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원 속 그림은 '통일벼'로 2차대전 직후 식량난 구세주
허문회 박사가 시행착오 끝에 세계 최초 '삼원교배'한 종자
병충해 강하고 생산성 높아 1977년 첫 식량자급 달성

쌀 넉넉해지자 생산비 높고 한국인 입맛 안 맞아 외면
1992년 이후 자취 감췄지만 최근 아프리카 식량 대안 주목

 

“아침 식사하셨어요?”

김이 모락모락, 따끈한 쌀밥 한 그릇이면 만천하를 다 얻은 듯, 마음이 두둑해진다. 한국인에게 밥은 삶이요, 내일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런데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쌀밥 한 그릇은 풍요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보릿고개를 겪으며 배고픔에 굶주리던 국민에겐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큰 숙제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이 '통일벼'였다. 국민을 배고픔으로부터 해방시켜준 기적의 벼 '제3화 기적의 벼, 통일벼' 이야기가 지금 시작된다.

▲ 서울대 농대 교수인 허문회 박사는 여러 종의 교배가 불임을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일본의 자포니카종 유카라와 대만의 인디카종 TN1, 국제미작연구소의 IR8 등 삼원 교잡을 통해 '통일벼'를 개발해낸다. 사진은 통일벼 못자리 작업 광경. /사진제공=국사편찬위원회

▲녹색혁명

제2차 세계대전 후 폭발적인 인구증가로 심각해진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개발도상국들의 당면 과제였다. 우리나라 역시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식량난을 겪고 있던 식량부족 국가였다. 보릿고개를 넘기기 힘든 시절, 쌀은 항상 부족했다. 당시 정부는 주곡인 '쌀의 증산'을 국가경제발전에 핵심적인 문제로 생각했다. 이때 등장한 품종이 '희농1호'였다. '희농1호'는 농업학자들의 요청으로 중정부장을 지낸 김형욱이 이집트 쌀, '나다'를 밀수입해오면서 국내 농가에 보급한 볍씨였다. 책에 표지만 남기고 안쪽을 도려내 볍씨를 숨겨 들여온 김형욱이 '제2의 문익점'이라며 공치사를 늘어놓은 일화가 유명하다. 보릿고개를 없앨 것으로 기대했던 '희농1호'의 결과는 참담했다. 그해 종자 생산이 어려워질 만큼 흉작이 들었고 한국의 재배 환경과 맞지 않았던 탓에 '희농1호'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 국제미작연구소의 온실에서 연구를 구상중인 허문회 교수. 허 교수가 개발한 통일벼는 쌀의 양적 증대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 쌀의 자급자족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농촌사회의 소득 향상으로 이어졌다. /사진제공=서울대농업생명과학대학
▲ 통일벼를 개발한 허문회 박사가 사용하던 장비/사진제공=문화재청

희농의 결과가 실패로 돌아갈 무렵 서울대 농대 교수인 허문회 박사는 1966년 '통일벼'를 개발하게 된다. 통일벼는 허문회 박사가 개발한 세계 최초 '삼원 교배' 종자다. 평소 허 박사는 생산성이 떨어지던 한국의 종자, '자포니카종'과 달리 생산량이 많았던 '인디카' 품종의 육종 기술에 대해 연구해 왔었다. 자포니카종은 주로 온대기후에서 자라 우리가 먹는 짧고 찰진 낱알을 의미하고 인디카종은 열대 기후에서 자라면서 흔히 '안남미'라고 부르는 길이가 길고 낱알이 날리는 품종을 의미한다. 자포니카에 비해 월등한 수확량을 보이던 인디카의 생산력을 얻기 위해 원연 교잡(서로 특성이 다른 것끼리의 교배)을 시도했지만 '잡종불임' 이라는 난관에 봉착해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이때 허 박사는 여러 종의 교배가 불임을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일본의 자포니카종 유카라와 대만의 인디카종 TN1, 당시 허 박사가 몸담고 있던 국제미작연구소의 IR8 등 삼원 교잡을 통해 'IR667', 즉 '통일벼'를 개발하게 됐다. 통일벼는 다른 품종들보다 생산성이 높은 다수확 품종이었고 병충해에 강한 특성을 보였다. 특히 태풍에 취약한 재래 품종들에 비해 키가 작고 줄기가 단단해 태풍에도 잘 견뎌냈다. 쌀 재배 면적은 급속도로 확산됐고 30% 이상의 높은 생산성을 끌어냈다. 우리의 농업사는 통일벼의 보급을 통해 식량 자급자족이라는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다.

▲ 50원 동전 그림의 정체는 '통일벼'. 당시 '기적의 벼'로 불린 통일벼를 기념하기 위해 주화에 문양을 새겨 넣었다.
▲ 50원 동전 그림의 정체는 '통일벼'. 당시 '기적의 벼'로 불린 통일벼를 기념하기 위해 주화에 문양을 새겨 넣었다.

▲좌절된 통일벼의 꿈

우리는 50원 동전 뒷면에 새겨진 문양을 눈여겨 본적이 있다. 보릿대인지 쌀인지 모를 문양의 정체는 바로 '통일벼'다. 당시 '기적의 벼'로 불린 통일벼를 기념하기 위해 주화에 문양을 새겨 넣었다. 통일벼는 다른 품종들보다 30%가 넘는 높은 생산성을 보였다. 무엇보다 병충해에 강했기 때문에 수확량을 늘려 식량자급이라는 국가 정책에도 부합할 수 있었다. 정부에서도 통일벼 재배를 적극 권장했고 1976년 통일벼의 재배면적은 전체 44%까지 늘어났다. 1977년에는 전국적으로 600.5만t을 생산하면서 역사상 최초로 식량자급을 달성하게 됐다. 이후 통일벼는 생산성 높은 품종의 대명사로 불렸다. 그러나 통일벼는 열대기온에서 적응하는 인디카 품종을 많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냉해에 취약했고 차진 밥을 좋아하던 한국인 입맛에는 맞지않아 맛이 없는 쌀로 평가되기도 했다. 또 줄기가 짧아 볏짚의 유용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보급을 주저하는 농민들도 생겨났다. 여기에 비료와 농약 등 생산비가 많이 드는 단점과 모내기를 한 달 이상 앞당겨야 했기 때문에 이모작을 할 수 없다는 맹점도 드러났다. 통일벼의 재배 면적이 늘어갈수록 논의 풍경은 삭막하게 변해갔다. 통일벼는 나무 그늘이 조금만 있어도 수확량이 떨어진다 해 논둑마다 자리했던 버드나무나 미루나무들을 베어냈다. 높은 수확에도 불구하고 통일벼는 92년 이후 자취를 감췄다. 통일벼는 단점을 극복한 '유신'과 '밀양21호' 등 새로운 품종을 육성해 미질이 뛰어난 벼로 재탄생하게 됐다. 통일벼는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농학과 농업의 발전사에 한 획을 그은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 농촌진흥청이 아프리카를 대상으로 차세대 통일벼인 통일형 신품종 '이스리(ISRIZ-6, 7)'를 보급,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사진제공=농진청 유튜브

▲통일벼 늬우스

통일벼가 아프리카의 식량난 해결에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농촌진흥청(이하 농진청)이 '아프리카 벼 개발 파트너십'을 통해 세네갈을 대상으로 통일형 신품종, 이스리(ISRIZ-6, 7)를 보급, 확대하면서 현지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농진청은 이 사업을 통해 세네갈의 벼 자급률을 높이고 코로나19로 인해 가중되고 있는 세네갈 빈곤층의 식량 위기를 모면할 수 있도록 통일벼 보급에 나섰다. 또한 국제 연구기관인 아프리카 벼 연구소와 함께 아프리카 19개국에 다수성 벼 품종을 개발·보급하면서 품종 육종 기간을 줄이는 기술을 전수, 유전자원 교환과 재배기술 역량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세네갈, 말리, 말라위에서는 5개 신품종을 보급 품종으로 등록하는 성과를 내면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지난해 12월, 근대 농업발전에 한 획을 그은 허문회 박사가 '수원시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허문회 박사는 기존 품종보다 수확량이 월등해 '기적의 볍씨'라고 불린 통일벼를 개발해 우리나라의 식량난을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세계적인 식물육종학자다.

허문회는 수원농림전문학교(현 서울대 농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 농과대학에서 농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60년 서울대 농과대학 교수로 부임해 우리나라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했고, 1964년 필리핀 국제미작연구소(IRRI) 특별연구원으로 위촉돼 벼 육종 기술을 연구했다.


 

[인터뷰] 문헌팔 한국종자포럼 이사장

▲ 문헌팔 한국종자포럼 이사장
▲ 문헌팔 한국종자포럼 이사장

“상품성 있는 토종 벼의 생산으로 쌀 농가의 부흥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문헌팔(77·사진) 한국종자포럼 이사장은 통일벼의 개발자인 허문회 박사를 지도교수로 두고 일평생 쌀종자연구에 매진해 온 인물이다. 허 박사를 도와 통일벼의 2세대, 3세대 격인 통일형 품종의 개발연구에도 일임하며 식량자급자족 시대의 지평을 연 인물이기도 했다. 그는 통일벼가 개발 당시 무수한 시행착오의 결과로 탄생한 벼였고 경제자립 기반을 구축한 1등 공신이라 강조했다.

“통일벼는 삼원교배의 성공 이후 해마다 우수한 종자들을 색출해 재차 다시 교잡하는 형태로 얻어진 결과물이었습니다. 물론 통일벼는 오늘날 정치적인 상황과 맞물려 실패한 작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러나 쌀의 양적 증대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였고 통일벼의 당초 목표는 수확량을 늘려 식량 자급자족을 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통일벼의 개발로 주곡인 쌀의 자급이 가능해졌고 농촌사회의 소득향상으로 이어지면서 우리의 농업사는 한 단계 나아갈 수 있게 됐습니다.”

통일벼의 탄생은 국내 토종벼 품종 확대에 기폭제가 됐다. 육종학자들은 통일벼의 단점을 보완한 유신벼나 밀양21호 등 품종들을 개발해 나갔고 문 이사장 역시 토종 벼 시대를 이끈 주역이었다. 그는 통일벼 계통의 품종을 비롯해 '화성벼'와 같이 꽃가루 교배로 얻어진 품종 등 약 50품종을 개발했다.

“우수한 품질의 우리 토종 품종들이 있음에도 여전히 고시히카리 같은 외래 품종이 우리 농가에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고시히카리는 자연재해에 취약하고 생산성도 매우 낮은 품종입니다. 맛도 좋고 생산성도 좋은 우리 고유의 토종 품종들의 확대 보급이 절실합니다.”

식량의자급자족을 이뤄낸 녹색혁명이라지만, 오늘날 쌀은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문 이사장은 상품성있는 벼의 생산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상품성 있는 쌀의 생산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시기입니다. 도정을 거친 쌀 중에 온전한 상태의 쌀을 시장에 내놓을 필요가 있다는 얘기죠.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생산성이 줄어들고 수익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에 부딪혔지요. 우수한 쌀만을 선별해 상품으로 내놓고 나머지는 가공제품 생산의 원재료로 사용한다면 소비자도 좋고 농가소득에도 기여할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米지의 세계] 쌀알 작고 찰진 '자포니카' & 흩날리고 길쭉한 '인디카'

▲ (아래부터) 자포니카, 인디카 사진./사진제작=인천일보

벼 품종은 자포니카와 인디카로 분류할 수 있는데 자포니카는 쌀알이 작고 단단하며 밥을 지으면 찰기가 많고 맛이 좋다. 주로 한국과 일본 등 동북아시아에서 재배된다. 반면 인디카는 쌀알이 길고 부스러지기 쉬워 밥을 지으면 찰기가 적어 미질이 떨어진다. 주로 인도와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재배된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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