⑩파주평화캠프에코뮤지엄-통일의 시작
▲ 임진강은 함경남도 마식령에서 발원하여 서남쪽으로 흘러 황해로 흘러드는 강이다. 임진강 일대 갈대들이 너울거린다.
▲ 임진강은 함경남도 마식령에서 발원하여 서남쪽으로 흘러 황해로 흘러드는 강이다. 임진강 일대 갈대들이 너울거린다.

분단의 끝, 통일의 시작 파주. 그리고 DMZ. 얼어붙은 이 땅 위로 통일의 염원이 요동친다. 손 내밀면 닿을 듯, 북녘땅을 마주한 채 전 세계가 주목하는 이곳에서 다시 한 번 희망을 노래한다.

20세기 한반도와 동아시아 냉전의 역사를 간직한 곳, 한반도 평화의 불씨가 되길 기원하며 ‘경기 북부 DMZ 에코뮤지엄’ 그 일곱 번째 여정 ‘파주평화캠프에코뮤지엄’으로 안내한다.

▲판문점

판문점은 정전협정(1953년 7월27일) 체결 이후 군사정전위원회의 원만한 운영을 위해 설치됐다.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유엔군 측과 공산군 측, 공동경비구역을 설정하기로 합의한 데 따라 동서 800m, 남북 400m에 달하는 장방형의 공동경비구역이 설정됐다. 판문점이라는 명칭은 현재 위치에서 개성 쪽으로 1㎞ 떨어진 ‘널문리’라는 마을 이름에서 유래됐다. 남측 지역에는 남북 간 연락과 교류지원 시설로 ‘자유의 집’과 회담시설로 ‘평화의 집’이, 북측 지역에는 우리 측 시설에 각각 대응한 ‘판문각’과 ‘통일각’이 있다. 판문점은 남북이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냉전의 상징에서 이제는 대화와 평화의 장이 되고 있다.

▲ 경의선 남쪽 최북단역 도라산역 전망대의 기념사진.
▲ 경의선 남쪽 최북단역 도라산역 전망대의 기념사진.

▲도라산역

민통선(DMZ) 남방한계선에서 약 700m 떨어진 경의선 남쪽 최북단역이자 북으로 가는 첫 번째 역이다.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서만 볼 수 있는 통일 플랫폼과 도라산 평화공원이 조성돼 있고 남방한계선 철책을 직접 볼 수 있는 곳이다.

남북화해의 미완성역이기도 한 도라산역은 향후 경의중앙선 철도 연결이 완료돼 남북왕래가 가능해질 경우 북한은 물론 중국이나 러시아를 가는 사람, 화물 등에 대해 관세 및 통관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도라산역에 있는 평양 205km, 서울 56㎞의 이정표는 남북분단의 현실과 앞으로 극복해야 할 희망과 기대를 담고 있다.

향후 도라산역은 한반도 분단의 상징적 장소이면서 남북교류의 관문이라는 이중적인 역사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도라전망대

DMZ안에 위치한 전망대로 북한을 가장 가까이 볼 수 있는 남측의 최북단 전망대이다. 이곳에서는 북한의 선전마을, 농토 등이 바로 눈 앞에 펼쳐지고 망원경으로는 개성 시가지 일부 및 개성공단과 김일성 동상을 볼 수 있다.

서부전선 최북단을 지키고 있는 도라전망대는 군사분계선으로부터 1.5㎞ 떨어진 해발 167m의 도라산 정상에 있다. 도라전망대 관람은 신분증을 지참한 누구나 가능하며 민간인통제지역에 있어 승용차의 출입이 제한되기 때문에 관람을 원하면 임진각주차장에서 ‘DMZ 안보연계견학’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한다.

▲ 1시간에 무장병력 3만명이 통과할 수 있는 '제3땅굴'./사진제공=경기문화재단
▲ 1시간에 무장병력 3만명이 통과할 수 있는 '제3땅굴'./사진제공=경기문화재단

▲제3땅굴

제3땅굴은 1974년 9월5일 북한의 귀순자 김부성씨가 남측 비무장지대 내의 커다란 미루나무를 보고 땅굴을 측량한 측량기사라고 아군에게 제보하면서 1978년 10월 17일 발견됐다. 탐사를 하던 중 지하수가 공중으로 솟아오르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발견된 곳은 판문점 남방 4㎞ 지점으로 서울에서 불과 52㎞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제1·2 땅굴보다 훨씬 위협적인 것으로 평가됐다. 규모는 폭 2m, 높이 2m로 1635m가량을 굴착했다. 남쪽에는 3갈래로 나누어진 출구를 내고 1시간당 무장벽력 3만명의 병력이 통과할 수 있다.

남침용 땅굴이라는 근거는 땅굴의 경사가 북쪽으로 약 3도가량 기울어져 있어 물이 북쪽으로 배수가 되도록 했으며 암반을 폭파하기 위한 다이너마이트 장전공이 남으로 향해 있고 땅굴암벽의 검은색의 석탄칠은 예전부터 있었던 자연동굴로 위장하기 위해 칠했으나 이 지역은 석탄이 조금도 나지 않는 지역으로 거짓임이 드러나 분명한 남침용 땅굴로 판명됐다.

현재는 제3땅굴을 관람하기 위해 파주시에서 2003년 10월4일부터 2004년 6월19일까지 TBM기계로 길이 358m 내경 3m 경사도 11도로 굴착해 2004년 6월30일 개통하고 관람객에게 도보관람로로 이용되고 있다.

▲ 비무장지대 유일한 마을 '대성동' 200여명이 산다./사진제공=DMZ공식홈페이지
▲ 비무장지대 유일한 마을 '대성동' 200여명이 산다./사진제공=DMZ공식홈페이지

▲민통선 마을(통일촌·해마루촌·대성동)

-통일촌(장단콩 마을)

파주시 군내면 백연리 일대에 있는 통일촌은 행정구역상 정책입주촌(군사분계선 남방 4.5km 지점)에 해당한다. 현재 통일촌에는 466명 125가구가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70년대 초 당시 입주민들은 17세 이상 60세 이하의 남자들로 향토 예비군을 편성해 국방의 일면을 담당하게 하는 등 이스라엘의 전략촌인 ‘키부츠’를 모델로 해 만들어진 정착 마을이라 한다.

일전에 통일촌은 황무지로 방치된 채 놀고 있던 땅을 개간해 식량을 생산하게 됐다. 특히 예로부터 통일촌은 콩의 맛과 영양이 우수해 임금님께 진상되기도 했다. 여기에서는 50년 동안 마을 주변으로 공장과 오염원이 없는 청정구역에서 자란 농산물이 생산된다.

-해마루촌

초평도를 껴안고 있는 천혜의 청정지역인 해마루촌은 지난 60년간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동식물을 쉽게 관찰할 수 있는 지역으로 알려졌다.

-대성동 자유의 마을

1953년 7월 남북간 정전협정을 체결할 때, 남과 북은 비무장 지대에 각각 1곳씩 마을을 두기로 하면서 그렇게 생겨난 마을이 북쪽의 기정동 마을과 대성동 마을이다.

이중 남측에 있는 대성동 마을은 49가구 207명(2015년 4월 기준)이 거주하고 있고, 면적은 약 490만㎡(취락지 2.6%, 농경지 97.4%)로 이루어져 있다. 주민들은 벼, 콩, 고추 등을 재배해 수입을 얻고 있고, 948필지(480만㎡)의 농지에서 농업 활동을 하고 있다.

대성동 마을은 정전협정 제10항에 의해 국제연합군사령관에서 관할하고 있는데, 이에 따라 민사행정과 구제사업은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이 책임지며, UN사령관(한미연합사 겸직)이 관할하고 UN의 통제를 받는다. 따라서 대한민국 국민의 4대 의무 중 납세와 국방의 의무가 면제된다. 이 경우 병역 면제를 악용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남자는 결혼을 하면 외부 여자를 마을로 불러들일 수 있으나, 여자는 외부 남자를 불러들일 수 없다고 한다. 대성동 마을은 거주권 심사가 까다로워 60년 전이나 지금이나 주민의 수는 큰 변화가 없다.

오후 7시에는 민정 중대가 가구별 인원을 점검하고, 자정부터 새벽 5시까지 통행이 금지된다. 대성동마을 민정반 사무실 옆에는 국내 최고 높이의 국기 게양대가 자리 잡고 있는데 게양대 높이는 99.80m이고, 게양대 높이에 걸맞게 태극기의 크기는 가로 19m, 세로 12m에 달한다.

이 국기게양대는 분단의 아픔을 여실히 보여주는 시설물로 북한에서도 잘 보일 수 있도록 높게 설치한 것이라고 한다.

이에 맞서 군사분계선 너머에는 북한의 인공기가 마주 보고 있는데, 북한 기정동 인공기 게양대도 원래는 80m 남짓이었으나, 이를 제거하고 약 165m 높이로 다시 만들어 세웠다고 한다.

대성동마을은 1959년 조성되기 시작해 제1차 종합개발(1972년)과 제2차 종합개발(1979년~80년)을 통해 신축됐다. 현재 거주하고 있는 주택은 대부분 그 당시 지어진 건물들인데 체제 선전을 위해 건축되다 보니 남향이 아닌 북향으로 짓게 됐고, 결국 일조량이 적어 찌는 듯한 한여름 밤에도 대성동 주민들은 전기장판이 없인 잠을 이룰 수 없다고 한다. 게다가 건물들도 낡아 보수가 시급한 상황이지만, 대성동마을은 주택 건축 당시 건축물대장에 올리지 않아 거주 주민의 주택 소유권이 없어서 주택을 보수할 수 없다고 한다.

▲율곡이이 유적<br>
▲율곡이이 유적

▲율곡이이 유적

율곡이이 유적은 조선중기의 대학자이며 경세가인 율곡이이의 유적지이다. 선생은 아버지 이원수와 어머니 신사임당사이에서 출생했다. 1564년(명종19) 생원시에 장원한 이후 모두 아홉 차례에 장원해 구도장원공으로 불렸으며 대사간, 대사헌 ,대제학, 형조, 병조, 이조판서 등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선생은 조선 유학계에 이황과 쌍벽을 이루는 대표적인 학자로 기호학파를 형성했고 당쟁의 조정 10만 대군의 양성, 대동법 실시 등에 노력했다. 유적지 내에는 율곡 이이를 비롯한 가족묘역과 선생의 위패를 모신 ‘자운서원’이 있다. 가족묘역에는 율곡 이이와 부인 곡산 노씨묘를 비롯해 부모인 이원수와 신사임당 합장묘 선생의 형 이선묘 아들 이경림 묘 등이 중심묘역을 이루며 그 외에 가족묘 등 모두 14기가 조성돼 있다. 자운서원은 조선 광해군 7년(1615)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돼 효종 원년(1650) ‘자운(紫雲)’이란 현액을 하사받은 사액서원으로 숙종 39년(1713)에 선생의 제자인 김장생과 박세채를 추가로 모셨다. 고종 5년(1868)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없어졌다가 1970년 유림의 기금과 국가지원을 받아 복원했다. 이외에도 자운서원의 건립이력을 적은 ‘자운서원 묘정비’와 율곡이이의 일대기를 기록한 ‘율곡이이 신도비’유적 등이 있으며 이이의 유품과 일대기를 전시한 율곡기념관이 자리 잡고 있다. 1973년 자운서원, 율곡이이묘, 신사임당묘가 각각 경기도문화재로 지정됐다가 2013년 2월 국가 사적 제525호 ‘파주이이유적’으로 승격됐다.

 

▲화석정

임진강가에 세워져 있는 정자로 조선 중기의 대학자 율곡이이가 제자들과 함께 시를 짓고 학문을 논하던 곳이다. 세종25년(1443) 율곡의 5대조인 이명신이 정자를 건립했는데 성종9년(1478) 이이의 증조부 이의석이 중수하고 이숙함이 ‘화석정’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져 80여년간 터만 남아 있다가 현종 14년(1673)에 후손들이 복원했으나 6.25전쟁때 다시 소실 되어버리고 말았다. 1966년 파주의 유림들이 성금을 모아 다시 복원한 것으로 건축양식은 팔작지붕 겹처마에 초익공 형태로 조선시대 양식을 따랐다.

율곡 선생은 임진나루에 있는 화석정에 틈이 날 때마다 들기름을 묻힌 걸레로 정자 마루의 기둥을 닦도록 했다. 임종 때 ‘어려움이 닥치면 열어보라’고 하며 밀봉한 편지를 남겼다고 한다.

이후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임금이 의주로 피난길을 따르던 이항복이 율곡의 밀봉한 편지를 열어보니 ‘화석정에 불을 지르라’고 쓰여있었고 기름이 잘 먹은 화석정에 불이 붙자 관솔이 타듯 불길이 올라 나루 근처가 대낮같이 밝아져서 선조 일행이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다고 한 일화가 전해진다.

 

▲율곡습지공원

경기도 파주에 있는 율곡습지공원은 재해예방시설(저류지)을 마을 주민들이 꽃을 심고 가꾼 곳으로 봄이면 유채꽃이 피고, 가을이면 코스모스가 피는 아름다운 곳이다. 율곡습지공원은 고향의 정겨운 시골풍경을 떠오르게 하며, 넓은 꽃밭과 습지에 피어있는 연꽃 군락지, 억새, 옛 농기구가 있는 초가집, 높이 솟아 있는 솟대들, 삐뚤빼뚤 재미난 모양의 장승, 물레방아 등이 정감을 자아낸다. 연꽃 군락지에서 시원하게 물을 뿜어내는 분수가 인상적이고, 초가 원두막, 그네 등 곳곳에 쉼터가 있어 쉬어가기 좋다.

 

▲허준선생묘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명의 허준 선생의 묘다. 그동안 선생의 묘는 확인되지 않다가 ‘양천허씨족보’에 기록된 내용을 바탕으로 조사한 결과 발견됐다. 발굴 당시 원비의 마모된 비문에 쓰인 글자자가 새겨져 있어서 선생의 묘인 것으로 확인됐다.

▲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을 꿈꾸는 헤이리.
▲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을 꿈꾸는 헤이리.

▲헤이리문화예술마을

헤이리 예술마을은 15만 평 규모로 통일동산 관광특구 내에 있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을 꿈꾸며 일정한 자격 조건을 갖추고 심사에 통과한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와 예술가 300여명이 공동체 마을을 이루며 거주하고 있다. 헤이리는 문화예술의 생산, 전시, 판매, 거주가 함께하는 통합적 개념의 특수한 공동체 마을이다. 수많은 갤러리, 박물관, 전시관, 공연장, 소극장, 카페, 레스토랑, 서점, 게스트하우스, 아트숍과 예술인들의 창작공간이 자리 잡고 있다. 예술인들의 창작과 작품 전시, 문화체험 공간이 어우러진 헤이리 문화예술마을은 문학인, 미술인, 영화인과 건축가, 음악가 등 370여 명이 회원으로 참여해 현재까지도 만들어가는 과정 중에 있고, 이미 지어진 건축물과 공사가 진행 중인 건물들이 또 다른 시각적 즐거움을 주고 있다. ‘헤이리’라는 이름은 파주 지역에 전래하는 전통 농요 ‘헤이리 소리’에서 따온 것이다.

헤이리를 돌아보는 포인트는 무엇보다 독특한 개성을 뽐내며 자리 잡은 건축물에 있다. 페인트를 사용하지 않고 지상 3층 이상 올리지 않는다는 규정하에 낮고 복잡한 구릉지 위에 자리 잡은 다양한 형태의 건축물들은 국내외 대표 건축가들의 작품이고 중간중간 서 있는 설치품 역시 자연과의 조화를 고려한 예술 작품들이다. 주로 서점과 갤러리 등으로 운영되지만, 작가의 개인 주거 공간도 있으니 돌아볼 때 주의가 필요하다.

자유롭게 들어선 멋진 건축물뿐 아니라 갤러리들의 기획 전시회를 비롯해 헤이리 페스티벌, 서울 실내악 페스티벌 등 다양한 축제들과 문화예술 공연이 열리는 볼거리 많은 예술마을로 소개되고 있다.

 

/글∙사진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인천일보∙경기문화재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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