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원 경기본사 사회부장.<br>
▲ 김기원 경기본사 사회부장.

지난해 11월 어느 날 자정쯤.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와 잠든 나를 깨운 것은 핸드폰 벨 소리이었다. 벨 소리에 깜짝 놀라 받은 핸드폰 속 목소리는 축 처진 아들 목소리이었다.

“아빠 안자면 나랑 한잔할까. 지금 맥주하고 과자 좀 사 가는데.”

“그래. 기다리고 있을게”, 뭔 일인가 싶어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칫솔질을 하면서 온갖 잡생각을 했다. 무슨 일이지. 밤 11시까지 학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아들놈에게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한 걱정하면서 아들을 기다렸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아들은 말없이 사 온 맥주와 과자를 꺼내놨다.

난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아들과 마주 앉고서 “무슨 일 있냐”고 물었다. 아들은 맥주캔을 한껏 들이켜고 나선 “아빠 오늘 같이 일했던 비정규직이던 형이 갑자기 해고됐어. 사전에 아무런 애기도 없이. 퇴근 무렵 실장님이 형한테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고 그러더라고, 그 이야기를 듣던 형은 아무 말도 없이 쓸쓸하게 등 돌려 나가는데. 내가 더 화가 나더라고” 그러면서 아들놈은 또 맥주캔을 들이켰다.

“그 형 뒷모습이 앞으로 내 모습일 수 있다는 생각에 울적하더라고, 그런데 아빠는 젊었을 때 뭐 했어. 왜 이런 비참한 세상을 우리에게 남겨 준 거지” 그러면서 맥주를 마셨다. 나도 따라 한잔을 마셨는데 맥주가 목에 걸렸다.

“아빠도 젊었을 때 아니 지금도 좀 더 나은 세상을 너한테 물려주려고 노력했는데, 그게 참” 말을 마저 잇지 못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말 없는 맥주가 쓰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아빠 난 결혼 안 할 생각이야. 생각해 보니까 살 집을 구하는 것도, 애를 낳아 기르는 것도 정말 힘든 일이라는 생각이 드네! ”그 말을 듣는 순간 난 “그런 생각하지 말라”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내뱉지 못했다. 그렇게 그 밤은 깊어 갔다. 무기력한 아빠의 모습으로.

휴일인 어느 날 아침. 늦잠 자는 날 깨운 것은 아들놈의 거친 목소리이었다. “아빠 일어나 봐 할 말 있어.”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왜”, “아니 내가 아빠보고 군대를 빼달라는 것도 아니고 군대에 가겠다는데 그것도 못 해”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웬 쉰 소리.

사연인즉, 지난해 대학에 들어간 아들놈은 코로나 19 확산으로 온라인 수업으로 새내기 시절을 보냈다. 대학생활에 흥미를 못 느낀 아들은 군대에 가겠다고 나섰는데 입대 신청자가 몰려서 쉽지 않았다. 친구와 동반 입대를 육군에 신청했다가 떨어지고 나서 공군을 지원했다. 공군 입대에 필요한 점수가 부족해서 두 차례 떨어지고, 마지못해 봉사에 헌혈까지 해가면서 점수를 맞춰놨는데 이번엔 나이에 밀려 또 떨어진 것이다. 벌써 4번째다. 아들이 화날 만도 했다. 부족한 아빠를 만난 아들에게 할 말이 없었다. “조금 있다가 병무청에 알아볼게. 왜 그런지”. 아들이 “아냐?” 하면서 방문을 박차고 나갔다.

아들놈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불우한 세대였다. 험하게 공부해 대학에 들어갔지만 제대로 수업 한 번 받지 못했다. 그런 대학의 등록금과 용돈을 벌어 보겠다고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그 일터에서 본 것은 비정규직의 슬픔뿐이었다. 그런 아들에게 아버지로서 해 줄 수 있는 말이라고는 그냥 미안하다는 말뿐이다.

좀 더 나은 세상을, 아니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만큼은 내 아이들에게 물려 주지 말자고 그렇게 발버둥 치면서 살았는데. 결국 한치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셈이다. 그래도 험난한 세상에 꿋꿋하게 맞서는 아들이 고맙다.

입대하는 아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이 "미안하고 고맙다" 그 말밖에 하지 못하는 아빠가 부끄럽다. 이런 아버지가 어디 나 하나 뿐일까.

/김기원 경기본사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