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평구 산곡동 영단주택 골목 (2011년).

미군부대가 전성기였던 시절 부평역에서 동인천역까지 전철 통학하던 고교 친구가 있었다. 당시 자기네 동네 기지촌에 관해 얘기하곤 했는데 정말 딴 세상 이야기 같았다. 며칠 전 백마장 출신 그 동창생이 박물관을 방문했다. 그는 오랜만에 부평의 '옛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가끔 기름 실은 차량이 미군 부대 안으로 들어갔다. 어느 날 수송차가 도로에서 뒤집혀 탱크에서 흘러나온 시커먼 기름이 길바닥에 질퍽했다. 양동이를 들고 몰려든 동네 사람들이 손으로 기름을 쓸어 담았다. 아이들도 깡통 하나씩 들고 모여들었다. “펑” 폭발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 평소에 좀 건들거리던 동네 청년 하나가 기름밭에서 무심코 담뱃불을 붙였던 것이다. 곧바로 미군부대 안에 있는 병원(121후송병원)으로 실려 갔다. 그는 몇 달간 그 안에서 치료를 받았다. 퇴원하는 날 그는 커다란 더플백을 메고 양담배 하나 꼬나문 채 부대 정문을 나섰다. 백 안에는 초콜릿, 껌, 통조림 등이 가득했다. 그 날 더플백을 풀어 동네잔치를 했다.

다음의 야사(野史)는 좀처럼 신뢰가 가지 않는다. 동창생은 '팩트'라고 우기며 들려줬다. 친구네 누나는 미군 장교의 애인이었다. 그 장교는 미군부대 송유관 책임자였다. 얼마 후 그 누나네 집 밑으로 기름 파이프 한 가닥이 깔렸다. 일 년 후 친구네는 큰 집을 살 만큼 부자가 되었다. 누나는 그 장교와 결혼해 미국으로 떠났고 친구네 가족들도 나중에 모두 이민을 갔다.

얼마 전 부평사(史)가 발간되었다. 1997년과 2007년에 이어 세 번째다. 39명의 집필위원이 참여해 총 7개 주제를 8권으로 펴냈다. 무엇보다 미군기지 캠프마켓 반환을 계기로 그 장소가 품은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낸 게 눈에 띈다.

이 구사(區史)를 읽다 보니 예전에 들었던 부평의 이야기가 딴 세상이 아니라 철마산(원적산) 너머 동네에서 일어났던 '팩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송유관 장교 이야기는 좀 더 검증을 해봐야겠다.

 /유동현 인천시립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