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병구 인천석남중학교 교장
▲ 임병구 인천석남중학교 교장

정의사회를 구현한다던 시대는 '전이(전두환 이순자)사회'로 조롱 받으며 막을 내렸다. 사회를 정화한다며 출범한 '바르게 살기 운동'조차 내리먹임식이라서 민초들에게는 바르기를 강요하면서 지배층은 제멋대로 행세했던 때다. 바르지 않은 정의를 바로 가르칠 수 없어 교육 현장은 홍역을 치렀다. 학생들은 진실을 물었고 선생들은 딴청을 부리며 얼버무렸다. “학생들과 함께 진실을 추구해야 하는 우리 교사들은 오늘의 참담한 교육 현실을 지켜보며 가슴 뜯었다”(1986.5.10. 교육민주화 선언)는 당시 교사들의 고백이 모여 전국교사협의회를 결성했고 전교조로 이어졌다.

전교조에게 '좌경용공' 굴레를 씌우기 위해 정부는 비밀리에 '교원노조분쇄대책'을 수립했다. 그 문건에는 '청와대는 민정당(민주정의당)의 각종 조직을 활용하여 교사 학부모를 설득'하라는 문구가 있었다. “교사들이 머리에 붉은 띠를 매고 거리에 나서 데모를 한다”는 선동은 여러 함의를 담았다. 붉은 색은 '빨갱이'를, 거리는 학생을 버리고 학교밖으로 나간다는 뜻으로, 데모는 '불법시위'이므로 불온하다는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정부가 전교조를 탄압하기 위해 동원한 집권 민정당은 초기에는 파란색을 상징으로 쓰다가 후반기에는 하늘색을 당색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학교운동회에 청군과 백군은 있어도 홍군은 없었다. 색으로 짝을 짓자면 청의 상대는 홍이어야 하고 백의 상대는 흑이라야 맞다. 오방색에 따라 동과 서를 구분해서 홍백전을 만들었던 일제 잔재를 벗어나기 위해 청이 등장했다지만 학생들은 반공 그림 그리기 대회에서 북한만을 붉게 칠했다. 색깔로나마 레드컴플렉스를 지운 건 붉은 악마와 새누리당이었다. 공교롭게도 더불어민주당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신민당 상징이 붉은 색이었다. 새누리당을 이어받은 국민의 힘과는 전통적으로 쓰던 당 상징색을 바꿔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인천교육감에 출마하겠다는 후보들도 색깔 선택을 고심했을 것이다. 빨간 색을 사용하는 후보들 뒤에는 과거 당대표와 교육부총리를 역임했던 인사가 병풍이 되어 정치색을 대변해 주고 있다. 파란 색 후보는 유권자들이 그 색깔로 정당과의 정책 유사성을 판별해 주기를 바라며 점퍼를 착용하고 있다.

흰 색을 사용하는 후보는 양당 틈바구니에서 교육자치가 독자성을 띌 수 있기를 바랄 테지만 여의치 않다. 지난 2일 갤럽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지지 후보가 없거나 잘 모르겠다고 답한 비율은 각각 14.8%, 32.9%'로 거의 절반이다. 후보들이 색깔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정황이다.

선거판은 다급하고 정치색깔을 선명하게 하려는 경쟁에 전교조가 소환당했다. “전교조에 빼앗긴 인천 아이들을 되찾고”, “전교조로 망가진 인천교육”을 구하자는 표현에는 30년이 지난 과거 전교조때리기의 망령이 어른거린다. 전교조 출신 교육감과 보좌진들 공과는 엄중하게 비판하고 유권자에게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전교조에 휘둘리면 교육이 무너집니다' 현수막으로 서울 시내를 도배했던 공정택 교육감이 선거법 위반으로 스스로 무너진 게 불과 10여 년 전의 일이다. 그는 현수막에 자신 이름은 파란색으로 전교조는 빨간색으로 인쇄했다.

전교조 교사들이라고 한 색깔은 아니다. 그들 모두를 싸잡아 붉은 색으로 칠하려 들었던 시대는 교사도 학생도 불행했다.

역사는 아이러니하게도 붉은 옷을 입은 이를 통해 전교조를 선거에 끌어내고 있다. E.H 카는 '필연은 우연의 옷을 입고 나타난다'고 했는데 전교조 출신 후보는 파란 옷을 입고 있다. 바뀐 색깔처럼 서로의 입장을 들여다보면서 정치색깔을 넘어서길 기대한다. 어차피 교육은 자기 고유의 빛깔을 내도록 끌어내는 일이다. 두 색만으로는 인천교육을 아름답게 채울 수 없다.

/임병구 인천석남중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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