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문일 논설위원.
▲ 이문일 논설위원.

“건축은 빛과 벽돌이 짓는 한편의 시(詩)와 같다.” 한국 현대 건축의 선구자로 꼽히는 김수근(1931~1986년)이 평소 지니던 '철학'이다. 그가 설계한 주요 건물은 자유센터·정동빌딩·한국과학기술연구소 본관·부여박물관·청주박물관·올림픽 주경기장 등이다. 눈길을 끌 수밖에 없는 곳이다. 김수근은 서양 건축 제1세대로서 새로운 건축 이론과 정신을 연구하고 다른 건축가들과 공유하는 데에 힘을 기울였다는 평을 듣는다.

자유공원이 자리한 응봉산 자락엔 김수근이 설계한 집이 있다. 건축주인 고(故) 이기상 영진공사 회장의 요청을 받아들여 1977년 '언덕 위의 벽돌집'(송학동)을 지었다. 이 단독주택은 옛 개항장의 지리적·공간적 특성을 잘 반영한 공간으로 알려져 있다. 김수근은 일제 강점기 정미소였던 건물을 헐 때 나온 벽돌로 내벽을 쌓고, 문화재 보수용 전돌로 외벽을 마감했다. 거친 질감의 파벽돌, 동양적 아치 구조, 자연 채광을 살린 다양한 형태의 창 등 수려한 건축미를 자랑한다.

그렇게 탄생한 이 건물은 '근대건축문화자산 재생 사업'을 벌이던 인천도시공사(iH)의 눈에 띄었다. iH는 2019년 이 집을 매입해 '이음 1977'이란 문패를 달고 개조 작업에 들어갔다. 시간과 사람을 이어주는 시민문화 공간으로 꾸민다는 게 iH의 복안이었다.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며 공공 개방을 위해 오래된 시설을 수리하는 정도로만 진행했다. 근대건축문화자산 재생은 인천시만의 특색을 발굴하려고 역사·지역·건축적 가치를 지닌 건축물을 개조해 시민들에게 돌려주는 사업이다.

근대건축문화자산 재생 사업 1호인 '이음 1977'이 재단장을 마치고 지난 14일 시민들에게 활짝 문을 열었다. iH는 시민 품으로 돌아간 이음 1977이 개항장 문화생태계 조성을 위한 문화전진기지로서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앞으로도 소멸될 수 있는 인천의 근대건축문화자산을 보전해 지역의 문화거점으로 만들어가겠다는 게 iH의 소망이기도 하다.

이음 1977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공원인 자유공원, 개항기 외국인 사교장으로 활용된 제물포구락부, 인천시민애(愛)집(옛 인천시장 관사) 등과 함께 개항장 지역에 자리를 잡고 있다. 자유공원은 서울의 파고다공원(1897)보다 몇 년 앞서며, 제물포구락부는 인천 개항(1883년) 후 서구 외교관들이 모이던 유흥 클럽이다. 시장 관사는 일제 시대 일본인 사업가의 별장이 있던 곳이다.

인천 여기저기엔 아직도 근대건축물과 문화적 가치 등이 남아 있다. 그래서 인천시는 이런 유무형의 자산을 찾아내 오늘에 되살리려고 힘을 쏟는다. 시민들이 여가를 즐기고 역사를 향유할 수 있는 문화공간을 늘리자는 취지에서다. 역사·문화자원과 연계해 이야기가 있는 곳을 더 많이 조성해 풍성한 인천을 만들었으면 한다.

/이문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