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정권기인 2012년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웹툰 20여 작품을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하자 만화계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집단 반발했다.

드디어 대선이 끝났다. 완연한 퇴행인가 시원한 붕괴인가-어느 쪽이 무엇이라고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를 두고 벌어진 선거는 불과 0.7%로 당락이 갈렸다. 말인즉 어느 한 쪽도 명확한 우세를 주장할 수 없을 만큼 팽팽했고, 또한 어느 한 쪽이 낫다고 할 수조차 없을 만큼 양대 후보 모두 권력을 주기엔 마뜩찮고 하자 있는 인물이었음을 말한다. 이번만큼 진영이 아니라 인물의 하자 정도를 향한 판단에 따라 선택이 갈린 선거도 드물다. 무릇 정치인들은 승패 여부와 상관없이 저러한 유권자들의 심정을 헤아려야만 할 것이다.

대선 이야기를 꺼내는 까닭은 이 즈음이면 꼭 떠오르는 일화가 있기 때문이다. 2008년 초, 제17대 대통령직을 맡은 바 있던 이명박씨는 임기를 시작하던 첫날부터 '실용' 공약이던 예산 10% 삭감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공약은 공약일 뿐이라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만, 이명박은 돈에 관해서만은 정말로 거침없는 사람이었다. 인수위 단계에서부터 들어온 '명령'에 기관들은 어쩔 수 없이 일사불란하게 삭감 가능한 부분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기관의 생리상 예산 편성은 연말에 대체로 끝나 이듬해 2~3월경에 집행으로 들어가게 돼 있는데, 2월에 느닷없이 일괄로 10%를 쳐 내라 한 것이다. 최우선 정리 대상은 외부에 맡겨야 하는 외주 등이었고, 그 안에는 기관 등에서 운영하는 문화예술 웹진 등도 포함돼 있었다. 나는 그런 곳의 필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어떻게 됐을까? 애꿎은 처지에 놓인 담당자는 조정 단계라면서 원고 게재 자체를 보류시켰다. 보류된 연재 계획은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예산 10%를 절감하라는 명령은 절감해도 될 후순위에 놓일 무언가를 필연적으로 상정하게 돼 있다. 문화예술과 그에 관한 아티클은 그 줄 세우기에서 가장 불리한 위치에 설 수밖에 없다. 한데 뒤집어 보자면, 기관을 통해 이런 취급을 하게끔 만드는 건 곧 문화예술을 사회에서 어떻게 취급하겠다는 너무나 명확한 신호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이후 문화예술계는 두 정권에 걸쳐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검열에서 블랙리스트에 이르는 파란만장한 굴곡을 겪었다.

어찌 되었든 대선은 끝났고 이제부터의 5년은 지난 5년과는 많이 다를 터다. 대통령 개인이 어떻든 이번의 여당은 문화예술의 특성을 존중하고 그 저변을 확대하기보다는 대중의 눈을 다른 데로 돌리는 데에 불쏘시개로 써 온 역사가 깊은 자들이다. 문화적, 인권 감수성 자체가 자기 세계관에 없지 않고서는 행할 수 없었을 악행들이 그들 앞에 켜켜이 쌓여 있다. 새 정부를 꾸릴 자들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 또한 그 당사자들이 오랜 시간 쌓아 온 업보다.

이번 대선을 두고 소셜 미디어 곳곳에서 “내 타임라인은 덕후들 뿐인데 다 정치 이야기밖에 안 해, 빨리 끝나면 좋겠어!”라는 비명이 터져나왔더랬다. 덕후들 입장에선 어느 쪽이 이기느냐에 따라 본인의 덕질에 지대한 영향이 갈 터고 선례도 잔뜩 있으니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던 셈이다. 과연 '대통령 윤석열'은 본인이 몸담은 당이 옛 과오를 반복하지 않게끔 끌고 갈 수 있을까? 어차피 5년 함께 보내야 할 정권이라면, 그나마 도서정가제 같은 이슈에서 윤석열이 오히려 매체의 특성과 차이를 더 잘 이해한 측면이 있다는 점에 기대를 품어봐야 하려나 싶다. 그저 비굴하게 빈다. 문화예술에 손을 대고 싶다면, 좀 참아 달라.

▲ 서찬휘 만화 칼럼니스트
▲ 서찬휘 만화 칼럼니스트

 

/서찬휘 만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