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창섭 정치부장(부국장).<br>
▲ 남창섭 정치부장(부국장).

900년 전 중국 북송은 한창 전쟁 중이었다. 거란과 여진이 세운 요과 금이 송을 위협하고 있었다. 송의 황제인 휘종은 금을 견제하기 위해 고려에 대규모 사신단을 파견한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송은 고려에게만큼은 횡제국의 위용을 과시하고 싶었다.

이에 사신단이 타고 갈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선박을 새로이 건조한다. 기록에는 새로운 선박의 크기가 기존 선박의 3배에 이른다고 한다. 당시 국제무역선의 길이가 20~30m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규모가 3배로 커진 새로운 선박의 길이는 약 45m 전후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배의 이름이 바로 중국 고대 신화에 나오는 '신의 배'라 불리는 신주(神舟, 션저우)다.

거대한 신주를 탄 사신단은 중국 남부의 닝보를 출발해 황해를 건너 고려의 영종도, 강화도를 거쳐 예성강 입구의 벽란도까지 오게 된다.

이 같은 내용은 사신단의 일원이었던 서긍이 한 달간의 고려 방문기를 그림과 글로 적어 황제에게 바친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 자세히 기록돼 있다.

 

▲ 고려로 향하던 신의 배 '신주'는 900년이 지난 현재 중국의 우주굴기 상징인 '션저우'로 되살아났다. 중국은 그들의 힘을 외부에 과시하고 싶을 때 '신주'(션저우)를 소환한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중국의 우주굴기는 션저우 프로젝트로 대표된다. 2003년 발사된 '션저우 5호'는 미국, 러시아에 이어 세계 3번째로 발사된 유인 우주선이다. 지난해 우주정거장 건설 프로젝트의 일환인 유인 우주선 발사에 성공한 것이 바로 선저우(神舟) 12호다.

중국의 항공·우주 기술은 우리보다 몇 단계 앞서 있다. 중국은 지난해 55차례나 로켓을 쏘아 올렸다. 미국(45차례), 러시아(25차례)보다 많았다. 2019년에는 달의 뒷면에 인류 최초로 탐사선을 착륙시켰고, 지난해에는 화성에도 탐사선을 보냈다. 중국인들은 항공·우주 기술만큼은 미국에 뒤지지 않는다는 자부하고 있다.

얼마 전 한국의 누리호가 발사에 성공했다. 자체 기술로 개발된 누리호의 발사 성공은 한국을 미국, 러시아 등과 함께 세계 7번째로 무게 1t 이상의 인공위성과 우주선을 자력으로 쏘아 올릴 수 있는 국가로 만들었다.

누리호의 발사 성공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인 나라는 바로 중국이다.

중국 신화통신과 환구시보 등은 누리호 발사성공을 여러 차례 걸쳐 자세히 보도했으며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고 평하기도 했다. 물론 중국 70년대 창정 2호보다 성능이 못하다는 단서를 붙이긴 했지만 말이다.

 

▲ 올해는 한중수교 30주년이다. 어느 때보다 한중간 다양한 협력과 교류가 있어야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와 미중간 극심한 갈등으로 오히려 긴장감만 감돌고 있다.

중국이 미국과 함께 G2로 부상했지만 주변국을 대하는 모습은 실망스럽다. 남중국해 국가와 해양영토 분쟁을 일으킨데 이어 한국에 대해서도 사드배치를 이유로 한류금지령을 내리는 등 주변국에 대한 압박을 이어가고 있다.

900년 전 송나라는 거대한 선박인 신주를 앞세워 자신을 과시하며 다른 나라들의 복종을 강요했다. 오늘날 중국은 해양굴기, 우주굴기를 앞세워 자신을 과시하며 주변국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과 함께 나토 정상회담에 참석함으로써 러시아와 중국에 대응하는 국제적인 연합체에 공식적으로 합류하게 됐다. 미국쪽으로 모든 균형추가 기울었다.

세계의 G2인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펼쳐오던 전임 정부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과 함께 해오던 기존의 한국 외교의 기본틀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900년 전 고려는 북송과 거란(요), 여진(금)과의 균형외교로 대규모 전쟁을 피했다. 북송이 거대한 신주를 건조하고 700여명에 이르는 대규모 사신단을 보내와 위엄을 과시하며 고려를 압박했지만 고려는 이에 굴하지 않았고 끝내 균형외교를 고수하며 살아남았다. 하지만 고려를 압박만 할 뿐 협력을 이끌어내지 못한 북송은 금나라에 이내 멸망당하고 만다.

/남창섭 정치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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