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하면 여주 떠올리게 만든 건
최고의 지리적 요건 덕분

전국 첫 쌀 산업특구 여주서만
재배가능한 친환경 쌀 입소문
홍콩·미국 등 세계 명성 떨쳐
쌀라떼·쌀떡바 등 식품계 진출

만년 풍년의 고장 여주. 태백산맥과 차령산맥, 광주산맥을 둘러싸고 남한강이 가로지르는 청정지역 여주는 쌀의 발원지이자 최적지로 불린다. 경기도 주요 미곡 산지를 소개하는 '제5화 경기도 곡창지대를 가다-여주편' 지금 출발한다.

▲신이 내린 '밥맛'

쌀의 본고장 여주에서는 과연 언제부터 벼가 재배됐을까?

여주시 점동면 흔암리의 토탄층에서 약 3000년 전 탄화미(유적 출토 곡물에 하나로 불에 탄 채로 발견된 볍씨)가 발견되면서 우리 선조들은 남한강 유역을 따라 벼를 재배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볍씨 발견 위치로부터 약 120m 산 정상부 경사면 주변으로 20기의 주거지가 분포하고 있고 화덕과 저장구덩이, 기둥구멍, 출입구 등에서 쌀, 보리, 조, 수수 등의 탄화 곡물이 발견됐다. 이는 여주에서 오래전부터 재배작물을 가꿔왔음을 보여준다.

여주쌀의 명성은 역사의 기록 속에도 종종 발견된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남한강 유역의 가장 중요한 산물은 쌀이었으며, 특히 여주의 조생종 벼는 일찍 시장에 진출할 수 있어 지역 농민들이 많은 이익을 봤다고 쓰여 있다.

또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여주를 들이 평평하고 산은 멀게 보이는 곳이라 표현하며 익히 쌀이 많이 나는 지역임을 서술했다. 영조 26년 토지대장에서는 내수사에서 직영해 벼를 재배했다는 기록과 헌종 13년, 철종 5년 등 왕실에서 벼 재배를 했다는 다수의 문헌을 통해 여주지역이 '왕실진상답(왕실에 진상하던 벼를 재배하던 논)'의 산실이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예부터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던 이른바 '진상미'는 여주지역의 토종 품종이다. '자채쌀'이라는 명칭으로 더 알려진 이 품종은 밥알이 희다 못해 푸른 기가 돌고 찹쌀처럼 차지고 부드러워 밥맛이 매우 뛰어났다. 현재는 자채쌀의 맛을 구현한 신품종, '진상'이 여주지역을 대표하고 있다.

▲세계도 놀란 '맛'

여주 하면 쌀, 쌀 하면 여주를 떠올릴 만큼 여주는 뭐니 뭐니해도 쌀이 으뜸간다.

여주쌀이 인정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최적의 지리적 요건때문이다. 여주는 높은 산이 적어 일조량이 많고 풍수해로부터 비교적 안전하다. 또 가을철에는 일교차가 커 벼가 잘 여물기 때문에 고품질의 쌀이 생산된다. 타고난 토질도 쌀의 생장에 영향을 미쳤다. 여주시의 토양은 규산과 유기물의 함량이 높은 사양토이기 때문에 벼의 생육기 내내 충분한 양분을 공급하고 뛰어난 미질의 쌀을 생산할 수 있다. 무엇보다 남한강의 맑고 풍부한 수원이 수시로 공급된다는 이점이 있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더불어 여주쌀을 고품질화하기 위한 갖가지 노력이 시도됐다.

여주쌀은 2006년부터 전통산업 육성과 최고의 미질 관리를 위해 전국 최초 '쌀 산업 특구'로 지정됐다.

이어 2007년에는 지리적표시제를 등록(제32호), 전국 최고의 대왕님표 여주쌀 브랜드 인지도를 얻는 데 성공했다. 지리적표시제는 농·수산물과 가공품의 명성과 품질이 특정지역의 지리적 특성에서 유래되고, 생산과 가공도 해당 지역에서 이뤄졌을 때 국가가 인증을 해주는 제도다.

대왕님표 여주쌀은 임금님표 이천쌀, 철원 오대쌀과 함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3대 쌀 브랜드로 소개되고 있다.

현재 여주지역의 전체 벼농사 면적은 약 7120㏊(2021년 기준)로 수매량은 약 3299㎏에 이르고 있다.

여주시와 여주시농업기술센터는 우수한 쌀 생산을 위해 논토양정밀검정, 양질미단지시범사업, 병해충종합방제시스템, 친환경농법을 도입하고 화학비료와 농약의 양을 절감해 고품질 쌀을 생산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여주시는 지난해부터 전체 벼 재배 면적에 GAP(농산물우수관리제도)인증 단지를 추진하기로 하면서 안전한 쌀 재배 확대에도 힘쓰고 있다.

덕분에 여주 쌀은 홍콩과 미국 등 세계 도처에서도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2019년에는 산업통상자원부, 농림수산식품부가 후원하는 국가브랜드 대상, 쌀 부문 대상 수상 명단에 이름을 올리면서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쌀로 거듭났다.

▲여주에만 있는 '맛'

전국 각지에서는 보다 우수한 쌀 품종 개발을 위한 선의의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국내육종품종 가운데 여주지역의 품종으로는 '진상'과 '영호진미'가 대표적이다.

진상은 중조생종으로 밥의 윤기가 좋고 미질이 우수해 밥쌀용으로 인기가 높은 품종이다. 특히 밥을 짓고 시간이 지난 후에도 밥맛이 좋아 김밥이나 초밥용으로 적합하다. 이는 아밀로오스 함량이 11.9%로 낮기 때문인데 아밀로오스 함량이 낮을수록 밥은 찰진 맛을 낸다.

진상벼는 여주시와 개발자가 전용실시권을 2031년 5월26일까지로 계약하면서 설정 기간 동안 여주시에서만 재배될 수 있는 품종이기도 하다. 단점은 도열병, 도복에 취약해 재배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영호진미는 히토메보레와 주남벼를 교배 조합한 중만생 벼다. 쌀의 외관 품질이 좋고 맛 또한 우수하다. 또 흰잎마름병이나 줄무늬잎마름병의 저항성에도 강한 특징을 보인다.

▲여주쌀의 '변신은 무죄'

그냥 먹어도 맛있는 여주쌀이 더 맛있어졌다. 여주쌀을 활용한 다양한 식품들이 출시되면서 입맛 까다로운 소비자들은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여주시농협조합공동사업법인(RPC)이 대왕님표 여주쌀로 만든 즉석밥을 출시하면서 이제는 2분이면 따끈한 여주쌀로 지은 밥을 먹을 수 있게 됐다.

2019년에는 세븐일레븐과 손잡고 여주쌀을 주재료로 한 동절기 겨냥 원컵(컵에 분말이나 티백 등을 넣어 판매하는 상품)상품으로 '여주쌀라떼'와 아이스바인 '여주쌀찹쌀떡바' 등을 출시해 쌀의 MD 시장 진출이라는 색다른 판로를 개척토록 했다.

여주쌀은 가정간편식 시장에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요리연구가 백종원 대표가 이끄는 더본코리아와 농협이 여주쌀을 활용한 볶음밥 세트 판매에 나서면서 큰 관심을 끌었다. 이 밖에 여주쌀을 활용한 다양한 가공식품들이 우리의 식탁에 오르면서 급감하는 쌀 소비 시장에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인터뷰] 윤주병 여주시 농협조합공동사업법인 대표이사

▲ 윤주병 여주시 농협조합공동사업법인 대표이사.

“끊임없는 연구개발, 주기적인 교육, 현대화된 재배기술의 보급확대만이 살길. 밥 맛좋은 대왕님표 여주 쌀로 건강한 삶을 누리세요.”

윤주병(62) 여주시농협조합공동사업법인(통합RPC) 대표이사의 쌀 사랑은 대단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여주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인 데다 그의 부친은 오랜 시간 여주지역에서 쌀 가게를 운영해왔다. 그는 누구보다 여주 쌀에 대해 잘 안다고 자부한다.

“여주쌀의 명성은 말하지 않아도 대단하죠. 밥맛은 두말할 것도 없고요. 특히 '진상' 품종이 재배되는 지역은 여주가 유일합니다. 진상은 차지고 윤기 나는 밥맛으로 한번 맛보면 잊기 힘든 맛이라 단언할 수 있습니다.”

윤 대표는 임금님도 반했다는 여주 밥맛의 요인이 여주가 가진 천혜의 자연환경에 있다고 봤다. 여기에 여주시와 농가들의 끊임없는 노력의 결실로 여주 대왕님표 쌀의 명성은 지금까지 이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여주는 기후나 토양이 쌀이 자라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췄죠. 인근으로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지만, 여주는 여전히 청정환경을 유지하기 때문에 공해가 적습니다. 이런 자연환경과 더불어 최적의 쌀을 위한 인프라 환경도 갖춰져 있습니다. 쌀을 보관하기 위한 저온창고 시설은 최고 수준을 자랑합니다. 이를 촉진하기 위해선 농가를 대상으로 신농법이나 재배기술의 현대화, 주기적인 교육이 중요합니다.”

올해 2월, 제7대 여주시농협조합공동사업법인 대표이사로 취임한 윤 대표는 이처럼 우수한 여주쌀을 알리기 위해 만전의 각오를 다지고 있다.

“항상 아쉬운 것 중의 하나가 바로 홍보적인 부분이죠. 이토록 맛좋은 여주쌀 우리만 먹기 아쉽잖아요. 대대적인 홍보를 통해 전국적으로 여주쌀을 알려 나갈 계획입니다. 여주쌀을 사랑해주셔서 감사드리며, 대한민국 제일의 좋은 쌀로 거듭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米지의 세계] 청주·식용유 세방울 넣고 쌀밥 지으면 '윤기 좌르르'

쌀을 살살 휘젓듯 씻어준다. 차진 밥을 위해 여름철 30분, 겨울철은 1시간 정도 불리는 것이 좋다. 불린 쌀을 채반에 받쳐 물기를 제거한 후 밥솥에 넣고 물을 붓는다. 물은 쌀 부피의 1.2배가 되도록 넣어준다. 묵은쌀로 밥을 하는 경우 다시마 2∼3조각을 넣거나 5분 정도 끓인 다시마 국물로 밥을 짓는 것이 좋다. 청주나 식용유를 3∼4방울 떨어뜨리면 군내 없고 윤기 나는 밥을 지을 수 있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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