수학계 전설의 1타 강사 신승범, 온 국민 역사 바로 알기 열풍에 주역 설민석. 대한민국 최고 위치에 오른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분필’이다. 내로라하는 세계의 수학자들이 10년 치 사재기해서 쓴다는 그 분필. ‘하고로모 분필’은 특유의 부드러운 필기감과 쉽게 부러지지 않는 내구성 덕분에 전 세계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고 있다. 소위 분필계의 ‘롤스로이스’라고 불릴 만큼 명품 반열에 올라 마니아층을 낳고 있는 제품이다. 

이 분필을 만드는 회사가 다름 아닌 대한민국 경기도에 자리하고 있다. 포천에 있는 ‘세종몰’에서는 하루 8만개의 분필이 생산된다. 여기서 만들어진 분필은 미국, 중국, 영국, 독일, 캐나다 등지로 수출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하고로모 분필의 본거지였던 일본으로도 역수출되고 있어 화제다. 분필보다 화제가 된 건 세종몰 신형석(52) 대표의 창립 일화가 알려지면서다.

16년 전 유명 수학강사였던 신 대표는 선진화된 학원 운영시스템을 배우고자 방문했던 일본에서 우연히 분필 몇 자루를 가져왔다. 그때만 해도 분필 몇 자루가 그의 인생을 바꿔 놓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일본에서 한 학원을 들렀는데, 다른 것보다 분필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한국에선 접하지 못했던 다양한 색과 부드러운 필기감에 몇 자루를 얻어 왔죠. 분필에는 작게 하고로모라고 적혀 있었고요. 한국으로 돌아와 형광 분필로 강의했더니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이때부터 분필에 관심을 갖게 됐죠.”

▲ 유명 수학강사 출신인 신형석 세종몰 대표가 ‘하고로모 분필’을 테스트를 하고 있다. /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
▲ 유명 수학강사 출신인 신형석 세종몰 대표가 ‘하고로모 분필’을 테스트를 하고 있다. /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

분필을 다 써 갈 무렵, ‘하고로모’라고 쓰여 있는 작은 단서 하나만을 가지고 신 대표는 백방으로 찾아 나섰다. 국내 모든 분필 회사의 문을 두드려봤지만, 제조를 한다거나 수입 판매를 하지 않는다는 매몰찬 답변만 돌아왔다. 이때 친분이 있던 동료 강사로부터 직접 수입할 것을 권유받으면서 수입할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일본으로 유학 간 제자들에게까지 수소문해 나고야에 있는 ‘하고로모’사의 분필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국내업체들에서는 당시 하락세에 있던 분필 사업을 더는 확장하지 않으려 했죠. 결국 맨땅에 헤딩하는 격으로 시작한 사업이 성공을 거두게 됐죠.”

한창 사업 운영을 해오던 때 일본 하고로모사의 와타나베 다카야스 대표가 건강상 이유로 폐업 위기에 놓이게 됐다는 얘기가 전해졌다. 신 대표 역시 하고로모 분필의 충성고객으로서 더는 분필을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그의 머릿속에 ‘내가 운영해 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스쳤고 평소 친분이 각별했던 와타나베 대표에게 회사 인수에 대한 얘길 조심스럽게 꺼냈다.

“와타나베 대표는 선생님인 제가 제조업을 하는 게 쉽지 않을 거라고 했죠. 신중하게 생각해보라며 조언했어요. 그런데 저는 반드시 해야겠더라고요. 그때는 제조업을 만만하게 생각했던 거죠.”

6개월에 걸쳐 일본에 있던 공장을 모두 한국으로 이전시켰고, 2016년 처음으로 포천에 문을 열었다. 하고로모가 완전히 한국 기업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 소식은 미국 CNN의 유튜브 채널과 일본 NHK 방송을 타고 세계 각국에 전해졌다. 

“CNN의 유튜브 채널인 그레이트 빅 스토리에 저희 분필이 소개됐죠. 하버드와 스탠퍼드에 내로라하는 수학자들이 나와 인터뷰를 했어요. ‘이 분필을 쓰면 논리가 틀리지 않는다’, ‘이 분필은 천사의 눈물로 만들었다’ 등 찬사를 보냈죠. 방송에 소개된 이후 아마존에 판매분으로 유통시켜 놓았던 3개월 치 분필이 이틀 만에 동나 버렸습니다.”

연 매출만 20억원,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신 대표는 매출에만 몰두하지 않고 수익의 일부를 기부하거나 개발도상국 교육시설에 분필을 보내는 등 선행에도 앞장섰다.

▲ 유명 수학강사 출신인 신형석 세종몰 대표가 ‘하고로모 분필’을 테스트를 하고 있다. /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
▲ 유명 수학강사 출신인 신형석 세종몰 대표가 ‘하고로모 분필’을 테스트를 하고 있다. /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

선행에는 행운이 뒤따르듯, 이후에도 많은 이들의 하고로모 분필에 대한 극찬이 이어졌다.

“어떤 선생님은 일반 분필을 사용하면서 어깨가 자주 아파 고통을 겪으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희 분필로 판서하면서부터는 수고를 덜 수 있게 됐다고 합니다. 하고로모의 분필을 쓰고 싶어도 일본 제품이었을 땐 쓰기가 부담스러웠는데 메이드인 코리아가 붙고 나서는 당당하게 쓴다고 하시더라고요. 또 한 번은 학생 중에 적록 색약인 친구들이 있는데 붉은색 분필로 쓰면 녹색에 칠판하고 구분이 안 돼 고충을 겪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희 분필의 형광을 띠는 밝기 때문에 선명하게 보인다고 했어요. 특히 인터넷 강의 영상에서 더 빛을 발한다고 하더라고요.”

최근 신 대표는 분필에 이을 새로운 필기구 개발에 여념이 없다. 나무로 만든 볼펜이라던가 교체가 가능한 친환경 필기류가 주 종목이다. 이번엔 일본의 기술이 아닌 순수 세종몰의 독자적인 기술이 발휘됐다. 그에겐 분필이든 볼펜이든 변하지 않는 단 한 가지 철칙이 있다.

“하고로모 대표님이 그러셨듯 제일의 원칙은 품질입니다. 제품의 성패는 품질이 좌우한다는 생각이에요. 결국에 좋은 품질의 제품들은 언젠가 알려지는 법이거든요.”

어느덧 분필로 판서하던 시대가 저물고 전자칠판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신 대표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없애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거든요. 전자칠판이라는 것이 편리하기는 하지만 아이들이 학습하는데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기도 해요. 또 항상 디스플레이에 노출된 아이들의 눈은 피로가 가중되는 결과를 낳게 되죠. 하버드나 스탠퍼드가 돈이 없어 전자칠판을 사용하지 못하는 건 아니니까요. 옛것이라 없애기보다는 병행해 사용하는 대안을 고민해 봐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 유명 수학강사 출신인 신형석 세종몰 대표가 ‘하고로모 분필’을 테스트를 하고 있다. /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