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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흥윤 인천사회복지협의회 사무처장·인천일보 시민편집위원.

20여 년을 모금기관에서 일하면서 많은 기부자와 만나 나눔의 아름다운 모습과 그 선순환적 효과에 대해 감탄할 때가 많았다.

인천의 경우도 일제 강점기 미곡상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교육사업에 투자해 오늘날 인천교육의 기초를 닦은 것은 물론, 일제의 탄압으로 사업을 정리하며 남은 재산을 직원들과 함께 나눠 오늘날 '우리사주'의 모습을 실천한 거상 류군성을 비롯해 금액의 많고 적음을 넘어 정직하고 정당한 부를 나누는 기부자들로 나눔 도시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것처럼 기부와 나눔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국제적인 모금기구들은 각기 자체적인 기부(모금)관련 기준이 있어 무기 제조 기업이나 아동 노동 또는 모유 수유에 영향을 주는 분유 제조 업체 등의 기부금을 받지 않지만 당시 내가 몸담고 있던 기관에는 별도의 기부 제한 및 거부 기준이 없었다.

이처럼 자체 기준이 없을 뿐 아니라 모금목표 달성이 필요했던 기관에서 기부금, 특히 고액기부금을 거절하는 것은 생각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었다.

따라서 담배, 주류회사 등의 기부금을 받았는데 내부에서는 중국의 '흑묘백묘론'을 인용해 '기부자가 누구든지 잘 쓰면 된다'고 생각했으며 사실, 이들 기업의 기부금으로 노숙인, 저소득층을 위한 다양한 복지사업을 펼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기억에 남는 몇 건의 거부 사례가 있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당시 '린다ㅇ'으로 알려진 로비스트를 중심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소위 '방산비리'로 당시 이 사건으로 떨어진 별이 수십 개가 넘는다고 할 정도의 큰 사건이었다

언론 보도가 집중되던 어느 날 관련 미국 기업으로 기부 제안을 받았다. 놀랍게도 얼마를 기부하겠다가 아니라 '얼마가 필요하냐'는 것이었다. 내부 논의를 통해 당시 가장 큰 기부기업인 S사 기부금액의 두 배를 제안했는데 '긍정적 검토' 답변을 받았다. 내심 거절하리라 생각하고 부른 금액인데 매우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기부 규모와 방법을 논의 중에 사건이 정식 기소가 되면서 기부금 논의도 가라앉고 말았다.

또 다른 사례는 외국계금융그룹 '론ㅇㅇ'로 이곳 역시 '먹튀' 논란으로 사회적 비판이 높아지자 기부 제안이 들어왔다. 합리적인 기부 거절을 위해 연간 총 모금액의 절반에 해당하는 수천억 원의 금액을 제시하고 협의를 했는데. 역시 정식 재판이 열리면서 '없던 일'이 되었다.

이밖에 몇몇 개인과 기업, 국가 고위직 후보 등으부터 부자연스런 기부 논의가 있었는데 대부분 큰 계약이나 사업의 잘못 또는 정치, 사회적으로 불리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일종의 '면죄부'로 기부와 나눔을 생각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씁쓸해하기도 했다.

인천 모 외국계기업에서 아이들과 어르신들께 꼭 필요한 식품을 기부했는데 일제시대 전범기업 명단에 올라있는 곳이라 이제 기부와 나눔에 역사적 문제까지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있다.

최근 윤리적인 모금과 기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 지고 있다.

과거 모든 기부금은 선하다는 생각에서 결과만을 중요시했던 것에 비해 어떻게 부를 축적하고 나누는지를 살펴보고 가능하면 정직하고 정당한 기부를 통해 정신적, 도덕적인 가치까지도 이루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기부와 나눔이 진정한 선순환의 기적을 만들기 위해서는 결과 못지않게 과정이 중요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전흥윤 인천사회복지협의회 사무처장·인천일보 시민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