⑧연천리버에코뮤지엄-미래를 여는 문
▲ 임진강 일대로 단풍이 지어있는 모습.
▲ 임진강 일대로 단풍이 지어있는 모습.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임진강과 한탄강 줄기 따라 같은 물을 먹고 살아온 동네의 기억과 꿈이 서려 있는 곳, 연천. 그 영겁의 시간이 남긴 자연, 역사, 문화, 사람들의 이야기를 간직한 이곳에서 다시 한 번 활기찬 미래를 꿈꿔본다. 

20세기 한반도와 동아시아 냉전의 역사를 간직한 곳, 한반도 평화의 불씨가 되길 기원하며 ‘경기 북부 DMZ 에코뮤지엄’ 그 다섯 번째 여정 ‘연천리버에코뮤지엄’으로 안내한다.

 

지형: 임진강

▲ 임진강 위로 황포돛배가 떠 있는 모습.
▲ 임진강 위로 황포돛배가 떠 있는 모습.

임진강은 북한 지역인 강원도 법동군 두류산 남사면 마식령 근처에서 발원해 개성시를 통과하는 설계천과 만난 뒤 연천 한탄강을 거쳐 한강과 합류하는 강이다. 임진강은 한강과 합쳐진 뒤 한강 하구를 이루며 김포 반도와 황해로 흐른다. 임진강의 길이는 254㎞, 수역 면적 8117㎢를 가진다. 임진강의 명칭은 강의 제일 하류에 있는 ‘나루’라는 의미이며 ‘다다른 나루’라는 의미의 ‘더딜나루’, ‘다달나루’라고 불렸다. 임진강의 많은 구간에서 용암대지가 침식한 추가령 구조곡이 보인다. 기반암의 침식으로 생긴 하천 위를 용암대지가 덮은 뒤로 다시 침식이 일어난 형태의 한탄강과 달리 임진강은 대보 조산운동으로 형성됐으며 화강암과 용암대지가 차별 침식을 겪으면서 지역마다 지질 구조가 다른 특징을 보인다. 덕분에 임진강 수계의 지형은 독특한 풍광과 함께 특색있는 생태권을 만드는 바탕이 됐다. 임진강은 중상류 지역 상당 부분이 북측에 있고 중하류는 DMZ를 이루고 있어 개발이 이뤄지지 않는 구간이 많다. 덕분에 습지와 산림이 하나의 생태권으로 형성하면서 희귀 곤충, 멸종위기의 양서류, 파충류, 다양한 조류와 포유류를 비롯해 금강초롱, 왜솜다리와 같은 110여종의 특산 식물이 자라고 있다. 임진강은 현재 연천군과 파주시의 상수도원이면서 주로 농업용수공급을 담당하고 있다.

 

항구: 고랑포구

▲ 고랑포구의 번성했던 옛 모습을 재현한 고랑포구 역사공원.
▲ 고랑포구의 번성했던 옛 모습을 재현한 고랑포구 역사공원.

삼국시대부터 전략적 요충지로 임진강을 통한 물자교류 중심 역할을 하던 나루터다. 1930년대 개성과 한성의 물자교류를 통해 ‘화신백화점’의 분점이 자리 잡을 정도로 번성했으나 남북분단과 한국전쟁으로 쇠락했다. 고랑포구가 임진강 뱃길을 중심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즈음이다. 임진강 수운의 종점이었던 고랑포는 경기북부지역 포구의 중심이었다. 고랑포의 상업적 위상은 개항기를 거치면서 보다 강화됐다. 1887년(고종24)부터 시작된 쌀, 콩 등의 곡물 수출이 1890년에 급격히 증가해 포구가 활기를 띠었고 산지와 개항장을 연결하는 중간 집결지 역할을 하면서 발전을 거듭했다. 고랑포구는 휴전 이후에도 1∙21 무장공비 침투사건을 통해 고랑포의 군사적 중요성이 재발견되기도 했다.

고랑포구가 위치한 연천군 장남면에는 연천 고랑포구 역사공원이 조성돼 있다. 연천 고랑포구 역사공원은 고랑포구의 역사와 지리적 특성을 생생하게 구현, 재현해 보여준다. 가상, 증강현실을 통해 실감 나는 역사 및 안보체험이 가능해 어린이들의 놀이 공간과 다목적 공간, 세미나실 등이 있다. 

 

유적: 호로고루

▲ 고구려성 호로고루 전경.
▲ 고구려성 호로고루 전경.

호로고루는 임진강 북안의 현무암 절벽 위에 있는 고구려성이다. 호로고루라는 명칭은 일대의 임진강을 삼국시대부터 ‘호로하’라 불렀던 데서 유래됐다. 성의 둘레는 401m로 크지 않지만 특이하게도 남쪽과 북쪽은 현무암 절벽을 성벽으로 이용하고 평야로 이어지는 동쪽에만 너비 40m, 높이 10m, 길이 90m 정도의 성벽을 쌓아 삼각형 모양의 성을 만들고 있다. 한강유역에서 후퇴한 고구려는 6세기 중엽 이후 7세기 후반까지 약 120여년 동안 임진강을 남쪽 국격으로 삼았는데 임진강 하류에서부터 상류 쪽으로 덕진산성, 호로고루, 당포성, 무등리 보루 등 10여개의 고구려성을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했다. 그중 호로고루는 고구려 평양성과 백제 한성을 연결하는 간선도로상에 있을 뿐 아니라 말을 타고 직접 임진강을 건널 수 있는 길목을 지킬 수 있었으므로 고구려의 남쪽 국경 방어성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기능을 수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수차에 걸친 발굴조사 결과 성 내부에서 건물지와 수혈유구, 대규모 석축집수지, 우물, 목책 등 다양한 유구와 연화문와당, 치미, 호자, 벼루 외에도 많은 양의 고구려 토기가 출토됐다. 

 

유적: 경순왕릉

▲ 경순왕릉
▲ 경순왕릉

경순왕은 신라의 마지막 왕으로 성은 김, 휘는 부이며 제46대 문성왕의 후손이다. 경순왕이 경애왕의 뒤를 이어 즉위할 당시에는 국력이 쇠퇴했다. 특히 후백제 견훤의 침략으로 영토는 날로 줄어들고 있었다. 대세가 고려로 기울어지자 경순왕은 무고한 백성들이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고려 왕건에게 평화적으로 나라를 넘겨 준 후 왕위에서 물러났다.

경순왕이 경종 3년에 개경(개성)에서 세상을 떠나자 이곳에 능이 마련되었으나 그 후 오랜 세월 동안 실전되었다가 조선시대 영조 23년에 다시 찾게 됐다. 경순왕릉은 조선시대 전형적인 묘소의 격식으로 재정비돼 능표, 양석, 장명등, 망주석 등이 이때 마련됐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경순왕의 운구 행렬이 경주로 가기 위해 이곳 임진강 고랑포에 이르렀을 때 고려왕실에서 경주지역의 민심을 우려해 왕릉은 개경 100리밖에 쓸 수 없다 하는 이유로 운구 행렬을 막았다고 한다. 결국 경순왕릉이 이곳 고랑포 북쪽 언덕에 자리 잡게 됨에 따라 신라 왕릉 가운데 경주지역을 벗어난 유일한 능이 됐다.

 

지형: 재인폭포

▲ 단풍으로 장관을 이루는 재인폭포.
▲ 단풍으로 장관을 이루는 재인폭포.

재인폭포는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고문리에 있는 폭포이다. 지장봉에서 발원한 한탄강의 지류가 현무암 주상절리 절벽을 따라 18m 높이의 폭포를 이룬다. 재인폭포는 광대를 주인공으로 하는 전설이 유명하다. 옛날 아름다운 부인을 둔 광대가 있었는데 고을 수령이 그의 아내를 탐내어 폭포의 계곡 사이에 줄을 걸고 줄타기를 시킨 후 광대가 줄 가운데 이르자 줄을 끊어 죽게 했다는 것이다. 아내는 복수하고자 수령의 수청을 받아들이는 척하고는 잠자리에서 수령의 코를 물어뜯은 후 혀를 깨물어 자결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이후 마을 사람들은 이 폭포를 재인폭포라고 부르게 됐고 마을 이름도 코문이가 산 마을이라 해 코문리라 부르게 됐다 하며 현재는 고문리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게 됐다. 폭포 아래에는 다양한 암석들과 더불어 하식동굴, 용암가스튜브 등이 관찰된다. 또한 이곳은 천연기념물 어름치와 멸종위기종인 분홍장구채 등의 서식지로도 알려져 있다. 일대로는 공원을 조성하고 출렁다리를 건설하면서 국내를 대표하는 관광명소로도 소개하고 있다.

 

산업구조물: 연천역 급수탑

▲ 연천역 내에 있는 급수탑.
▲ 연천역 내에 있는 급수탑.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차탄2리 연천역 내에 있는 옛 급수시설이며 국가등록문화재 제45호로 지정돼 있다. 1914년 경원선(서울~원산 간) 개통 당시부터 1967년까지 운행하던 증기 기관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건립한 2개의 급수탑이다. 급수탑은 콘크리트조로 기단, 몸통, 처마가 구성돼 있으며 출입구 부분에 아치이맛돌을 두었는데 보존 상태가 좋다. 높이 23m의 원통형 급수탑 내부에는 출입구 반대쪽에 계기 조작판이 있으며 3개의 급수관과 기계장치가 있다. 위로 갈수록 좁아지다가 머리 부분에서 다시 넓어지는 모양새를 띠고 있다. 탑 외부에는 6·25전쟁의 흔적인 총탄 자국이 여기저기 남아 있어 역사적 의미도 담겨 있다.

 

산업구조물: 구 경원선 철도 중단점 신탄리역

 

경원선의 경기도 최북단 종착역으로 대광리역 다음에 위치하며 1913년 7월10일 영업을 시작했다. 인근 마을은 고대산의 풍부한 임산자원을 숯으로 가공해 생계를 유지했으며, ‘새숯막’이라 불렸다. 철도가 부설된 뒤로는 숯가공이 더욱 번창했다고 한다. 1945년 8 ∙15광복과 동시에 북한에 귀속됐다가 1951년 수복됐다. 1971년 철도중단점 표지판을 설치했다. 통근열차가 운행되며 여객, 승차권발매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군사관련시설: 연천 유엔군 화장터

연천 유엔군 화장장은 서부전선 전투에서 한국전쟁 당시 사망한 유엔군 전사자들을 위한 화장 시설로 1952년에 건립됐다. 돌과 시멘트로 쌓은 10m 높이의 시설 일부가 연천에 남아 있다. 전쟁 당시 화장장 시설로는 유일한 유적이다. 또한 유엔군 참전 상황에 대한 실증적 자료로 한국전쟁사의 생생한 현장으로 그 보존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 화장장은 짧게 휴전 이후에도 사용되다가 자연스럽게 전쟁 이후 폐기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화장장의 시설물은 대부분 훼손되었고, 화장장 굴뚝만 그대로 남아 있다. 화장장은 2008년 10월1일, 등록문화재 408호로 지정됐다.

 

관광·서비스 시설: 신망리 마을박물관

▲신망리 마을박물관 전경.
▲신망리 마을박물관 전경.

경원선 신망리역 서쪽에 위치했던 신망리는 휴전 직후 1954년 피난민 정착지로 지정됐다. 이후 UN군(미군 7사단)의 원조로 100채의 가옥 및 행정시설이 건립됐으며, 미군 7사단의 마을계획, 설계, 자재 제공으로 주민들이 함께 집을 지어 세운 마을이다.

현재 원 상태 그대로 남아 있는 구호주택은 없지만 일부 가옥에서 그 원형을 추정해볼 수 있으며, 도시계획의 형태는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다. 평평한 땅에 1~3층의 나지막한 건물들이 격자 형태로 앉아 있어 마을 주민들은 주로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신망리마을박물관의 조성을 통해 신망리를 상징하는 구호주택 복원 설계도, 신망리 구 지적도 등을 전시하고, 애플리케이션과 마을로고 디자인, 구호주택 키트 조립 굿즈 등을 개발해 보존하고 있다.

 

자연보호지역: 물거미서식지·생물권 보전 지역

▲ 천연기념물 제412호로 지정된 물거미.
▲ 천연기념물 제412호로 지정된 물거미.

연천 은대리의 물거미서식지는 세계적인 희귀종, 물거미가 서식하는 국내 유일의 생태습지로 전곡읍 은대리 차탄천변의 용암대지 위에 자리하고 있다. 주변은 현재 대부분이 논으로 형성돼 있고 그 외의 지역은 군사 훈련장이 있다. 천연기념물 제412호로 지정된 물거미는 공기 방울을 만들어 물속에서 거의 모든 생애를 보내는 독특한 생활사를 가진 희귀한 동물이다. 물거미는 절지동물 거미강 거미목 물거미과, 물거미속, 물거미 계통으로 분류되는데, 전 세계에서 오직 1과 1속 1종만이 존재한다. 국내에서는 1950년대 중반에 보고된 이후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아 멸종된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1995년 전곡읍 은대리 일대의 군 주둔 지역에서 물거미의 서식이 확인됐다. 2007년 개체 수 조사에 의하면 이 서식지 내에 약 4만여 마리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천 임진강 생물권보전지역은 연천군을 가로질러 흐르는 임진강과 한탄강을 중심으로 연천군 전역이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한반도 역사에서 중요한 삶의 터전으로 기능했던 임진강은 남북분단으로 인해 인간의 활동이 줄어들면서 두루미, 어름치, 물거미 등 다양한 생물들이 도래하고 서식하게 됐다. 

 

/글∙사진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인천일보∙경기문화재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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