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부평구에 고유의 특색을 가진 작은 도서관 두 곳이 있다. 신나는 여성주의 도서관 '랄라'와 출판 스튜디오 '쓰는 하루'다. 두 곳은 시민과 밀접하게 존재하며 문화예술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한편 문화 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공간 역할도 한다.
신나는 여성주의 도서관 랄라
'새로운 세상' 꿈꾸는 공간
어린이 도서관이 여성주의 도서관으로 변신
페미니즘 관련 교육·모임 풍성…대출도 가능
부평구 후정동로 60 주택가 골목 3층에 자그마한 도서관 간판이 보인다. '신나는 여성주의 도서관 랄라'라는 이름의 이 도서관 내부는 카페처럼 아늑하고 의외로 탁 트인 서가가 인상적이다. 여성주의를 테마로 한 도서관이기에 페미니즘 관련 도서가 주를 이룬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여성주의를 주제로 한 도서관인 랄라는 인천 여성단체 인천여성회의 부설 기관이다. 2003년 '신나는 어린이 도서관'이 전신이며 이후 지금의 여성주의 도서관으로 탈바꿈했다. 도서관을 매개로 성 평등에 대한 담론을 나누고 여성주의와 관련한 독서 활동, 문화 활동을 하려는 취지다.
일반 도서관과 같이 도서 대출과 반납이 이뤄지고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특히 도서관 한 쪽에 '잠깐냅둬방'을 운영하고 있다. 방에 들어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사색하기 안성맞춤이다. '룰루랄라모여방'은 특강이나 모임을 할 수 있도록 마련됐다.
랄라에서 진행하는 문화예술, 인문학, 페미니즘 교육과 모임도 활성화돼 있다. '여성주의 타로' 라던가 페미니즘 특강, 치유하는 글쓰기, 바느질 모임, 북콘서트, 전시회 등이 추진됐거나 올해도 계획돼 있다.
이번 달엔 제철 채식만들기 '빛이될거야'와 동네가수 이내님과 함께하는 토크콘서트 '아주 작은 에코 페미니즘 학교', 여성주의현대미술가 이충열의 전시와 워크숍 등을 준비하고 있다.
신나는 여성주의 도서관 랄라는 남녀노소 상관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화∼목요일 오전 10시에서 오후 6시, 금·토요일 오후 2시부터 오후 9시까지 운영하며 일·월요일은 문을 닫는다. 1인 5권 14일간 대출 가능하다.
황보화 관장 “각자의 가치 지향하는 것이 여성주의”
황보화 신나는여성주의도서관 랄라 관장에게 '여성주의'의 정의에 대해 우선 물었다.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지만 성 평등을 지향한다는 것만은 이견이 없을 겁니다. 여자다움, 남자다움에 갇힌 성별 이분법을 넘어서 각자의 고유한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 여성주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만 아주 다양한 정의와 의견이 있죠. 생물학적 여성과 여성의 인권 운동 측면에서 페미니즘을 바라보는 시각도 있고요.”
2019년부터 도서관을 맡은 황 관장은 현재 여혐·남혐으로 대변되는 페미니즘에 대한 왜곡된 시선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페미니스트가 페미니스트라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여성주의 도서관의 역할이 더욱 강조되는 이유다.
“예전 대통령을 뽑는 선거에서 후보들이 '페미니즘 대통령'을 선전했다면 지금은 '반(反) 페미' 구호가 나오는 상황이죠. 여성주의가 숨겨야 할 것이 된 어렵고도 싸우기 무서운 실정입니다. 왜 여성주의가 퇴보하는가, 페미니즘이 왜 퇴색되어가는가에 대한 고민이 깊습니다.”
황 관장은 지금이 어느 때 보다 더 여성인권과 관련한 개념을 공고히 하고 여성주의 활동에 대한 역할을 강조해야 할 때라고 봤다. 그러기에 안전한 공간 '랄라'를 중심으로 말이다. “올해는 민간 시설로써 겪는 열악한 어려움을 극복할 대안을 모색하려고도 합니다. 후원만으로 안정적인 운영이 쉽지 않아 우리 사회 꼭 필요한 도서관이 빛을 잃을까 싶기 때문입니다.”
출판 스튜디오 '쓰는 하루'
'나만의 책' 꿈이루는 장소
'글쓰기~유통' 모든 출판 과정 소규모로 진행
카페·갤러리·모임 등 공간…독립서점 기능도
김한솔이 작가는 남편과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다가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전문 작가가 아닌 이들은 하나같이 출판의 어려움과 벽을 느끼고 있었다. 2년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부부는 그래서 결심했다. 누구나 이야기를 쓰고 누구나 출판해 책을 낼 수 있게 하자! 그렇게 출판 스튜디오 '쓰는 하루'가 2019년 인천 부평구 부평대로165번길 26 1층에 생겼다.
자신만의 책을 출간하고자 하는 이라면 이곳에서 얼마든지 작가가 될 수 있다. 쓰는 하루에서는 글쓰기와 도서 편집, 제작, 유통까지 일련의 출판 과정을 소규모로 진행하고 있다.
나의 살아온 이야기가 소설이 되기도, 주변을 본 감상이 시가 되기도, 허구의 상상력이 장르물이 되기도 해 80명이 쓰는 하루에서 작가로 데뷔했다. 이를 계기로 전문 작가의 길을 걷기도 한다.
출판뿐 아니라 쓰는 하루는 카페와 갤러리도 겸하고 있었다. 책을 구매할 수 있는 독립서점의 기능도 한다. 글쓰기 워크숍과 문화예술 소모임도 바쁘게 이뤄지고 있었다.
김한솔이 대표 “많은 사람이 출판 가볍게 생각했으면”
쓰는 하루의 대표 김한솔이는 제3회 브런치 출간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받으며 등단한 작가다. <엄마야, 배낭 단디 메라> 등 다수의 작품을 발표했다.
“책과 여행을 좋아했었어요. 남편과도 함께 즐기며 살다 보니 이렇게 여러분들을 위한 스튜디오를 마련하게 됐습니다.”
출판을 원하는 일반인의 진입장벽을 낮췄다는 점에서 쓰는 하루는 그동안 어렵게만 느꼈던 출판문화의 혁신을 이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직접 출판에 관여하며 주문 제작하기 때문에 비용도 합리적으로 줄일 수 있지요. 인천에 특히 출판사가 많지 않은데 이런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인천 토박이로 부평에 살다가 자연스럽게 부평에 장소를 마련한 그는 많은 사람이 책과 출판을 가볍게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요즘 책을 잘 안 읽잖아요. 활자에 약하기도 하죠. 하지만 여전히 평범한 일상을 책이라는 매체로 만들고 싶어하는 이들이 있고 이들이 조금이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우리 부부의 목표입니다. 그렇게 인생을 풀어냈을 때 울림은 전혀 다른 형태로 다가올 것입니다.”
/글·사진 장지혜 기자 jjh@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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