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림동 금송지구재개발지역에 있는 흙벽돌집.

'아직 저런 집이 있었구나' 한동안 넋 놓고 보았다. 얼마 전 동구 송림동 금송지구재개발지역에서 산동네의 애환을 고스란히 품은 '흔적'을 마주했다. 기억 속에서 가물가물한 '흙벽돌집'을 보게 된 것이다. 언뜻 보고는 벽돌이나 시멘트로 지은 집인 줄 알았다. 빈집으로 남게 되면서 시멘트 벽체가 떨어져 나가며 안쪽에 있던 황토색 벽이 그대로 드러났다.

어렸을 적 내가 살던 동네에서는 집주인이 직접 집을 짓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먼저 인근의 한적한 산마루에서 고은 진흙을 퍼와 집터 근처 공터에 수북이 쌓았다. 그 진흙으로 '보로꾸(블록)'를 만들었다. 진흙을 반죽해 나무틀에 넣고 찍어낸 후 너른 공터에 줄지어 놓았다. 이삼일 햇볕에 말리면 진흙은 돌덩이처럼 단단해졌다. 그동안 집주인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비라도 내리면 벽돌은 곤죽이 되었다.

동네 아이들도 비가 내리지 않기를 기원했다. 블록 작업이 시작되면 친구들의 입이 튀어나왔다. 그 공터는 우리의 축구장이었기 때문이다. 빨리 작업이 끝나 그곳이 다시 공터가 되길 바랐다. 나중에 그 공터는 전문적으로 블록을 만드는 집장사들의 차지가 되어 우리는 결국 그곳을 포기해야 했다.

최근 숭의동 전도관구역(쇠뿔고개), 송림3구역(헐떡고개) 등 인천 곳곳의 산동네가 재개발로 철거되면서 이러한 흙벽돌집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그 산동네에는 볏짚이나 루핑으로 지붕을 얹은 6·25 전쟁 피난민의 집들이 시루떡 포개 놓은 것처럼 빼곡했다. 요즘 말로 DIY로 지은 집들이기 때문에 닮은 것 하나도 없는 각양각색의 집들이었다. 우리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묻어 나는 집들이 이제 폐기물로 처리돼 사라지고 있다. 60여 년의 모진 비비람에도 끄덕없던 흙벽돌집도 포크레인의 삽날 한방에 그저 황토색 진흙 바람으로 날아가 버린다. 이제는 역사 사진첩에서나 볼 수 있는 '진흙 보로꾸집'을 어떻게 박물관으로 옮겨올까 고민 중이다.

▲ 유동현 인천시립박물관장.
▲ 유동현 인천시립박물관장.

/유동현 인천시립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