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운동 100주년 만세운동 재현, 2019년 창영초.

1919년 3월24일 오후 2시경 인천 계양의 황어장터에서 심혁성 지사를 중심으로 600여명이 만세운동을 펼쳤다. 이보다 15일이나 앞선 3월9일, 동구 배다리 창영초등학교에서 학생 4명의 주도하에 전교생이 집단으로 대한독립을 외치며 만세운동을 벌였다. 교내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한 학생들은 일제에 의해 투옥되었지만 이 운동은 황어장터와 같이 인천 전역에 만세운동으로 이어지는 도화선이 되었다.

창영초 만세운동보다 8일 전인 1919년 3월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천도교, 기독교, 불교 등이 종교의 벽을 넘어 한마음이 되었다. 학생들은 민족대연합의 선두에 섰다. 한 청년이 팔각정에 올라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낭독이 끝나자 만세 소리는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만방에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졌다. 세계 최대의 비폭력운동인 3·1독립운동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3·1만세운동은 백성이 민주공화국의 주권을 가진 국민임을 깨닫게 했다.

100년이 넘는 긴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세계는 종교적 갈등을 비롯해 민족주의, 패권 경쟁 등 신냉전의 암울한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지구촌 곳곳에서는 제국주의의 부활을 꿈꾸는 러시아에 즉각 침공을 즉시 중지하라는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손에 화염병을 들고 탱크와 맞서는 우크라이나 국민의 모습에서 100년 전 손에 태극기를 들고 비폭력으로 제국주의에 맞서던 우리의 모습이 오버랩 돼 가슴이 먹먹하다. 국난이 닥치면 헌신과 저력으로 위협을 극복해 온 건 늘 백성들이었음을 위정자들은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국민의 힘으로 위기와 역경을 이겨낸 위대한 민족이다.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방역을 철저하게 지키며 그 어느 나라보다 잘 극복해 냈다. 우리의 저력과 기운이 맨몸으로 탱크와 맞서는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전달되어 그들도 우리처럼 위기를 극복하고 그들의 가족과 나라를 지켜나가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3·1절이다.

/김성환 포토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