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米의 무한변신

농가·기업간 상생협력 '눈길'
스타벅스와 쌀과자 메뉴 개발
커피찌꺼기 활용 친환경농법

쌀로 빚은 가평·포천 '막걸리'
이천·화성 '맥주' 선풍적 인기

국내 첫 쌀편집숍 '동네정미소'
큐레이터가 즉석서 도정작업
품종·생산지 따라 취향 선택

천정부지로 치솟는 밥상물가에도 쌀 값은 여전히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 우리 쌀. 쌀 소비 촉진을 위해 '경기미'를 활용한 다양한 대안들이 제시됐다. 빵부터 맥주까지…경기미의 색다른 변신, '제14화 스타벅스로 간 경기미'에서 소개한다.

▲ 평택 신리 농가에서 스타벅스에서 판매하고 남은 커피찌꺼기로 만든 친환경 퇴비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제공=스타벅스코리아

▲스타벅스로 간 경기미

'쌀로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 쌀 소비 촉진을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제시되고 있는 가운데 기업 간의 상생협력을 통한 경기지역 쌀 농가들의 활성화 방안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2007년 당시, 경기도는 세계적인 커피 프랜차이즈 기업 스타벅스와 업무협약을 맺고 우리 농산물에서 착안한 메뉴 개발에 나서게 됐다. 이때 평택 미듬영농조합은 평택지역에서 생산한 쌀을 가공해 만든 쌀 과자, '라이스칩'을 납품해 종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이 여세를 몰아 지난해는 친환경 쌀과 단호박 가루를 넣어 구운 쿠키, '라이스볼 세트'가 인천공항 전용상품으로 선보여 큰 호응을 얻었다. 스타벅스와의 상생 인연은 현재까지도 지속돼 오면서 커피찌꺼기로 만든 친환경 커피 퇴비를 지원해 오고 있다. 화학비료 대신 커피 찌꺼기를 퇴비로 활용하고 친환경 농법으로 거둬진 쌀은 다시 제품의 재료가 되는 선순환 구조를 이뤄내면서 미듬영농조합은 농업과 기업 간의 성공적인 상생협력 모델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이 밖에도 지난 2019년 이마트24는 지역특산물을 활용한 PB 상품 개발의 하나로 이천 쌀로 만든 아이스크림, '아임e이천쌀콘'을 출시해 인기를 끌었다. 또 SPC삼립은 이천 쌀을 주재료 한 겨울철 대표 간식, '이천 쌀 호빵'을 출시해 까다로운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지역특산물의 홍보 효과는 물론 호기심을 자극한 소비자의 상품구매로 이어지면서 각 업체에서는 앞다투어 지역특산물을 활용한 푸드 제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 (왼쪽부터) 스타벅스 라이스칩, 더홋브루어리 이천쌀 맥주, 인천공항 스타벅스 평택 쌀 쿠기, 동네정미소 쌀.

▲경기미가 빚은 우리 술

2021년 6월, '막걸리 빚기'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그야말로 막걸리 열풍이 불었다. 특히 경기미의 우수성이 일찍이 입증되면서 막걸리의 핵심 재료로 내세운 마케팅이 소비자들로부터 각광받고 있다. '가평 잣 막걸리'는 경기도농업기술원과 계약재배를 통해 얻은 경기미를 주원료로 하고 있다. 덕분에 '가평 잣 막걸리'는 쌀가공식품협회에서 주관하는 지난 2020년 쌀 가공품 품평회 TOP10에서 당당히 1위 자리에 올랐다.

대한민국 대표적 주류회사인 배상면주가는 경기미 100%로 만든 막걸리를 출시하기도 했다.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는 '심술6'도 오로지 포천 지역에서 나는 쌀로 만들어졌다.

대개 쌀로 만든 술이라 하면 막걸리를 떠올릴 테지만 맥주에도 경기미가 적극 활용되고 있다. 특히 지역 브루잉들과 연계한 지역 맥주들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7월21일 전국 각지의 소규모 양조장들과 협업해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는 생활맥주 양조장 프로젝트 '마시자! 지역맥주'에서는 이천 '더홋브루어리'와 함께 이천 쌀로 만든 맥주를 개발했다. 일체의 화학첨가물 없이 자연 그대로 만든 맥주를 소개하면서 큰 관심이 쏟아졌다. 또 지난 3월에는 화성시 도시재생지원센터가 화성시의 로컬 수제맥주 '웰컴 투 마스'를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새롭게 소개된 '웰컴 투 마스'는 보리 대신 화성쌀과 수향미를 주재료로 하면서 로컬 주류 시장에 획기적인 아이템으로 떠오르고 있다.

 

▲ 동네정미소에서 김동규 대표가 작업을 하고 있다.
▲ 동네정미소에서 김동규 대표가 작업을 하고 있다.

▲쌀 큐레이터부터 쌀 편집숍까지…쌀의 모든 것

동네마다 하나씩 있던 쌀집들 … 손수 지은 벼를 즉석에서 도정해 주던 정미소들… 지금은 마트에나 가야 볼 수 있을 만큼 보기 드문 광경이 됐다. 현대화된 도시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간판 하나, '동네정미소'라고 쓰여 있는 간판에 이목이 쏠렸다. '동네정미소'는 국내 최초 '쌀 편집숍'이다. 2017년 문을 연 동네정미소에서는 품종에 따라, 생산지에 따라 원하는 쌀을 각자의 취향대로 골라낼 수 있다. 마치 커피 원두를 고르듯, 쌀도 기호에 맞게 구매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동네정미소는 일본 최대 쌀 편집숍 '아코메야'가 모티브가 됐다. 도쿄 긴자에 위치한 '아코메야'는 일본 전역에서 생산된 수십종의 쌀을 판매하고 쌀을 활용한 상품들을 개발하면서 세계적인 관광 명소가 됐다.

▲ 동네정미소 내부 모습. /사진제공=동네정미소

동네정미소에는 '쌀 큐레이터'도 있다. 여느 미술관에나 어울릴법 한, '쌀 큐레이터'라는 단어가 생소하지만, 큐레이터는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는 쌀을 추천하고 즉석에서 도정도 해준다. 또 쌀에 따라 적합한 조리법을 제시하는 등 소비자들이 가장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역할하고 있다. 동네정미소에서는 소량 판매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도정한 지 오래될수록, 보관이 길수록 밥맛이 떨어지기 때문에 오직 450g을 기준으로 소분된 쌀만 판매가 이뤄진다. 나아가 쌀을 판매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쌀과 관련한 강좌를 마련해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도 기능하고 있다. 이처럼 동네정미소와 같은 공간들이 단순한 판매처의 기능을 넘어 둔화된 쌀 소비 시장의 돌파구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인터뷰] 전대경 미듬영농조합 대표

10년째 인기있는 '라이스칩'…“아이디어 공유가 중요했다”

스타벅스·미듬영농조합 합작품
처음엔 떡케이크 제안했다 불발
충전재용 '쌀과자' 착안 … 제품화

▲ 전대경 미듬영농조합 대표.

굴지의 커피 프랜차이즈 기업 스타벅스, 북적대는 매장 한쪽으로 커피보다 더 눈길이 가는 메뉴들이 있다. 커피와 어울리는 서양식 디저트 메뉴 사이를 비집고 떡하니 한 자리를 꿰찬 주인공. 경기도 평택에서만 3대째 농사를 짓고 있는 미듬영농조합 전대경 대표가 개발한 '라이스칩'이다.

'라이스칩'은 전 대표가 손수 지은 친환경 쌀을 주재료로 만들어졌다. 여기에 평택지역 대표 농산물인 블루베리와 배로 잼을 만들어 라이스칩과 곁들어 먹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쌀 과자를 과일잼에 찍어는 먹는 획기적인 방식 덕분에 라이스칩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라이스 칩'은 2009년도에 출시한 스타벅스와 미듬영농조합법인이 만든 첫 합작품이기도 하다. 이 제품은 200만개 이상이 팔려나가면서 10여 년째 스타벅스의 대표 메뉴로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라이스칩은 처음부터 계획을 가지고 만들어진 제품은 아니었다. 미듬영농조합은 농가소득을 위해 여러 방법을 모색하던 중 경기도와 스타벅스가 업무협약을 맺게 된 사실을 알게 됐고 이때 전 대표는 '떡케이크'메뉴를 제안했다. 그러나 유통과정에서 난관에 부딪히게 됐고 결국 출시가 불발됐다. 기회는 뜻밖에 곳에서 찾아왔다. 떡케이크를 보내기 위해 충전재로 넣어두었던 쌀과자를 눈여겨 본 스타벅스의 제안으로 라이스칩을 제품화하는데 성공했다.

당시의 인연이 현재까지 이어지면서 평택 농가에선 스타벅스에서 사용하고 버려진 커피찌꺼기를 친환경 퇴비로 활용하고 있다. 미듬영농조합과 스타벅스가 합작한 제품들은 모두 이 커피찌꺼기 퇴비를 먹고 자란 농산물로 만들어졌다. 전 대표는 라이스칩 성공신화에 이은 '우리나라 옥고감', '한 입에 쏙 고구마', '우리미 카스테라'를 잇따라 출시했고 우리 농산물로 만든 제품들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지금은 로컬 먹거리와 기업의 결합 푸드가 많아졌지만, 당시만 해도 지역특산물을 관심 있게 들여다보는 경우는 드물었죠. 라이스칩이 탄생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고 스타벅스 측의 결단이 컸던 것 같습니다. 말 그대로 담당자가 초콜릿을 두라고 했으면 라이스칩이 아닌 초콜릿을 두었을 수도 있는 건데 로컬푸드에 관심을 갖고 있던 분들이 계셨기에 다행이란 생각입니다. 서로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부분이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전 대표의 라이스칩은 현재까지도 농가와 기업 간 '상생 협력'의 우수 사례로 제시되고 있다. 그는 자기 것을 내세우기보다 조화와 융합, 협력을 우선순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저는 내 것을 고집하지 않아요.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고 귀담아듣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상생이라는 것은 협력에서부터 시작되는 거니까요.”


 

[米지의 세계] 묵은쌀, 햅쌀처럼 지으려면?

▲ 흰쌀밥 관련 사진./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 흰쌀밥 관련 사진./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1년 이상 지난 쌀을 햅쌀처럼 맛있게 지으려면 다시마 2∼3조각을 넣어 지으면 된다. 다시마의 아르기닌 성분이 찰기 있고 윤기 있는 밥으로 만들어주며 이렇게 지어진 밥은 소화 작용에도 도움을 준다. 또 묵은쌀에서 냄새가 난다면 씻어 낸 쌀에 식초 1∼2방울을 떨어뜨려 조리하면 냄새가 사라진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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