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구 송림동 샛골 골목에 선 필자.

얼마 전 부산 기행을 했다. 화가, 소설가, 사진가, 방송PD, 문화기획자 등 다양한 문화예술 분야에서 일하는 이들과 함께 했다. 흰여울문화마을, 감천문화마을, 보수동책방골목, 깡깡이예술마을, 초량 이바구길 등을 둘러봤다. 2박3일 동안 줄곧 오래된 동네 골목을 '만보'했다.

2018년 7월 첫 주부터 오늘까지 '골목만보'라는 이름으로 107회 칼럼을 연재했다. '골목만보'는 중의적 표현이다. 골목에 들어가 1만보(萬步)를 걷자는 것과 한가롭게 만보(漫步)로 거닐어보자는 뜻이다. 그 의미대로 만보를 하며 사라져가는 인천 골목의 이야기와 풍경을 전하고자 했다. 지난 4년 동안 이 골목을 걷는 동안 저 골목이 사라지는 것을 생생하게 보았다. 송림초지구, 십정구역, 대헌지구, 청천구역, 산곡구역, 부평(구)사택구역, 숭의동여의구역, 신흥동관사구역, 미추구역, 전도관구역 등 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은 동네가 그 시기에 없어졌다. 만보로 걷다가는 골목 풍경을 미처 담을 수 없다는 조급함과 걱정이 앞섰다. 만보가 속보(速步)가 되었다. 이제는 사진 저장용 외장 하드에서 꺼내야 볼 수 있는 골목들이 수두룩하다.

부산 기행 중 감천마을의 한 카페에 걸린 사진 한 장을 보았다. 2019년 11월 한-아세안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부산을 방문한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감천문화마을을 방문한 모습이다. 이 마을은 6·25 피난민이 정착해 살아온 낙후된 산동네였다.

10여 년 전 '보존과 재생' 개념의 도시재생 사업이 펼쳐졌고 지금은 지역을 대표하는 명소로 탈바꿈했다. 전망 좋은 카페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며 대통령은 “이 마을은 좋은 영감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인천의 골목을 만보하며 이미 많은 영감을 받았다. 골목 덕분에 사유의 근육도 튼실해졌을 뿐만 아니라 따듯한 위로와 심적 치유를 받곤 했다. 비록 연재는 마치지만 한 줄기 골목이라도 남아있는 한 나의 골목만보는 계속될 것이다. 골목은 내게 오솔길, 강둑길, 둘레길, 순례길이다. <끝>

▲&nbsp;유동현 인천시립박물관장.
▲ 유동현 인천시립박물관장.

/유동현 인천시립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