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친(汗翁 愼兌範 박사)의 회갑이셨던 이듬해 1973년 유럽 여행을 마련해 드릴 수 있었던 것은 큰 보람이었다. 당시는 여권 내기가 힘들었고 외화사정도 좋지 않았지만, 파리에서 언론사 특파원으로 근무하고 있던 맏아들 가족을 만나러 간다는 명분으로 여행허가를 어렵사리 받을 수 있었다. 파리에 도착하신 선친께서는 유럽에 머무시는 동안 찾아보고 싶으신 곳 50여 군데를 꼼꼼하게 적어 오셨다.

▶바쁜 개업 의사였지만 여러 분야의 외국 잡지들을 정기구독하고 계셨기에 유럽 여러 나라의 명소와 맛집까지도 꿰뚫고 계셨다. 파리에서는 루브르 박물관이나 노트르담 성당 같은 곳은 스스로 찾아보셨고 지방에 있는 명소를 함께 모시고 다녔다. 그중에서도 스페인 국경 부근에 있는 기적의 샘물이 있는 루르드(Lourdes)는 꼭 가보고 싶어하셨다.

▶파리 오스트리츠역에서 자정에 출발한 야간 침대열차는 다음날 이른 아침 1858년 2월11일 농부의 딸인 베르나데뜨가 땔감을 찾으러 왔다가 성모 마리아를 만났다는 루르드 대성당에 도착했다. 역에서 성당으로 가는 길에는 이미 많은 순례자들이 줄지어 성당으로 향하고 있었고 우리 부자는 성(聖) 베르나데뜨 상에서 기도를 드리고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알려진 기적의 샘물로 가서 샘물을 마시고 큰 병에 담아왔던 기억이 난다.

▶선친께서 유럽에 한 달간 머무시는 동안 영국, 스페인, 벨기에, 네덜란드 등 5개국을 여행하셨는데 박물관과 미술관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천주교의 성지였다. 프랑스에서만도 파리와 샤르트르 그리고 보르도의 대성당과 대서양에 있는 몽생미셸 사원 등은 교황청이 지정한 30대 국제 성지(聖地)에 포함되는 곳이었다. 프랑스와 스페인은 물론 베네룩스도 천주교 신자들이 많기 때문에 유럽 관광은 성지순례가 되는 것을 실감한 선친을 모신 회갑기념 여행이었다.

▶교황청에서는 지난해 12월15일 충남 해미(海美) 성지를 국제성지로 인정하는 교령(敎令)을 전달했다. 천주교 서울 순례길이 국제성지로 지정된 후 두 번째인데 전 세계적으로도 국제성지는 30여곳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지명 중 필자가 좋아하는 아름다운 지명으로 꼽는 해미는 조선 태종 때 정해현(貞海縣)과 여미현(餘美縣)을 병합하여 한 자씩 따서 해미현(海美縣)으로 했으나 일제 때 군·현 통합으로 서산군의 면으로 편입되었다. 1866년 병인양요에 이어서 천주교인들에 대한 박해로 1000여명이 천주교를 믿었다는 이유로 정식 재판도 없이 처형당했고 묘지도 없이 이곳 해미성지에 묻혔다. 2014년 해미성지를 찾았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센차노베(이름도 없이…)”하며 울먹이기도 했다. 교황 방문으로 이미 세계적 명소가 된 해미성지는 2019년 방문자가 6만여 명이 넘어섰다. 이번 국제성지 지정으로 해미읍성을 찾는 사람들이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신용석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