⑫경기동부 한강수계 에코뮤지엄
▲ 조선시대 한양을 지키던 남한산성의 아침 풍경.
▲ 조선시대 한양을 지키던 남한산성의 아침 풍경.

한강을 젖줄 삼아 터전을 일궈 온 우리네 삶. 애환이 녹아든 한강 줄기 따라 그렇게 우리 민족은 역사와 문화를 남겼다. 20세기 한반도와 동아시아 냉전의 역사를 간직한 곳, 한반도 평화의 불씨가 되길 기원하며 경기에코뮤지엄 평화를 담다 '경기 동부 한강수계 에코뮤지엄'으로 안내한다.

※경기동부 한강수계 에코뮤지엄은 가평·광주·구리·양평·여주·이천·하남 지역을 중심으로 근대와 생활문화유산, 생태자연유산, 역사문화유산으로 분류하고 각각의 컬렉션 후보군을 선정해 보존 가치를 수립하고 있다.

▲ 광주 남한산성
▲ 광주 남한산성

▲광주: 남한산성

남한산성은 광주시에 있는 조선시대 수도 한양을 지키던 성곽이면서 사적이다.

조선시대의 산성으로 통일신라 문무왕 때 쌓은 주장성의 옛터를 활용해 조선 인조 4년(1626)에 대대적으로 지어졌다. 주로 광주시에 있지만 성남시와 하남시까지 3개 지자체에 걸쳐 세워진 성곽이다. 조선의 자주 독립 수호를 위해 유사시 임시수도인 동시에 계획적으로 축조된 유일한 산성도시이기도 하다. 서울 중심부에서 동남쪽으로 25㎞ 떨어진 지점에 있으며 해발 480m 이상의 험준한 산세를 이용해 방어력을 극대화한 곳으로 둘레가 12㎞에 이른다. 또 토대형 산성으로 곡면을 이용해 사격 사각지대를 없앴고 지세에 따라 남쪽 성곽이 북쪽보다 더 높다.

남한산성의 일부는 화강암과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편마암을 이용해 축성했고 주로 주변의 재료를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시대별 축성술에서 뚜렷한 차이가 나타나며 인조, 숙종, 영조, 정조 대에 축성기법이 각각 다르다고 한다.

산성은 외세에 대한 저항과 자주 의식의 구심점으로서 구한 말에는 서울진공작전을 수립한 의병 거점이 되면서 1954년 5월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국방의 성소로서 오늘날까지 주변에 군사적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 주요 전투로는 병자호란에서 인조가 숭덕제의 군대를 상대로 벌인 농성전이 있다.

병자호란 이후 남한산성은 처형장이 되기도 했다. 천주교인들이 순교한 장소로도 알려져 있으며 신유박해의 한덕운을 시작으로 김덕심, 김성우 형제 등이 순교했다. 제일 많은 순교자를 배출한 건 1866년 병인박해 때다. 이후에도 군사상 요충지로 광주 군청이 안에 있었으나 항일의병으로 산성과 행궁 내 군기고와 수호사찰을 불태워 대부분 건축물이 사라졌다.

남한산성은 다른 산성들과 달리 산성 내 마을과 종묘·사직을 갖추고 있다. 전쟁이나 나라에 비상이 있을 때 임금은 남한산성에 머물렀으며 종묘에 있는 선조의 신주를 옮길 수 있는 좌전을 마련해 은신처 역할을 하기도 했다.

남한산성 내 소나무 숲은 수도권 최대의 소나무 군락으로 보존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남한산성은 역사·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4년 6월 카타르 도하에서 개최된 유네스코 총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남한산성유산센터
남한산성유산센터

▲광주: 경기도자박물관

조선시대 왕실이 운영하는 관요가 설치돼 400여 년간 운영되던 광주시에 있는 조선시대 도자 전문 박물관이다. 경기도자박물관에서는 조선백자를 연구하고 조선 관요 유적의 발굴과 학술연구사업, 전통 도자문화교육 등 한국 전통 도자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또 예술성이 뛰어난 중요 유물과 작품들을 전시하고 조선 도자와 관요터 조사연구 학술세미나, 문화강좌, 분원백자자료관 운영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박물관에는 조선 500년 역사를 이어온 순백자, 청화백자, 철화백자, 분청사기 등 조선시대 관요에서 생상된 전통도자기와 전통을 계승하는 현대작가들의 작품들을 상설전시하고 있다. 2개의 대형 전시실과 기획전시실, 다목적실 등으로 이뤄져 있으며 대규모 야외조각공원과 장작가마, 한국정원, 다례시연장, 도자쇼핑몰 등의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 광주 경안천습지생태공원
▲ 광주 경안천습지생태공원

▲광주: 경안천습지생태공원

경안천을 통해 팔당호 상수원으로 유입되는 오염물질을 개선해 동·식물에게 깨끗한 서식처를 제공하고 도시민에게 친환경적이고 안락한 휴식처를 제공하기 위해 조성한 공원이다. 약 2㎞ 산책로에는 소나무, 왕벚나무, 단풍나무, 감나무, 왕버들, 선버들 등이 우거져 있으며 갈대 군락과 철새조망대 등이 설치돼 있다. 이곳은 1973년 팔당댐이 건설되면서 일대 농지와 저지대가 물에 잠긴 이후 자연스럽게 습지로 변했다. 다양한 수생식물과 갖가지 철새, 텃새가 서식하면서 조류 관찰과 자연학습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고구려대장간마을.
고구려대장간마을.

▲구리: 고구려 대장간 마을

아차산 고구려 유적전시관과 야외전시물로 구성돼 있다. 유적전시관은 아차산 보루에서 출토된 토기, 철기류와 자료 등 352점의 고구려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야외 전시물은 고구려 벽화에서 묘사하고 있는 집 구조를 바탕으로 상상해 재현해 놓은 것으로 고구려의 일반 가옥 담덕채, 고구려 기와집, 물레방아를 동력으로 이용하고 대장간, 너와를 사용해 지은 건축물 등이 있다. 건축물은 섬세하고 아름다운 창살무늬가 돋보이는 창문과 문, 부엌 공간, 온돌 등이 갖춰져 있어 고구려인의 독창적인 주거문화를 살펴볼 수 있다.

▲ 양평 세미원
▲ 양평 세미원

▲양평: 세미원

세미원은 두물머리 내 있는 정원이다. 20만4959여㎡(6만2000여평) 규모로 수질정화 능력이 뛰어난 연꽃을 주로 식재하면서 한강물 정화에 기여하고 있다. 각 계절에 맞는 테마로 정원을 꾸며 사계절 내내 볼거리를 제공한다. 또 생태환경교육 체험 교육, 전시활동을 겸하는 복합문화공간의 역할을 지향한다.

여운형.

▲양평: 여운형

일제강점기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소사건과 관련된 독립운동가로 양평 태생이다. 1907년부터 양평에서 국채보상운동 지회를 설립해 활동했다. 1918년 상해고려민친목회를 조직하고 같은 해 신한청년당 조직을 주도했다. 1919년 재일유학생의 2·8독립선언과 3·1운동에 관여하고 김규식을 상하이로 초빙, 한국대표로 세워 독립운동을 했다. 또 여운형은 상해임시정부수립에 힘썼으며 상하이에서 아동들에게 독립사상과 애국정신을 교육시키기 위해 인성학교를 설립했다. 1926년 중국혁명운동에 참여했으나 실패한 후 독립운동을 하다 1929년 상하이에서 일제 경찰에 체포돼 징역 3년을 선고받고 1932년 출옥했다. 1933년 조선중앙일보사 사장직에 취임했으며 조선체육회 회장직을 맡았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신문이 폐간돼 사장직에서 물러났다. 광복 직후 1945년에는 건국 준비를 위해 조선건국준비위원회의 결성을 주도하고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조선건국준비위원회가 해소되고 수립된 조선인민공화국의 부주석이 되었으며 김구, 이승만, 안재홍, 송진우 등과 만나 국가건설 방안 등을 협의했다.

1946년 2월 북한을 방문해 조만식과 김일성을 만나 미소공동위원회의 대처문제 등을 논의하고 좌파세력의 연합단체인 민주주의 민족전선의 공동의장으로 선출돼 활동했다. 김규식, 김창숙과 함께 임시정부 수립의 필요성을 주창하며 민족 통일 전선운동을 펼치는 등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해 왔으나 반대 세력에게 십여 차례 테러를 당했다. 1947년 7월19일 서울 혜화동 로터리에서 한지근에게 저격 당해 서거했다.

세종대왕릉.
세종대왕릉.

▲여주: 세종대왕릉

영릉은 조선 제4대 임금 세종과 비 소헌왕후의 합장릉이다. 조선왕릉 중 최초로 한 봉우리에 다른 방을 갖춘 합장릉이다. 1469년 여주로 천장하면서 세조의 유명에 따라 병풍석을 두르지 않고 난간석만 설치했으며 봉분 안에는 석실이 아니라 회격(관을 구덩이 속에 내려 놓고 그 사이를 석회로 메워서 다짐)하고 혼유석 2좌를 마련해 합장릉임을 표시했다. 또 기존의 왕릉에는 난간석에 십이지신상을 조각해 방위를 표시했는데, 영릉은 이를 간소화해 십이지를 문자로 표현하고 있다.

▲ 여주 신륵사
▲ 여주 신륵사

▲여주: 신륵사

신륵사는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 전통사찰로 대부분 평지나 산에 있는 여타 절들과 달리 강변에 위치한 사찰이다. 절 이름인 신륵(神勒)은 미륵불 또는 고려 우왕 때 인근의 마암에서 용마가 나타나 행패를 부리자 나옹이 그 말을 다스렸다는 설화에서 유래했다. 고려시대에는 전탑이 있어서 '벽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 절의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180호 조사당, 보물 제225호 다층석탑, 보물 제226호 다층전탑, 보물 제228호 보제존자석종, 보물 제229호인 보제존자 석종비, 보물 제230호인 대장각기비, 보물 제231호인 석등이 있으며, 유형문화재로는 극낙보전과 그이외의 부속건물로 구룡루·명부전·시왕전·산신당·육각정 등이 있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사진제공=경기관광포털사이트(ggtour.or.kr)

/인천일보·경기문화재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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