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편집인으로 일하는 지인으로부터 한 문화교양잡지를 배달받았다. 먼저 창간 1주년 특별기획이 눈에 들었다. '당신은 무엇으로 위로받나요?'라는 주제로 한 설문조사 중 유독 시선을 끄는 항목이 있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면 가장 하고 싶은 것은?'이라는 질문에 응답자 62.3%가 '해외여행'을 꼽은 것이다. 1년 수개월째 해외출장길이 막혀 갑갑해 하고 있는 나에게 이심전심의 느낌을 끌어냈다.

남동공단에서 출발하여 송도국제도시에 자리 잡기까지 경영도 20년이 흘렀다. 수출 중심 사업체를 이끌다 보니 셀 수 없을 만큼 자주 해외출장을 다녔다. 현지 고객사 방문 등 비즈니스 업무가 끝나고 자투리 시간이 나면 관광명소나 역사 유적지를 찾아다니곤 했다. 비즈니스로 생긴 긴장과 스트레스를 풀어주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간 일본은 물론이고 미주 유럽에서도 많은 고객사 관계자들이 우리 회사를 찾아왔다. 그들의 출장 일정에 비하면 비즈니스 일정은 의외로 적은 시간을 차지했다. 이 때문에 그들의 여유 시간까지 챙겨주려고 나름 고민하곤 했다. 바르셀로나, 뉴욕, 실리콘 밸리, 일본 동북지방 등에서 업무를 마치기 무섭게 물어물어 이곳저곳을 둘러보러 다닌 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늘 같은 고민은 '어디로 그들을 안내할까?'였다.

한국의 음식과 명소를 자랑하고픈 마음이 굴뚝같다. 그들의 숙소에서 가까운 명소나 기억에 남을만한 곳을 찾아본다. 인천에 살고 또 사업을 하고 있으니 인천의 명소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결론은 늘 서울의 남산타워나 경복궁과 명동 그리고 파주의 임진각과 제3땅굴, 도라전망대, 오두산 전망대 등이었다. 서울로 파주로 가는 길에 교통체증이라도 빚는 날엔 내가 왜 이렇게 먼 곳으로 안내하나 하는 낭패감이 들면서, 왜 인천에는 외국인들이 좋아하고 기억에 남을 명소가 없단 말인가 하고 자문하곤 했다. 월미도, 차이나타운, 인천상륙작전기념관 등 지금까지 몇몇 명소로 그들을 안내해 봤지만 미국, 유럽, 일본 고객사 관계자들의 시큰둥한 반응을 보고 민망스럽기까지 했다. 미국에 있는 본사 관계자와 중국 현지법인 직원과 동춘동의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을 방문한 적이 있다. 기념관 전시관을 둘러보면서 상당한 관심을 갖는 미국인과 달리 중국인은 시종일관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아니나 다를까 중국군의 참전을 두고 같은 회사의 두 손님이 언쟁을 벌이는 게 아닌가. 그날 분위기를 바꾸느라 여간 애를 먹은 게 아니다.

몇 번을 다녀왔어도 다시 가고 싶은 해외 명소를 손으로 꼽는다면 단연코 바르셀로나이다. 세계최대통신 관련 전시회가 열리는 이 도시의 인구는 인천시 절반 정도인 160만명에 불과하고 면적은 10분의 1 정도다. 하지만 도심 명소는 늘 전 세계 관광객으로 넘쳐난다. 관광객의 지갑에서 쏟아져 나오는 돈으로 도시가 돌아가는 모습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콜럼버스 동상, 람브라스 거리, 카탈루냐 광장 같은 역사적인 명소도 있지만 구엘 공원과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비롯해 카사 밀라, 카사 바트요 같은 유명 건축물의 인기도 대단하다, 1882년 건축이 시작된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140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설계를 담당한 천재건축가 가우디는 인부들과 함께 무려 40여 년간 현장에서 보냈다. 현재 건축비는 오로지 기부금과 입장료 수입만으로 충당하고 있다. 유명 건축가의 희생과 바르셀로나 시민들의 관심이 역사가 되어 세계적인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글로벌시대 도시를 알리고 사람을 불러 모으기 위해서는 그 도시와 시민의 철학, 자본, 시간, 열정이 함께 버무려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주체는 바로 시와 기관이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근시안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수십 년, 수백 년 후를 내다보는 노력과 지혜가 필수다.

인천에서 사회 첫 출발을 하고, 사업을 하고, 가정의 뿌리를 내리며 살고 있다. 인천광역시에 대한 애정만큼이나 쓴소리를 마다치 않는 이유이다. 나는 소망한다. 하늘길과 바닷길을 통한 대한민국의 관문인 인천에 업무로 방문하는 비즈니스맨의 발길을 인천 여행으로 이끌고, 해외 젊은이들과 신혼부부들이 인천으로 여행하는 날을…

/조학래 (주)이너트론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