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실리나 성과보다 명분이 훨씬 중요할 때가 있다. 정치에서는 더욱 그렇다. 자칫 명분을 놓치고 가는 경우 흔히 잘하면 '야합'이라거나 그 반대의 경우 '무능하다'는 비난에 직면하기 일쑤다. 그러나 반대로 지나치게 명분에 집착한 나머지 지나치게 누군가의 발목을 잡는 상황이 되면 그때 역시 엄혹한 비난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정치집단이 가장 욕을 듣게 되는 순간은 역시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잃었을 때다. 내재해 있는 사심이 지나쳐 밖으로 표출되거나 협상 상황에서의 태도가 몽니 수준으로 이해될 때 민심은 여지없이 돌아서게 마련이다.

말이 좋아 당론이지 실상은 당리당략이 모든 가치를 압도하는 상황에서 정치는 종종 길을 잃는다. 정당민주주의가 취약한 우리 정당들이 특히 조심해야 할 대목이다. 이번 경기도의회가 보여준 모습은 여러 면에서 매우 아쉬웠다. 협치라는 대의와 가치를 모조리 배제한 채 자리를 나누자며 싸움질하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2개월이 넘는 시간을 그렇게 허비했다. 협상은 번번이 실패했고 지리멸렬했다. 더불어민주당 대표단은 그냥 무능했고, 국민의 힘 지도부는 명분 없는 어떤 집착에 매달려 사리를 잃은 집단처럼 비쳤다. 참다못한 시민단체들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우여곡절 끝에 극적으로, 4일 여야 대표단이 손을 맞잡았다. 천만다행이다. 결국 누군가는 사고를 치기도 하면서 여도 야도 더이상 버텨낼 상황도 아니었을 터 그러나 중요한 건 지난 실책보다 합의했다는 점이다.

정작 앞으로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가는지가 중요하다. 비로소 정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를 꿰뚫어 보는 게 정치의 본질이요, 필요한 자질이다. 상황이 불리할수록 협상에 유능해야 도민의 이익을 지킬 수 있고, 지지하는 유권자들을 편 들 수 있다. 당론도 중요하고 당략도 필요하나 적어도 지금은 민생을 볼모로 할 때가 아니다. 국정이 어렵고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경기도라도 잘해주길 바라는 도민들의 마음은 한결같다. 이런 상황을 두고 마치 누구에게 유리한지를 끊임없이 판단하려는 태도는 민망하고 어리석다. 민생 앞에서는 여도 없고, 야도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