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웹툰)는 스트리밍되기 전의 이야기'라는 표어는 네이버 웹툰 북미 홈페이지의 슬로건이기도 했다. 해당 홈페이지는 이 문구를 트위터에 사과문을 올린 지 6일이 지난 6월21일까지도 브라우저 타이틀로 삼고 있었다.

얼마 전 한 유튜브 채널에서 대담을 진행했다. 다른 직업을 지닌 이를 붙여놓고 서로가 서로에게 공부가 되는 지점을 찾는 시리즈 영상이었는데, 문학평론가이신 분께서 만화 칼럼니스트인 나와 같은 회차에 출연해 시종일관 흥미롭고 재미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한데 진행 측에서는 서로 '상반된' 지점을 강조하려 했는지 “만화는 문학인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끼워넣었다.

진행 측에 악의 같은 건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만화가 제 평가를 받지 못하던 옛 시기 만화가분들이 만화의 인식을 높이기 위해 시도했던 명작의 만화화 같은 일련의 고군분투들이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이 때 나는 만화 덕이자 종사자로서 만화가 문학의 하위라거나 만화도 문학 취급을 받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생각한다는 인상을 일말이라도 주지 않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웠더랬다. 그런데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네이버 웹툰이 해외에서 저지른 일덕에 힘이 쭉 빠지고 말았다.

네이버는 한국에서 상업 웹툰 서비스의 대표 주자이자 최근 해외 진출에도 적극적인 업체다. 한국 웹툰이 다 네이버 것은 아니지만 네이버가 상업 웹툰을 이끌고 가는 업체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런 업체가 해외에 웹툰 광고를 한다는 건 그만큼 '웹툰'이 국내용만이 아니게 되어 가고 있는 상황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는데, 문제는 그 광고전에 동원한 문구다. 현지 작가들 사이에서 논란에 오른 문구는 “만화는 문학의 재미난 부업이다(Comics are literature's fun side-hustle)”였다. 만화의 장르 가운데 하나인 그래픽노블을 '웃기기만 한 일반 만화에 비해 이야기를 진지하게 문학적으로 표현한 만화'라고 소개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무지와 조롱이다. 한데 논란은 그뿐만이 아니다. 해당 광고와 홈페이지에는 “우리는 스트리밍되기 전의 이야기(We're the story before it streams)”라는 문구도 쓰였다. 만화가 넷플릭스 등지에 영상화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을 팔며 화제가 되는 건 비일비재한 일이지만, 만화가 곧 영상화를 위한 재료 그 자체인 건 아니다. 한데 명색이 웹툰의 대표 업체가 이를 다른 무엇도 아닌 광고 문구로 썼다. 즉 내부 검수가 끝난 업체가 내어놓은 '선언'이다.

근래 국내 상업 웹툰 서비스 업체들은 영상 스튜디오를 직접 들이는 등 다각도로 확장하려는 움직임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문제는 이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저작물 권리 확보 전략 속에서 창작자 지망생들을 작품의 주인으로서가 아닌 영상화를 위한 부품을 만들어내는 자로 취급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자연스레 웹툰 즉 만화의 위치를 타 형식의 하위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광고 문구들에 국적을 불문하고 업계인으로서 분노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이 일련의 움직임에서 기인한 발상을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양 정확하게 짜인 문구로 내어놓았기 때문이다.

논란이 커지자 네이버 웹툰의 북미 법인은 “창작자는 웹툰의 근간이다”라며 창작자들을 대상으로 삼은 사과문을 6월15일 홈페이지가 아닌 소셜 네트워크, 정확하게는 논란이 된 트위터에만 게시했다. 광고야 문구를 고치겠지만, 업체의 속내가 바뀌지 않는 이상 재발 방지가 될까는 의문이다. 어쨌거나 나는 괜한 바보짓을 한 기분이다. 업계 대표 업체가 대놓고 저러는데 내가 뭐라고 신경을 곤두세우며 애를 썼을까?

▲ 서찬휘 만화 칼럼니스트
▲ 서찬휘 만화 칼럼니스트.

/서찬휘 만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