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마와 싸우며 방역 일선에 서다


2020년 설날 아침 귀성길
코로나19 지역 첫 확진 소식
유턴 후 29개월간 방역 지휘
사망자, 전국 1% 미만 묶어

작년 대유행 때 혈액암 판정
“고생하는 직원들 눈에 밟혀”
퇴임 강권 속에도 자리 지켜

36년 공직 마치고 은퇴 준비
▲ 김영호 평택보건소 소장이 22일 코로나19 선별진료소 계단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에서 진두지휘 했던 김 소장은 36년 공직생활을 마치고 24일 퇴직한다. /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

2년하고도 5개월.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팬데믹. 마스크를 벗어 던진 최근에도 수천 명씩 쏟아져 나오는 확진자들 속에서 방호복을 벗지 못한 이들은 여전히 코로나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김영호(59) 평택보건소장의 하루도 그러했다. 2020년 설날 아침, 평택지역에 첫 코로나 환자가 나오면서 고향길로 향하던 운전대를 돌려야 했던 그 날 이후, 그는 확진자 수를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를 열고 있다.

“국내에서는 4번째 코로나 확진자였고, 평택시에서는 첫 번째 확진 환자였기 때문에 지자체 보건소엔 비상이 걸렸습니다. 명절 연휴였던 때라 확진 환자 소식을 듣고 서둘러 발길을 돌려야 했죠.”

당시만 해도 한국 사회 전체는 대혼란에 빠졌다. 코로나19는 생소했고 질병에 대한 데이터는 전무했다. 이미 한 차례 메르스 사태를 경험해 본 김 소장은 최선봉에서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들을 침착하게 풀어나갔다.

“당시엔 어떤 위중증 결과를 가져올지 모르니 시민들은 혼란스럽고 불안했습니다. 민원도 쇄도했고 공황상태가 야기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죠. 질병에 대한 데이터가 전무한 상황에서 메르스를 한 차례 경험해 본 게 어쩌면 불행 중 다행이었습니다. 메르스 경험을 토대로 대응 매뉴얼을 하나하나 짚어갔습니다.”

코로나 확산세가 더해갈수록 최전방 일선에서 사투를 벌여야 했던 의료진들은 지쳐만 갔다. '당신' 몸이 상하는 줄도 모르고 시민들의 방역에만 매달려 온 시간이었다. 조금씩, 조금씩 일상을 회복해 가는 요즘, 김 소장은 미소를 되찾은 시민들과 직원들의 얼굴을 볼 때 어느 때보다 보람을 느낀다.

“여전히 코로나 확진자는 나오고 있기 때문에 한 시도 놓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일선에서 최선 다해준 직원들 덕분에 평택시의 현재까지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는 전국 1% 미만으로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방역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준 시민분들의 힘이 컸습니다.”

코로나의 확산세가 한창이던 지난해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평택보건소의 사령탑을 맡아 오던 김 소장이 혈액암 판정을 받게 된 것. 직원들은 김 소장의 퇴임을 강권했고 더는 일선에 나서는 일을 만류했다. 그런데도 김 소장은 의지를 굽힐 줄 몰랐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 혈액암 판정을 받게 되면서 정년보다 앞서 퇴임을 권유받게 됐습니다. 그렇다고 당장에 자리를 박차고 나갈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루에도 수천 명씩 확진자가 나오는데, 무책임하게 돌아설 순 없었죠. 고생하는 직원들이 눈에 밟혀서 그렇게 하지 못하겠더라고요.”

시민의 건강을 책임져 온 36년, 방역에만 매달려 온 20년 같은 2년, 의료기술직 출신 최초로 보건소장 자리에 오른 그가 지난날을 모두 뒤로한 채 '아름다운 퇴장'을 준비하고 있다.

“퇴임을 앞두고 언제 다시 불어닥칠지 모를 코로나 재유행에 대한 대비책 마련을 당부했습니다. 특히 지난 2년 동안 애써 준 직원들에게는 코로나로 힘들었겠지만, 시민들을 위해 일 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성공한 인생'이라 말해주고 싶습니다. 끝으로 저는 떠나지만, 보건소는 계속해서 시민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