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8월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웹툰을 지키는 독자적인 방법!' 캠페인에 만화원작 TV드라마 '경이로운 소문' 출연한 가수 김세정을 모델로 내세웠다.

한국 만화는 연 매출액 1조원 시대를 넘어서며 여느 문화 산업에 뒤지지 않는 위상을 자랑하고 있다. '2021년 웹툰 사업체 실태조사'(2021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한국 만화의 중심이 된 웹툰 산업의 연 매출 추정액은 2021년 들어 약 1조538억 원을 달성했다.

하지만 성장 뒤편에서 만화가들은 문자 그대로 심각하게 '곯아가고' 있다. 갖가지 이유가 있지만, 근래 매우 큰 문제로 부각되는 건 단연 불법복제다. 해당 보고서에서는 지난 2020년 웹툰 불법 유통의 규모를 5488억(동시기 합법시장의 86%)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숫자조차 만화가들이 처한 현실을 다 보여주지는 못한다. 불법 웹툰 사이트 대부분은 이용자들을 사행성 도박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만화를 악용한다. 더 난감한 건 이러한 웹툰 불법 유통이 글로벌화하고 있는 점이다. 최근 한국어가 가능한 외국인 불법 유통자들은 한국 웹툰을 빠르게 자국 언어로 불법 번역해 퍼트리고 있는데 그 언어와 국적이 실로 다양하다.

작가들은 이렇게 불법 사이트를 차단하느냐 마느냐가 매출액 증감에 직결된다고 토로하고 있다. 웹툰 플랫폼들이 '웹툰불법유통대응협의체'라는 이름으로 불법 사이트에 공동 대응하고 캠페인을 돌리기 시작한 것도 불과 얼마 전인 지난해 10월이다. 한데 어처구니없는 게 비단 이뿐일까? 최근 해외의 웹툰 불법유통자들은 작가들에게 직접 항변과 협박을 일삼고 있다. 불법 웹툰을 내려달라는 작가의 요구 앞에 돈 없는 사회적 약자 입장에서 유료로는 작품을 다 볼 수 없다며 정당성을 주장하는 일은 예사다. 심지어 불법 번역자가 작가에게 '당신 만화를 번역하는 팀끼리 충돌이 났는데 다른 팀 말고 우리에게 허락해 달라'고 요구한 사례도 있다.

그러나 이런 행태가 비단 남의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나라의 만화 불법복제자들도 국내는 물론 해외 작가들에게 크게 폐를 끼쳐 왔기 때문이다. 한국의 일본만화 대패질(만화에서 원래 대사가 있던 부분을 밀어내고 번역 대사를 붙이는 행위)은 그 역사가 오래됐다. 최근엔 일본에서 잡지 연재작들이 잡지에 인쇄되기도 전에 인쇄소 단계에서 불법 유출해 퍼트린 데이터인 '하야바레'(早バレ : 빠르게 까발린다는 뜻)판을 대패질해 내어놓는 이들까지 있다. 처참한 일이지만, 옛날엔 그저 우리의 후진 저작권 의식을 한탄하며 자괴감을 느꼈다면 요즘은 우리네 웹툰의 피해 앞에서 세계인들의 수준도 딱히 다르지 않음을 확인할 뿐이다.

불법복제자들은 그 또한 만화 '덕질'이요 만화 '사랑'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스토킹 범죄자들이 본인이 저지른 게 사랑이라고 우기는 격이다. 옳기만 한 말을 내세운 캠페인들이 그리 효과를 보기 어려운 까닭이 다른 데 있지 않다. 그럼에도 이 말만은 반복해 할 수밖에 없다. “작가가 펜을 놓으면 덕질할 만화도 사라진다.”

/서찬휘 만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