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희환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학술연구교수가 인천상륙작전 과정에서 벌어진 월미도 원주민들의 피해 실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지부장·김재용)는 25일 오전 인천역과 자유공원, 월미도 일원에서 ‘인천지역의 6.25 전쟁-인천상륙작전의 역사현장’ 탐방 행사를 가졌다.

‘2021년 인천지역 역사현장 시민답사 프로그램’의 세 번째 순서로 개최된 이 날 행사는 인천광역시 지원 사업으로 진행됐다.

이날 오전 10시 인천역 앞에서 출발한 탐방단은 인천상륙작전이 전개된 북성포구와 월미공원, 월미 전통정원, 그린비치, 월미도 정상 등을 두 그룹으로 나눠 2시간여에 걸쳐 돌아봤다.

해설은 최태육 한반도통일역사문화연구소장과 이희환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학술연구교수가 각각 맡았다.

이 연구교수는 “1950년 9월 15일 감행된 인천상륙작전은 6.25 전쟁의 전세를 역전시킨 빛나는 승리로 회자되고 있지만, 그 뒤에 가려진 월미도 원주민의 아픔은 조명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가기관인 진실·화해위원회는 인천상륙작전 과정에서 벌어진 항공기 폭격과 함포 사격으로 인해 월미도 주민 100여 명의 희생당했을 것으로 추정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상륙작전을 감행한 미군은 ‘불필요한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국제인도법상의 전쟁 규범을 외면한 채 군사적 목표물과 비군사적 목표물도 구분하지 않고 무차별 집중 포격을 자행했다고 비판했다.

특히 이런 희생을 치른 월미도 원주민들은 전쟁이 끝난 뒤 자신들의 거주지에 군부대가 주둔하면서 지금까지도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다“고 밝혔다.

월미도 원주민들은 지난 2006년부터 인천지역 시민사회단체들과 공동으로 ‘월미도미군폭격희생자위령제’를 거행하는 한편, 귀향대책위원회를 꾸려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조치해 줄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 연구교수는 “인천시와 국방부는 화해와 평화를 얘기하면서도 원주민들의 고통을 철저히 외면한 채 인천상륙작전을 전쟁축제로 재생하려는 계획을 내놓고 있다”면서 “이런 모습을 보면서 과거의 이념의 포로로 잡혀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고 꼬집었다.

그는 “60년 전 인천상륙작전으로 폐허가 됐던 인천이 남북화해의 중핵도시, 평화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서라도 인천상륙작전을 더 이상 이념대립의 상징이자 정치적 타산을 위한 기념물로 확대 재생산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최태육 한반도통일역사문화연구소장이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한 미국의 전쟁 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탐방단을 자유공원으로 안내한 최 소장은 인천상륙작전의 의미와 이 작전을 통한 미국의 목적 등을 당시의 각종 기록을 통해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는 먼저 “인천상륙작전 직전인 1950년 8월, 한국 해군 첩보대와 해군은 상륙작전의 통로와 안전지대를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덕적도와 자월도, 선제도, 대부도, 영흥도 일대에서 민간인들을 대단히 가혹하게 처리했다”고 밝혔다.

또한 미군을 중심으로 조직된 연합군은 인민군 주둔지를 파괴한다며 월미도와 송림동을 비롯한 인천 전역을 폭격했고, 함재기들은 월미도 마을에 네이팜을 떨어뜨리고, 갯벌로 피한 민간인들에게 기총소사를 퍼부었다고 덧붙였다.

최 소장은 미국이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한 이유에 대해서 “소련 공산주의의 팽창을 봉쇄한다는 목표 아래 38선 이북으로 전쟁을 확대하려는 전쟁 정책에 따른 것”이라며 “이는 극동아시아에서 미국 패권의 효율적 유지를 위한 전략이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당시 맥아더는 6.25 전쟁을 확대시켜 한반도를 통일하고 이를 통해 소련 공산주의로부터 만주와 중국 공산주의자를 분리시키고 아시아의 공산화를 축소시켜 소련의 팽창을 차단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맥아더와 일본에 핵폭탄을 투하한 르메이 미 전략공군사령관은 이를 관철하기 위해 만주에서 핵무기를 사용하고 이 과정에서 소련과의 전쟁이 일어날 경우 소련 도시에 100여 기의 원자폭탄을 동시다발적으로 투하하는 계획을 수립하기도 했다.

최 소장은 “미국은 인천상륙작전을 통한 38선 이북으로의 전쟁 확대, 만주 핵 공격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했으며, 한국민의 이해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이유로 맥아더는 상륙작전을 감행하면서 네이팜탄을 비롯한 무차별 폭격과 포격으로 수많은 민간인이 살상당할 것으로 충분히 예측했으면서도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한편 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는 다음 달 12일 오후 인천 중구청에서 ‘죽산 조봉암의 생애와 사상’을 기리는 ‘2021년도 제2회 역사 포럼’을 개최한다.

오유석 성공회대 교수가 발제를 맡고, 주대환 죽산기념사업회 부회장 등이 토론자로 참석할 예정이다.

이어 10월 23일에는 ‘제4차 인천지역 역사현장 시민답사 프로그램’으로 부평 캠프마켓, 부평 토굴 자리 등을 돌아보는 ‘부평지역 일제 징용 현장 답사’를 진행한다.

/글·사진=정찬흥 기자 report61@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