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내리는 비는
여전히 차갑고
초여름 내리는 빗속에 마시는 술은
여전히 맑고
개울물은 조금씩 불어
장화 발목을 넘고
목수건에 물은 듣고
밥그릇에 내리는 빗물,
황토 엉킨 장화를 벗고
공손히 술과 밥을 받고
스윽 허공에 젖은 수건을 문지르면
환한 얼굴이 몇,
보이다 다시 사라진다
▶사라짐으로부터 새로운 가치들을 지니는 것들이 있다. 추억이 그렇고 죽음이 그렇다. 초여름, 누군가를 영원히 보내야 하는 산 위에서 눈물 같은 비가 내린다. 한 뼘 한 뼘 추억을 적시며 비가 내린다. 뜨거운 눈물이 아니라 식어버린 눈물처럼 차갑다. 사라짐은 그만큼 시리다. 그런데도 빗속에 마시는 술은 누군가의 부재(不在)를 확인하듯 맑기만 하다. 그래서 더 선명하다. 죽은 자와의 선명한 추억은 다시 왈칵 눈물 같은 비를 부르고 개울물을 조금씩 불린다. 물은 장화 발목을 넘고, 목수건에 맺힌 물이 뚝뚝 떨어져 슬픔을 보탠다. 밥그릇에 내리는 빗물처럼 눈물과 함께 무덤의 구덩이에 관을 내린다. 이렇게 하관(下棺)을 끝내고 건내 받은 술과 밥이 아슬하다. 그래서 “스윽 허공에 젖은 수건을 문지”른다. 환한 얼굴이 몇 보인다. 여기서 화자는 허공에 젖은 수건을 문지른다고 했지만, 허공이 흐려진 것은 비가 아니라 화자의 눈에 맺힌 눈물 때문이다. 흐려진 시야를 맑게 하면 비로소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난다. 그러나 계속해서 눈물은 방울져 맺히고 듣고 또 맺히는 상황이 반복된다. “보이다 다시 사라”지는 얼굴처럼. 자신의 혈류를 타고 흐르는 추억과 흔적으로 느끼는 죽음의 풍광. 이처럼 우대식의 시 <산역>은 '추억'(기억)과 '죽음'이 동시에 서식하고 있는 내밀한 존재의 모습을 보여준다.
/강동우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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