⑪김포조강에코뮤지엄-평화를 잇다
▲ 철책선 뒤로 한강과 합류하는 지류가 흐르고 있다.
▲ 철책선 뒤로 한강과 합류하는 지류가 흐르고 있다.

남북평화협력시대, 한강 줄기 따라 비극이 가로지른 철책선이 하나하나 끊기고 있다. 임진강, 한강, 예성강이 만나 서해로 내려가는 한강 수운의 중요 거점이자 남북 교류의 시발점이 될 김포 조강(祖江), 우리는 김포 조강을 주목해야 한다.

20세기 한반도와 동아시아 냉전의 역사를 간직한 곳, 한반도 평화의 불씨가 되길 기원하며 '경기 북부 DMZ 에코뮤지엄' 그 마지막 여정 '김포조강에코뮤지엄'으로 안내한다.

▲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서해로 들어가는 조강.
▲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서해로 들어가는 조강.

▲조강

예로부터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서해로 들어가는 마지막 구간을 '조강'이라 불러왔다.

조강은 바다가 시작되는 '원조의 강' 또는 여러 강물이 모이고 모여 이뤄진 '으뜸 강'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강은 김포의 서쪽 바다와 동쪽 강물을 연결해주는 수운 통로로서 경상·전라·충청 등 삼남 지방의 물자와 인력들이 이곳을 거쳐 한양도성으로 수월하게 올라갈 수 있었다. 특히 조선시대 강녕포와 조강포, 마근포에 형성된 포구마을들은 세곡선과 어선이 쉼 없이 드나들며 물류와 상업이 발달했던 풍요로운 지역이었다.

그러나 수로를 거쳐 한양으로 가는 길목이었던 만큼 외세의 침입으로 크게 피해를 보기도 했고 한국 전쟁 때는 남북의 치열한 전투로 커다란 희생을 치렀으며 이후 휴전선이 그어져 많은 사람이 오랜 생활 터전을 잃고 떠나야 했다.

조강은 이처럼 풍요와 아픔의 역사가 공존하는 지역이다. 그런 조강의 품 안에 자리한 김포는 한반도의 중심으로 조강과 함께 역사, 문화, 자연의 가치를 쌓아왔다.

조강지역은 중립지역이라는 지리적 특수성으로 말미암아 지난 70여 년 넘게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았다. 그 덕분에 인간의 정치적 이념으로 나뉜 땅과 물에서 수많은 생물은 스스로 아픔을 치유하고 조화롭게 상생하고 있다. 이제 조강은 비극의 땅이 아닌 생명의 터전으로 자리를 잡게 됐다. 쉼터로, 서식지로 다양한 기능을 해내고 있는 조강, 그 속의 생물들은 우리가 떠난 자리를 여전히 지키고 있다. 그 덕분에 재두루미, 저어새, 개리 등 세계적인 멸종위기종의 서식지 및 번식지가 됐다. 전쟁으로 서로 교류할 수 없게 된 비극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생명을 보존하는 지역이 됐다. 조강지역에 대한 생태학적 연구와 평화 환경 사업들은 계속해 추진되고 있다.

▲ 김포시 유일한 어항인 대명항에 정박해 있는 어선들.
▲ 김포시 유일한 어항인 대명항에 정박해 있는 어선들.

▲대명항(대명포구)

김포시 대곶면 대명리에 있는 어항(漁港) 포구. 대명포구 또는 대명포(大明浦)라고도 불린다. 김포시 직할 어항으로 바다를 사이에 두고 강화도와 마주하고 있으며 강화도를 잇는 초지대교 등이 있다. 김포시의 유일한 어항이며 하루에 어선이 정박 또는 왕래를 하는 편이고 주변으로 어시장과 어판장이 있다. 60여 척의 배가 연안어업을 하고 어판장에서 직접 해산물을 판매하는 김포 유일의 지방어항이다. 연안에서는 주꾸미, 밴댕이, 자연산 광어, 꽃게 등 다양한 어종이 잡히고 있다. 일대로는 해군의 퇴역한 상륙함인 운봉함(LST-671)을 전시하고 있는 김포함상공원이 있다. 또 매년 4월이면 풍어제를 올리고 있는데, 풍어제는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82-2호로 지정돼 있다.

▲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과 격전을 치른 문수산성.
▲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과 격전을 치른 문수산성.

▲문수산성

강화도의 갑곶진을 마주 보고 있는 문수산의 험준한 정상부에서 서쪽 산줄기를 따라 문수골과 산성포의 두 계곡을 감싸 안고 해안지대로 이어지는 산성이다.

조선 숙종 20년(1694)에 쌓았으며 처음에는 둘레 2400m, 성가퀴 2173곳, 성문 3곳이 있었다. 이후 순조 12년(1812)에 대대적으로 고쳐 쌓았는데 성벽은 직사각형 또는 정사각형으로 다듬은 돌로 단단하게 쌓았다. 그 위에 몸을 숨길 수 있는 낮은 담인 성가퀴가 둘러있다. 성문은 공해루, 희우루 등 문루 셋과 작은 출입문인 동문, 아문이 셋 있었는데 공해루는 갑곶진과 마주 보는 해안에 있어 강화에서 육지로 나오는 관문 구실을 했다.

고종 3년의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과 치열하게 격전을 치른 곳으로 이 싸움에서 해안 쪽의 성벽과 문루가 모두 파괴됐다. 총 길이가 6123m인 성곽의 남은 구간은 4640m이고 없어진 구간은 1483m이다.

김포 장릉의 능침/사진제공=문화재청
김포 장릉의 능침/사진제공=문화재청

▲김포 장릉

선조의 5번째 아들이자 인조의 아버지인 원종(1580∼1619)과 부인 인헌왕후(1578∼1626)의 무덤이다. 인조반정(1623)으로 아들 능양군인 인조가 왕위에 오르자 대원군에 봉해졌고, 인조 10년(1633) 원종의 칭호와 함께 그의 무덤을 장릉으로 불렀다. 왕릉과 왕비릉이 나란히 있는 쌍릉으로, 병풍석이나 난간석은 설치하지 않고 보호석만 둘렀다. 무덤 아래에는 영조 29년(1753)에 세운 '조선국원종대왕장릉 인헌왕후부좌(朝鮮國元宗大王章陵 仁獻王后부左)'라고 새긴 비각이 있다.

▲ 조선시대 해안지대 방어를 위해 설치한 덕포진.
▲ 조선시대 해안지대 방어를 위해 설치한 덕포진.

▲덕포진

덕포진은 조선시대 해안지대의 방어를 위해 설치됐던 진영으로, 처음 세워진 시기는 선조(1567~1608)때로 추정된다. 강화에 소속돼 있다가 1666년(현종7)에 통진으로 옮겨 소속됐다. 1682년(숙종8)에 강화부 주진으로 승격돼 영종도와 안흥진을 관장했다. 강화의 덕진진, 광성보와 강화 해협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이곳은 바닷길을 통해 한성(서울)으로 진입하는 함대, 신미양요(1871)때는 미국 함대와 싸운 격전지이기도 했다. 1980년 발굴조사에서 포대 3곳, 돈대터, 파수청 건물터 등을 발견했다. 포대에서는 1874년(고종11)에 제조한 중포 4문, 소포 2문, 포탄이 출토됐다. 파수청은 지휘소이자 포를 쏘기 위한 불씨를 보관하는 장소로 파수청 건물터에서는 주춧돌과 화덕 자리가 발견됐고 상평통보도 출토됐다.

김포 향교의 전경
김포 향교 전경

▲김포 향교

향교는 조선시대 지방에 세운 공립 교육 기관으로, 중국 춘추 시대의 학자인 공자(孔子)와 여러 성현의 제사를 지내고, 지방 사람들을 교육하는 곳이다. 향교는 공자를 모시는 대성전과 선현을 모시는 동무 서무, 학생들의 강학소인 명륜당과 그들이 기숙하는 동재·서재 등으로 구성돼 있다. 김포 향교는 1127년에 처음 지었다고 전해지나 확실하지 않다. 향교는 원래 김포 여자종합고등학교가 있는 산기슭에 있었으나, 왕의 능을 그곳에 모시게 되면서 김포읍 걸포리로 옮겼다가 다시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건물은 1960년대 이후 여러 차례 보수돼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대성전은 앞면 3칸, 옆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人(사람 인)'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명륜당은 앞면 5칸, 옆면 2칸 규모이며, 대성전과 달리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八(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돼 있다. 명륜당 내부는 일반적으로 좌우 1칸씩 방으로 꾸미는 것과 달리 김포 향교에서는 전체를 1칸으로 구성하고 있다. 대성전과 명륜당만 갖춘 조선 후기 작은 규모의 향교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김포한강야생조류생태공원의 풍경/사진제공=김포시청 블로그
김포한강야생조류생태공원의 풍경/사진제공=김포시청 블로그

▲김포한강야생조류생태공원

김포한강야생조류생태공원은 신도시 환경영향평가에서 환경부의 철새 서식환경 보전 요구에 따라 야생조류 취·서식공간을 보전하고, 생태 체험학습의 장소를 마련해 시민과 생태가 공존하도록 조성된 공원이다. 생태공원 내에는 왕벚나무가 심어진 3.4㎞ 산책길이 놓여 있고 철책선을 배경으로 에코센터에서 용화사까지 이어진 '사색의 길'이 있다. 또 습지생태원은 기존 한강하구 간척 농경지였던 곳이 다양한 습지 식물과 어류 등이 서식하며 사계절 생태계의 변화를 관찰할 수 있다. 주변으로는 신도시가 조성되면서 운양동·장기동·구래동, 대곶면 지역에 자라던 나무들을 모아 숲으로 조성하기도 했다. 특히 생태공원 내 '송송숲'은 신도시 개발로 옮겨진 소나무 400그루를 옮겨 심게 되면서 고촌리 일대로 숲이 형성돼 있다. 생태공원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야생동물이 발견되고 있다. 큰 기러기, 쇠기러기, 백로, 왜가리, 저어새, 노랑부리저어새, 고라니, 너구리 등이 서식하고 있다.

 

/글·사진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인천일보·경기문화재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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