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찬휘 만화 칼럼니스트
▲ 서찬휘 만화 칼럼니스트.

단언컨대 근래의 연이은 선거 국면에서 민주당을 망친 건 '똥파리'와 '수박'과 '페미'라는 말이다. 똥파리는 문재인-이낙연 지지자를 가리키는 멸칭으로써 한 방송 진행자가 인터넷에 유포했던 말이고 수박은 '전라도 사람의 머리는 깨부숴야 한다'는 소리를 '겉과 속이 다르다'로 감히 아닌 척 위장한 말이며, 페미는 페미니스트를 줄인 말인데 남자들이 고분고분하지 않은 여성을 가리킬 때 굳이 이 표현을 욕인 양 쓰는 중이다.

민주당은 명색이 민주의 이름을 건 정당이면서 선거에서 조롱과 혐오와 차별의 의도를 담은 언어로 여론을 오염시키는 과정을 막기는커녕 오히려 적전분열을 막자는 명분 하에 적극적으로 조장하고 방치했다. 언어 오염으로는 스승 격인 국민의힘의 위엄도 이 기막힌 청출어람 앞에 빛이 바랠 지경이다.

그렇다고 국민의힘이 낫느냐 하면 천만의 말씀이다. 명색이 대표란 자가 여성과 장애인에 이르는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벌인 전략적 혐오 행위에 뉴스와 여론이 모조리 휩쓸려 들어갔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혐오에 혐오를 굳이 더한 나머지 차별화에 실패하며 상대의 결집 전략을 배겨내지 못했다. 그나마 민주당이 대선 막판 0.7% 차이까지 따라 붙은 건 20~30대 남성들의 차별주의 연대에 제동을 걸고자 했던 여성들의 대거 입당과 그 구심점 역할을 한 젊은 여성 비대위원장의 노력 덕이었지만, 막상 대선과 지선에 패색이 짙어지자마자 소셜 네트워크에서는 “페미들 때문에 졌다”, “저 여자 내보내라”는 대선 주자 지지자들의 고함이 빗발쳤다. 급기야는 비대위원장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박근혜 팬클럽에 빗대어 '박사모'라 부르는 자들까지 등장 중이니 실로 악랄하기 그지없다.

이상과 같은 흐름을 놓고 보면 양쪽의 지휘부 모두 오염된 언어를 거둘 생각이 없는 이들을 지지 기반으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데 이게 정당만의 책임이냐면, 실제로는 대중 문화예술의 제작자와 중추 소비층의 역할도 컸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2016년 게임 <클로저스>의 성우가 페미니즘 메시지를 담은 티셔츠를 입었다가 게임 제작사에서 퇴출당했던 사건 이래로 안티 페미니즘은 강한 승리감을 획득했고, 그 이후 온갖 곳에 “페미세요?”라는 질문으로 시작되는 '사냥'을 업계의 방조 하에 벌이고 있는 중이다. 남성들이 주로 활동하는 게임 유저 커뮤니티는 안티 페미니즘으로 대동단결 중이고, 웹툰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발악하듯 앵글을 여성 캐릭터의 하반신으로 내리고 과거의 가부장적, 룸살롱식 언어를 채용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웹툰 연재처 어느 곳도 이에 관한 근본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대충 모자이크 처리나 함으로써 책임을 회피하는 와중에, 남성들 사이에선 “페미 검열” 같은 소리나 튀어나오는 중이다. 이 사고의 작동 기제는 선거 패배 전후 민주당 내에서 여성 비대위원장을 향해 터져 나온 발언과 하등 다를 바 없다. 페미니즘만이 아니다. 민주당 대선 후보를 지지한 유명 작곡가, 가수들 가운데 수박이네 똥파리네 하는 말을 얼굴까지 드러내놓고 입에 올린 이들이 있다는 점은 내 아래에 마땅히 깔아뭉개도 되는 대상을 상정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 지지 정당 이전에 사회 전반에 공공연히 퍼져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결국 이번 선거들의 결과에는 대중 문화예술은 물론 이를 향유하는 커뮤니티, 소셜 네트워크들의 언어적 오염이 기여한 바 크다. 이 모든 흐름은 다 연결돼 있으며, 어느 정당도 _ 정확히는 민주당조차 이러면 안 된다는 몸짓 하나를 보이지 않았다. 즉 정치인들이 행한 건 시민이 허락한 혐오요 시민이 허락한 조롱이며 시민이 허락한 차별이다. 앞으로 최소 4~5년은 사회의 평균적 사고가 바닥 밑의 지하로 향할지 바닥을 칠지의 싸움이다. 무릇 대중 문화예술인은 정치를 탓하기 이전에 우리 스스로 언어 오염을 점검해야 할 것이다.

/서찬휘 만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