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무대, 화려한 출연진도 좋지만 술 한잔 기울이며 가수의 생음악을 가까이 듣고 싶을 때가 있다.

이런 공연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인천에는 대략 6곳 있다. 중구 신포동 버텀라인과 흐르는 물, 부평 락캠프와 연수구와 남동구에 있는 뮤즈, 공감 등이다.

이 가운데 '흐르는 물'과 '락캠프'는 약 30년 인천의 소규모 라이브 공연 문화를 이끌어 왔다.

 

[중구 '흐르는 물'] 지역 밴드 무대로 '일거양득'

1989년 개업…LP판으로 빼곡
포크·블루스 라이브 정기 공연

▲ 재즈뮤지션 그룹 '마드모아젤 S'의 공연 모습./사진제공=흐르는 물
▲ 재즈뮤지션 그룹 '마드모아젤 S'의 공연 모습./사진제공=흐르는 물

인천 중구 신포동 24-1 2층으로 올라가면 옛날 정서 가득한 장면이 펼쳐진다. 5000장이 넘는 엘피(Long Play record)판이 빼곡히 들어선 진열대가 우선 눈에 들어온 후 타닥타닥 정교하지 않은 LP 특유의 방식으로 음악이 흘러나온다.

정희성 시인의 시 <저문 강에 삽을 씻고>의 구절인 '흐르는 것이 어찌 물뿐이랴'에서 이름을 딴 이곳은 1989년 개업했다. 지금의 인천 중구청 인근에서 테이블 4개로 시작한 흐르는 물은 차츰 무대를 만들고 포크나 블루스 등의 라이브 정기 공연을 열었다.

지역 밴드들에 공연할 기회를 주고 손님들에게 가깝게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게 하는 일거양득의 방법이었다. 평소 문학 등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던 안원섭 대표의 사업 운영 방향과도 잘 맞아떨어졌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타악기 연주자, 고(故) 김대환과 색소폰 대가 강태환, 신촌블루스 등이 흐르는 물의 무대를 거쳐 갔다.

흐르는 물 손님들과 공연 관람자들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라이브 공연에 열광했다.

30년 넘는 세월 동안 한 번도 신포동을 떠나지 않고 풀뿌리 문화예술을 선도한 안원섭 대표 부부는 올해도 꽉 찬 라인업 일정을 짜놨다.

지난달 권순우 밴드와 8월 마드모아젤 S 공연을 성료한 데 이어 9월3일 김준형 퀄텟, 9월24일 칼리&J 공연이 예정돼 있다. 이어 10월1일 태지윤·이재상이 출연하며, 8일엔 하이미스터메모리 트리오 노래를 들을 수 있다. 10월15일 오후 8시엔 김상철과 정형근이 연주한다.

 

 

[인터뷰] 안원섭 '흐르는 물' 대표

“내년 35주년 기념회 준비…같은 자리 지키는 게 소망”

▲ 안원섭 '흐르는 물' 대표./장지혜 기자 jjh@incheonilbo.com
▲ 안원섭 '흐르는 물' 대표./장지혜 기자 jjh@incheonilbo.com

그의 아버지는 소리꾼이었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 따라 노래 부르고 음악 듣기 좋아한 그가 젊은 시절 누구나 공연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이유다.

“들창으로 여는 적산가옥에 올라가는 계단도 정말 좁던 신포동 골목에서 시작했죠. 몇 번 이사만 했을 뿐 신포동을 벗어난 적은 없어요.”

카세트테이프와 콤팩트 디스크(CD) 등이 등장하며 엘피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한 때도 안 대표는 엘피판을 고집했다.

“누군가 나를 위해 음악을 찾아 바늘을 닦아 정성스레 플레이어에 올려 두면 노래가 흐르죠. 성의 있고 마음 씀씀이가 담긴 이 과정 자체가 낭만적이잖아요.”

그는 인천의 아티스트들과 실력 있는 밴드들을 발굴하고 섭외해 함께 공연을 즐기도록 공간을 마련하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내년이면 흐르는 물 35주년이네요. 사진이나 그림, 시(詩)를 소개하는 릴레이 전시회도 열고 인천 인물 35명을 만난다든지 하는 기념회를 준비하고 있어요. 등 굽은 소나무가 고향을 지키듯 엄마 품 같은 예술 공간으로 여러분 곁 같은 자리를 지키는 게 저와 아내의 소망입니다.”

 


 

[부평구 '락캠프'] 록 마니아들 '추억의 아지트'

1997년 인천 최초로 생긴 클럽
전국 팀 몰려들던 유명 공연장

▲ 밴드 '화려한 외출' 공연 모습./사진제공=락캠프
▲ 밴드 '화려한 외출' 공연 모습./사진제공=락캠프

1990년대 중반 서울 홍대에서 라이브클럽이 생기기 시작했다. 1997년 인천에도 최초로 이런 클럽이 생겼으니 부평 '락캠프'였다. 고고 장이나 나이트클럽과는 다르게 순수음악 하는 팀들이 자기 연주를 하고 창작 작품을 발표하는 장으로서 역할을 했다.

'락캠프'의 장르는 록으로 특화돼 있다. 락캠프를 일군 정유천 대표 본인이 록음악을 하기 때문이다.

부평 출신인 그는 부평 캠프마켓 미군들의 클럽 문화를 익히 알고 있었다. 부평의 정신이기도 하고 정체성이기도 한 캠프에서 이어진 '락캠프'는 인천뿐 아니라 전국에서 공연팀들이 몰려들 정도로 유명한 공연장이었다.

365일 가운데 360일 공연을 했으며 하루에 3∼4개팀은 기본이고 주말엔 5개 팀이 무대에 올랐다. 제주도에서도 락캠프 무대에 서보기 위해 올라올 정도였다.

당시에는 카페의 규모도 80평 정도로 컸기 때문에 공연을 보기 위한 관객들도 300∼400명이 공간을 가득 메웠다. 록 밴드라면 한 번쯤은 거쳐야 했고 대중들에게 자신의 음악을 평가받는 등용문이었다.

이후로 비슷한 곳이 많이 생기고 대중문화의 형태도 다양해지면서 예전의 영광은 점차 사라졌지만 정유천 대표는 이 공간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필요하고도 절실한, 어떤 이에게는 추억과 낭만이 서린 장소이기 때문이다.

 

 

[인터뷰] 정유천 '락캠프' 대표

“이 공간, 내 것 아닌 공공재…후배·록커·단골 위해 활동”

▲ 정유천 '락캠프' 대표./장지혜 기자 jjh@incheonilbo.com
▲ 정유천 '락캠프' 대표./장지혜 기자 jjh@incheonilbo.com

정유천블루스 밴드의 멤버이기도 한 그는 락캠프 이외에도 인천밴드연합 회장과 부평올스타빅밴드 단장, 라이브음악문화발전협회 이사 등으로 활약하고 있다.

“인디밴드에 대한 관심이 시들고 대중음악 시장이 바뀌면서 락캠프도 쇠락의 길을 걸었다고 볼 수 있죠. 하지만 인천의 대중음악과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문화를 견인하는 데 일조했다고 자부합니다.”

경직되고 일방적으로 감상할 수 밖에 없는 일반 공연장과 달리 라이브클럽은 서로 교감하고 즐길 수 있다. 오래도록 친구 같은 작은 공연장이 돼준 락캠프는 세월의 곡절과 코로나19 등을 겪으면서 폐업을 하거나 위기에 처한 적도 많다. 그때마다 정 대표는 다시 힘을 내 재기하고 일어섰다.

“이 공간이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미 공공재가 되었죠. 이 무대를 갈구하는 후배 밴드들, 록커들, 꾸준히 찾아주는 단골들을 위해 오늘도 계속할 동력을 만듭니다.”

락캠프는 올해 인천시 라이브뮤직 공간지원사업으로 그레이블루스, 써드스톤, 아톰뮤직하트, 중식이밴드, 펑크온파이어, 마인드바이앤소울의 공연을 추진한 데 이어 앞으로 알버트헤이트블루스밴드, 오버드라이브필로소피, 바투 등의 공연을 무대에 올릴 계획이다.

/장지혜 기자 jjh@incheonilbo.com

/인천일보·인천문화재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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