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경 탐사보도부장(부국장).<br>
▲ 이은경 편집국 국차장 겸 탐사보도부장(부국장)

정치권에 세대, 나이 논쟁이 뜨겁다.

여야를 막론하고 화두다.

대통령 선거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패배한 더불어민주당은 586용퇴론에 90년대 학번, 70년대생이라는 97세대 기수론을 놓고 여전히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이제는 해볼 때가 됐다는 97세대 의견에 586은 맞서고 있다.

97세대인 이들도 이제 40∼50대가 됐지만 민주당에서는 얼치기 어린애 취급인 건 아닐지.

586세대는 386을 넘어 486에 이어 오늘까지 왔다. 민주화 운동의 주역이라는 이름으로 586에 이른 그들에게 97세대는 항상 빚쟁이 같은 취급을 받았다. 그들의 민주화에 덕을 본 세대라는 이유로 그늘에 가려져 더욱 모진 세월을 버텨야 했다. 그야말로 97세대는 그늘에 가려져 있는 비운의 존재다.

97세대의 삶은 박복했다. IMF가 터지면서 가정형편이 어려워진 데다 일자리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청년들의 꿈과 낭만은 포기해야 했다. 또 결혼해 내 집이라도 마련할까 싶을 시기에는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전 세계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10여년에 이르는 금융위기를 겪어야 했다.

97세대는 꽃 한번 피우지 못한 채 현재 MZ세대에게도 꼰대의 경계 선상에 놓인 세대로 취급받고 있다.

586이 우리 사회를 상징하고 누렸던 시간에 비해 97세대 기수론은 너무 늦었다. 586은 그들에게 있어 97세대는 애 같은 존재인지, 아님 그들이 누리는 특권을 놓기가 싫은 건지 고백해야 할 시점이다.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이준석 당 대표는 30대 청년으로 주목받았다. 정치란 나이 많은 사람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지만 그야말로 보수당에서 탄생한 36세 청년 대표는 젊은 정치의 신호탄으로 보였다. 당시 국민여론조사에서 58% 넘는 지지를 받은 이 대표는 새로운 정치를 꿈꾸는 시민들의 바람이 담긴 것은 아닐까.

그러나 대선과 지방선거 이후 여당 중진의원들이 이준석 대표에게 쏟아낸 단어들은 민망하기 그지없다.

'철부지' '애송이'라며 사실상 나이를 빙자한 인신공격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준석 대표를 나이가 많은 선배라는 이름으로 어린 철부지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객관적이지 않다. 오히려 세대 간 갈등만 부추기는 꼴이다.

586세대 대안으로 40∼50대 97세대 기수론도 갑론을박 거리가 되고, 당 대표에 대한 불만은 '애송이'로 표현되는 우리 정치 상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이같은 분위기는 공교롭게도 선거 이후 터져 나왔다. 그동안 여야 정치권은 선거 때만 되면 청년 표심을 얻겠다고 이런저런 공약들을 내놓고 간담회를 여는 등 호들갑을 떨었다. 그대들이 미래 주역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이랬던 정치권에서 세대와 나이를 거들먹거리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젊은이들을 그저 선거 수단으로만 활용했던 것이 아닐까.

정치권은 지난 2019년 12월 공직선거법 개정안 통과에 따라 선거권 연령을 기존 만 19세에서 만 18세로 하향 조정했다. 또 여야는 선거기간 동안 고등학생을 영입해 선거운동에 활용했다. 이같은 노력은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들로부터 한표라도 더 얻자는 편법이었나.

정치는 누구의 소유물이 아니다. 세대 간 갈등이 접점을 찾고 세대 간 이해가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 취업은 여전히 힘들고, 내집 마련하기도 어려워 아이는 낳을 생각도 하지 못하는 세상이 됐다. 이념보다 처절한 생존 문제에 직면한 젊은 세대에게 '철부지'라는 윽박보다 이런 사회를 만든 정치권의 반성이 먼저 시작돼야 하지 않을까.

자신들이 최고이며 현자로 여기는 이들에게 고한다. 꼰대가 아닐지 자신을 돌아보라고. 또 새로운 세상을 위해서는 이제 기득권을 내려놓을 때도 됐다고.

지금 우리 사회에서 처절한 삶을 살지 않는 세대는 없다. 고로 철없는 세대는 없다.

그리고 그들도 나이는 먹을 만큼 먹었다.

/이은경 편집국 국차장 겸 탐사보도부장(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