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진서를 꺾고 삼성화재배 첫 우승을 차지한 박정환 9단. 사진제공=한국기원

박정환(28) 9단이 신진서(21) 9단을 꺾고 삼성화재배 첫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박정환 9단은 3일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 2층 대회장에서 온라인으로 열린 2021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결승3번기 최종국에서 신진서 9단에게 166수 만에 백 불계승하며 종합전적 2대 1로 우승했다.

박정환 9단은 결승1국에서 패한 이후 2, 3국에서 내리 승리하며 역전 우승에 성공했다.

초반 좌상변 접전에서 득을 본 박정환 9단은 실리로 앞서가며 중반 한때 인공지능 승률 그래프 95%에 육박할 정도의 리드를 잡으며 국면을 주도했다. 불리한 신진서 9단이 백 대마를 추궁하며 승부수를 띄웠지만 박정환 9단이 대마를 잘 수습하자 집이 부족한 신 9단이 돌을 거뒀다. 대국 개시 3시간 15분 만의 종국이었다.

우승 직후 인터뷰에서 박정환 9단은 “처음부터 힘들다고 생각했지만 결승1국까지 져 거의 반포기 상태였는데 운이 따른 것 같다. 결승2, 3국 모두 정말 내용이 어렵고 한수라도 실수하면 바로 지는 바둑이었기 때문에 승리가 더 값지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어 “어제 저녁에 연구한 모양이 좌상변에서 나와 초반 시간을 안 들이고 좋은 길을 찾아갈 수 있었다. 중간에 신진서 사범이 실수를 해서 득을 보긴 했지만 바둑이 많이 남아 아직 어려운 형세라고 생각했다. 중반 타개하는 과정에서 돌을 다 잡으러 왔을 때 마지막까지 사는 수를 잘 찾지 못했는데 대마가 살아 승리할 수 있었다”고 최종국을 돌아봤다.

또 박 9단은 “이번 우승은 정말 뜻밖의 우승이라 생각한다. 8강전 진출자를 보니 제가 나이가 가장 많더라.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고 생각해 더 절박하게 임한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우승소감을 전했다.

삼성화재배 우승에 성공한 박정환 9단은 개인 통산 다섯 번째 메이저 세계대회 타이틀을 거머쥐면서 2년 만에 무관에서 탈출했다. 입단 후 32번째 타이틀을 획득한 박정환 9단은 신진서 9단과의 상대전적도 22승 26패로 좁혔다.

메이저 세계대회 우승은 2019년 6월 춘란배 우승 이후 2년 5개월 만이다.

반면 국내 6관왕을 질주 중인 신진서 9단은 통산 세 번째 메이저 타이틀 사냥에 도전했지만 박정환 9단에게 역전패하며 2년 연속 삼성화재배 준우승에 그쳤다.

박정환 9단의 우승으로 한국은 7년 만에 삼성화재배 우승컵을 탈환하면서 통산 13회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에 이어 중국이 11회, 일본이 2회 우승했다.

한편 결승 직후 열린 시상식에서 삼성화재 황상민 상무와 한국기원 양재호 사무총장이 우승한 박정환 9단에게 우승 트로피와 우승상금 3억 원을, 준우승한 신진서 9단에게 트로피와 준우승상금 1억 원을 각각 전달했다.

올해로 26번째 우승자를 가린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는 삼성화재해상보험(주)이 후원하고 중앙일보가 주최했다.

1996년 창설된 삼성화재배는 세계바둑의 패러다임을 바꾸며 바둑사에 큰 족적을 남겨왔다.

1999년 4회 대회부터 프로기전 사상 처음으로 아마추어에게 문호를 개방한 삼성화재배는 2001년 6회 대회부터 통합예선을 완전 오픈해 참가를 원하는 모든 외국기사들에게 기회를 부여했다.

2004년 9회 때는 세계 최초로 상금제를 실시하며 선진적인 대회 시스템을 구축했다.

2006년 여성조 신설, 2009년 바둑대회 최초로 더블 일리미네이션 방식 도입 및 시니어조를, 2013년에는 월드조를 신설했다. 이밖에도 프로암바둑대회 개최, 창간 20년 기념책자 발간, 바둑 꿈나무 선발전, 방과 후 바둑대회와 대학생 바둑대회 개최, 군부대 바둑보급활동 등 다양한 시도와 이벤트를 병행한 삼성화재배는 ‘세계바둑제전’이라는 별칭에 걸맞은 시도를 계속 했고 프로기사들이 가장 참가하고 싶은 대회로 자리매김했다.

수많은 명승부를 만들어낸 것도 빼놓을 수 없다.

7회 대회 때 조훈현 9단이 50세의 나이에 우승했고, 2003년 조치훈 9단은 사상 첫 와일드카드 출전 우승기록을 작성했다. 2012년 17회 대회 때는 이세돌 9단이 구리 9단에게 반집승 두 번으로 단 한집 차이 우승을 거머쥐는 진기록을 남겼다. 2014년에는 세계대회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김지석 9단이 반전 드라마를 쓰며 우승하기도 했다. 이번 대회에서 7년 만에 우승컵을 탈환한 한국은 박정환 9단과 신진서 9단이 명승부 끝에 우승, 준우승을 동시에 차지하면서 한국 바둑의 부활을 알렸다.

/이종만 기자 malema@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