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령별 인지·신체 능력차 큰데
1년 앞당기면 학교적응 어려워
“애초 5살에 40분 수업은 학대”

1시 하교로 학원 뺑뺑이 뻔해
'교육격차 해소' 관심은 좋지만
현장의견 수렴 없이 추진 비난
▲ 만 5세 초등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연대 관계자들이 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정부의 '만 5세 초등학교 취학 학제 개편안' 철회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6세 딸 아이를 둔 한 학부모 A씨(수원시 호매실동)는 “초등학교 저학년의 경우 월령별로도 발달 정도가 달라 같은 해 1월생과 12월생 아이가 인지능력, 신체능력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1년을 앞당기면 학교생활 적응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특히 1학기 초반엔 적응기를 가져 점심시간에 하교하기도 하는데, 맞벌이 부부는 아이를 학원으로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사교육을 더 부추길 것”이라고 했다.

교육부가 지난 29일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5세로 낮추는 학제 개편안을 발표하자 이들과 같은 학부모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유아 성장 발달을 고려하지 않은 채 경제성에 초점을 맞춘 개편이기 때문이다. 교육 공동체 의견은 '패싱'한 교육부의 일방적인 결정이었다는 교육·시민단체 비판도 잇따르고 있다.

1일 교육부에 따르면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지난달 29일 새 정부 업무보고에서 현행 만 6세부터 시작되는 초등학교 취학 연령을 만 5세로 낮추는 학제 개편안을 발표했다. 교육부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질 경우 2025년부터 단계적 개편안을 시행해, 2028년에는 만 5세 유아 모두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교육부의 이 같은 개편안은 모든 아이가 격차 없이 성장할 수 있도록 ‘국가 책임제’를 통한 ‘교육 격차 해소’를 목적으로 했지만, 개편안이 발표되자마자 되려 논란은 커지는 모양새다.

만 5세 초등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연대 관계자들이 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정부의 '만 5세 초등학교 취학 학제 개편안' 철회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만 5세 초등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연대 관계자들이 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정부의 '만 5세 초등학교 취학 학제 개편안' 철회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경기도유치원연합회, 교사노조연맹,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등 교육시민단체들은 이날 오후 2시 '만5세 초등취학 학제개편 저지를 위한 범국민연대'를 결정하고,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조기 취학 개편안 즉각 철회'를 촉구하고 나섰다.

교원단체의 반발도 거세다. 경기교사노조, 경기교원단체총연합회 등은 “교육적 측면에서 아동 발달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저출산 문제 등 사회·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입직 연령을 낮추려는 것 같다”며 “직업 전선에 빨리 내보내겠다는 경제 논리로 아이들을 바라본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평등교육실현을 위한 인천학부모회도 이날 성명서 내고 “학부모들은 지금 단단히 화가 났다”며 “교육부가 학교와 교육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아우성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학부모들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당장 많은 걱정을 안아야 한다. (그나마) 유치원은 오후까지 아이들을 봐주지만 초등학교는 수업 시간이 끝나면 돌봄교실, 태권도, 미술 학원 등을 뺑뺑이 돌리게 현실”이라며 아이들이 조기 입학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 증가, 학습 및 학교 생활 부적응 문제 등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전교조 인천지부는 “과거에 비해 유아들의 체구가 커지고 신체 발달이 빨라졌다고 하지만, 유아기의 수행과업을 충실히 해내는 능력까지 빨리 발달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초등학생은 책상에 앉아 40분이라는 시간 동안 집중해야 한다. 아직 발달단계가 여기에 미치지 못하는 유아에게 책상에 앉아 40분씩 집중하라는 것은 폭력이고 아동학대”라고 주장했다.

일선 현장의 의견도 제대로 수렴하지 않은 채 개편안을 발표한 데에도 비판은 이어졌다. 교육부는 추후 학교 현장 및 학부모, 전문가 등을 대상으로 토론회와 공청회 등을 개최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과 현장 수요 조사 등 숙의 과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작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 시·도 교육청은 사전 논의 없이 갑작스럽게 진행된 발표에 당황스러운 분위기다. 도 교육청 관계자는 “사전에 전달받은 내용은 없다”며 “우선 교육부의 결정을 지켜보며 향후 방향성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국교직원노조 경기지부 등 시민단체는 향후 도교육청 앞 1인 시위를 비롯해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 해당 개편안 철회를 건의하기 위한 도교육감 면담 요청 ▲대통령실·교육부·국회 교육위에 철회 의견서 제출 등 투쟁을 예고했다.

/유희근·박지혜 기자 pjh@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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