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영 경제부장.
▲ 이주영 경제부장.

자기 전 아들과 세 글자 끝말잇기를 했다. '파발마'로 공격했더니, '마기꾼'으로 응수한다.

'마기꾼'. 생소한 이 말에 “별로 안 좋은 비속어 같다. 가급적 쓰지 않는 게 좋겠다”고 훈수를 뒀지만, “세상이 다 쓴다. 비속어가 아니다”라며 핀잔을 들었다. '마기꾼'은 마스크와 사기꾼의 합성어다. 상반된 '마해자'(마스크 피해자)도 있다.

2020년 1월부터 마스크는 일상이 됐다. 코로나19 감염을 막기 위해 전지구적으로 사용 중이다. 바깥에서는 선택적으로 사용토록 완화됐지만 여전히 외출 때 필수품은 '마스크'요, 거리를 걸어도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창피하고 눈치 보인다.

마스크로 가려지지 않은 얼굴이 부담스럽다.

마스크는 참 편하다. 표정을 숨길 수 있다. 마스크로 입꼬리 모양과 표정 상당 부분을 감출 수 있다. 그렇기에 무표정하던 자리도, 표현이 과감해진다. 그리고 뻔뻔해진다.

다소 거품이 끼거나, 농이 섞이고, 거짓이 더해져도 상대방은 알 수 없다. 눈빛만으로 표정을 읽고 속내를 파악할 고수는 세상에 드물다.

올해 들어 두 번의 선거를 했다.

대통령의 색이 바뀌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 구중궁궐 뒤편에 깊숙이 자리한 청와대는 더는 은밀한 곳도 위대한 곳도 아니다. 대신 서울 한복판에 있고 풍수지리의 길지라 구전되는 '용와대'가 대통령 집무실이 됐고, 공관과 분리됐다. 일단 성공적이다.

지난 3월 대선 약속은 하나씩 깨져가고 있다.

검찰 출신 대통령은 검찰 공화국의 국민 우려를 고위직 인선으로 드러냈고, '아직 부족하다'는 뉘앙스를 남겼다. 논란이 된 부인 문제에 '최소화하겠다'고 했지만, 여사 호칭에 대통령 부속실 설치를 언론에 흘리고 있다. 보수 언론은 연일 대통령 부인의 옷스타일, 머리모양 등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영화 관람 때 주전부리한 팝콘의 맛을 소개했다. 뒤편에 앉아 팝콘을 씹는 사단장 출신 3성 장군인 대통령 경호처장의 모습이 코미디다.

안보는 이미 흔들리는 모습이다. 연이은 북한 위협과 핵 문제에도 서울 한복판을 길 막고 차량 통제하며 빵을 샀다. 전 정권 심판 카드를 꺼내며 새 정권의 설익은 안보의 민낯을 덮었다.

경제는 낭떠러지에 매달렸다. 코로나19로 위기에 처한 중소상인을 위한 천문학적 세금 지원이 끝나자 부자 감세와 가진자 정책이 쏟아졌다. 그러더니 “경제 어렵다”고 경고했다. 서민은 겁먹었다. 불과 두 달 전 코로나 서민 지원을 포풀리즘, 나라 곳간 걱정으로 매도하던 공무원들은 다 어디 갔을까. 정권이 바뀌니 곳간의 문을 활짝 열렸다.

정권의 색이 바뀌자 일본이 중요 외교 변수로 떠올랐다. 일본으로 사절단이 급파됐고, 일본 경제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곧 지소미아도 할테고, 위안부·소녀상 문제가 불거질테다.

“일본에 대한 환상을 품지 마라. 이 민족의 현재와 장래에 가장 위험스러운 나라가 일본임을 똑똑히 명심하자.”

고 리영희 교수가 30년 후 나라 사정을 꿰뚫듯 남긴 말이다.

이미 사다리는 걷어차였다. 대통령을 지척에서 보필하는 비서실장이 '공기업 민영화' 가능성을 꺼냈다. 전기료 인상은 조만간 원자력 발전으로 이어질거다.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정책으로 없는 자가 설 곳은 한 뼘으로 줄어들 위기다.

새 정권은 국민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지지로 출범했다. 승자독식 민주주의 사회에서 새 정권은 나머지 절반의 국민을 품어야 한다.

대선 때 국민을 설득했고, 정권 출범 후 한 줄기 희망을 가졌다. 빵을 사고, 영화는 볼 수 있다. 전 정권을 심판할 수도 있다. “대통령이 처음이라….”라는 말까지도 안을 수 있는 게 국민이다.

그러나 '서민적'이요, '안보적'이며, '경제적'이란 마스크 정책들이 한 달 만에 깨져나가는 것은 너무하다.

새 대통령 새 정부에 바란다. 제발, 이권과 권력이 아닌 서민을 위해 마스크를 벗고 생얼로 국민과 마주하라고, 그리고 솔직해지라고.

벌써 새 정부가 마기꾼이란 비판에 직면하면 어쩌나.

/이주영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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