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용석의 지구촌./인천일보DB
▲ 신용석의 지구촌./인천일보DB

개통된지 123년이 되는 경인철도는 필자의 가족과도 밀접한 관계를 지닌 교통시설이다. 선친(汗翁 愼兌範 박사)께서는 12년 동안 서울의 경성중학교와 경성제대 의학부를 졸업하실 때까지 기차통학을 하셨다. 생전에 선친께서는 학창시절에 기차통학을 하시면서 겪었던 일화를 자주 들려 주셨고 글로도 통학시절의 애환을 남기시기도 했다.

▶경인선은 인천에서 태어난 필자에게도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다. 광복 직후 어머님을 따라 기차를 타고 한강철교를 건넜던 것은 박문유치원에 다니던 어린이에게는 감동적이기도 한 장면이었다.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 졸업 후 조선일보사에 입사하여 통근을 할 때까지도 단선을 달리는 증기기관차 시절이었다. 1965년에 이용객의 증가로 복선이 되면서 미국의 원조로 디젤 기관차가 등장하기도 했으나 경인간의 도시화로 승객이 급증하는 바람에 불편함이 나날이 급증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결단으로 1974년에는 경인선이 전철화되면서 서서히 서울 북부지역과 연결되는 지하철 1호선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1980년대가 되면서 수도권의 인구집중이 심화되며 경인전철의 이용자들이 폭증했고 출퇴근 시간대의 혼잡도가 극에 달해 『지옥철』이라는 반갑지 않은 별칭을 얻기도 했다. 88서울올림픽이 끝난 다음해 논설위원이 된 필자는 수도권의 대표적 노선인 경인전철의 혼잡도를 시급히 해결하는 것이 국가 교통 정책의 최우선 과제라는 사설을 여러 차례 집필했던 기억도 새롭다.

▶그 후 KTX 고속열차 등장과 함께 10량 연결의 장대화된 객차의 도입과 2005년에는 복복선화가 완공되면서 대한민국 최초의 경인철도의 4차선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자동차와 고속도로 건설에 뒤쳐진 철도교통은 정치권과 언론계의 관심에서도 멀어지면서 대피선과 추월선이 없는 복복선으로 시간 단축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동인천역이나 부평역 같이 승객이 많은 역은 역사(驛舍) 현대화라는 미명으로 백화점이 역을 점거하고 승객은 필요없이 3층까지 올라가서 내려오는 등 곤혹을 치르게 되었다.

▶대통령과 지방선거를 계기로 경인전철 지하화가 유권자들의 무관심속에 슬그머니 주요 공약으로 등장했다. 도심을 양분하는 철도를 지하로 넣어 시민들의 불편을 덜겠다는 명분이다. 이 같은 사업을 기획하는 배후에는 토목회사와 토지를 이용하려는 건설회사들이 버티고 있기 마련이다. 교통 선진국에서는 시민들을 지하의 소음공해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는데 복복선(4차선) 철도를 지하화 하겠다는 발상은 해외 토픽감이 될만한 뉴스다. 국민과 시민들로부터 선택되는 선출직 공직자들은 경인전철을 이용하는 유권자들이 원하는 것은 지하화가 아니라 복복선을 제대로 활용한 주행시간 단축 그리고 평지에서 편하게 열차를 탑승할 수 있는 역사 원상 복구라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 신용석 언론인.<br>
▲ 신용석 언론인.

/신용석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