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도관 동네에서 떼 온 대문과 사자 머리 장식품.

고르고 골랐다. 현재 미추홀구 숭의동 109번지 일원에서 '전도관구역주택재개발'이 진행 중이다. 500여 채 주택이 철거된다. 며칠 동안 골목을 돌며 집집마다 일일이 체크한 후 '대문' 하나를 점찍었다. 색깔, 모양, 재질, 잠금장치, 부착물, 제작 연수 등을 고려했다. 무엇보다 한 눈에 '필'이 통하는 것을 택했다. 주택조합에 공문을 보내 수집 허락을 받았다. 두 달 전 박물관 학예사들과 함께 연장을 챙겨서 나무로 된 파란 대문 한 짝을 떼 왔다.

문(門)은 우리의 공간과 타인의 공간을 가르는 경계점이다. 문은 시간을 품고 있다. 세월이 지나면 문도 다양한 표정을 지으며 변한다. 대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집의 지나온 이야기를 고스란히 들려준다. 한 가족의 이야기, 더 나아가 동네가 품은 서사(敍事)를 말해준다.

오래된 대문에는 행정기관이 필요한 각종 표찰이 붙어 있다. 가옥번호, 수도번호 심지어 변소용량 등 작은 알루미늄판이 나란히 박혀 있다. ○○교회, ◇◇성당, 불자의 집…. 우리나라 대문에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유례가 없는 종교 표찰도 아주 자연스럽게 붙어 있다.

한때 슬래브 양옥집이 유행한 적이 있다. 이른바 집 장사들이 기성품처럼 대량으로 건축한 주택이다. 이 집들의 철제 대문에는 하나같이 사자 머리가 부착돼 있다. 유럽 어느 귀족의 저택 대문 장식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다. 이 사자 머리들도 이제 집과 함께 늙었다. 이빨 빠진 사자처럼 문고리가 성한 게 별로 없다. 견고한 금속 고리 대신 늘어진 노끈을 물고 있거나 아예 없는 것이 많아 애처롭게 보인다.

마음 같아서는 전도관 동네의 낡은 가옥 한 채를 고스란히 해체해서 박물관으로 옮겨 오고 싶었다. 그럴 순 없는 노릇이라 대문을 비롯해 꽃창살, 안테나, 두꺼비집, 우편함, 골목 외등, 각종 표찰 등을 떼 왔다. 그것들을 오브제 삼아 5월31일부터 인천시립박물관 갤러리 한나루에서 특별전 '골목-남겨진 기억'을 열었다. 대문도 이제 미술관 작품처럼 감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된다.

▲ 유동현 인천시립박물관장.
▲ 유동현 인천시립박물관장.

/유동현 인천시립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