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인천서만 40건 사회 문제화
'친족상도례' 특례상 경찰수사 애로
전면 폐지 등 현실적 개정안 필요성
노인학대 신고. ⓒ아이클릭아트
노인학대 신고. ⓒ아이클릭아트

A(74)씨는 지난 2월 인천의 한 경찰서에 아들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했다. 아들이 매번 찾아와 돈을 요구하고 거부하면 욕설을 하는 등 행패를 부렸기 때문이다. 아들은 그동안 A씨의 명의를 도용해 휴대폰과 신용카드를 이용했고 A씨 이름으로 약 3500만원의 채무를 졌다.

그러나 A씨는 경찰로부터 “가족 간 금전 문제에 대해 수사하기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 형법 제328조에 규정된 '친족상도례' 특례 때문이다.

친족상도례는 '친족 간 벌어진 재산상 위법행위는 형을 면제한다'는 원칙이다.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 사이의 재산범죄는 그 형을 면제하고, 그 밖의 친족 사이의 재산범죄는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기소할 수 있다.

경제적 학대를 구제받지 못한 A씨는 결국 인천노인보호전문기관에 연결됐다. 기관은 민간사업인 '생활경제 지킴이 파견사업'을 통해 카드사와 통신사에 A씨의 채권추심 및 압류 절차를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고 채무액을 일부 삭감 받을 수 있었다. A씨는 여전히 아들이 진 빚을 갚고 있다.

지난해 65세 이상 인구가 41만명을 넘어서며 고령사회로 진입한 인천에서 경제적 학대가 새로운 사회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12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0 노인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인천 발생 학대건수는 468건이다. 2019년 369건 대비 26.8% 증가했다. 이 중 A씨와 같은 '경제적 학대'를 당한 경우는 40건이다. '경제적 학대'는 노인으로부터 재산 또는 권리를 빼앗는 행위로 노인 인구 증가와 공적연금 확대 등에 따라 전국적으로 증가 추세다. 전국에서 노인에 대한 경제적 학대 건수 역시 2018년 381건, 2019년 426건에서 지난해 431건으로 늘었다.

경제적 학대의 80% 이상은 A씨의 경우처럼 가족 간에 발생한다. 그러나 가정 문제로 치부돼 학대사례로 집계되지 않거나, 신고가 들어와도 정부 또는 보호기관이 개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1953년 당시 농경사회와 대가족제도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친족상도례가 도시화, 핵가족화에도 남아 있어 현실적인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희남 인천노인보호전문기관장은 “경제적 학대를 당한 노인을 돕고 싶어도 형법인 친족상도례 원칙이 노인복지법에 우선해 적극 개입할 수 없다”며 “자식들은 부모의 기초연금, 유공자 연금 등을 자신의 재산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노인 지원 시설이나 보호기관과 갈등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지난 6월 더불어민주당 이성만(인천 부평갑) 국회의원은 친족상도례를 전면 폐지하는 형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과거에도 관련 법안이 여러 차례 논의됐지만 성과로 이어진 적은 없어 난항이 예상된다.

이 의원 측은 “과거에는 자식이 부모를 부양한다는 믿음이 있었지만 현재는 가족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개념이 바뀌었다”며 “국가가 나서 노인 복지를 고민해야 하는데 여전히 가족에게 부양의무를 맡기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따끔 기자 ouchlee@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