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년 9월 숭의동 공설운동장, 남구 구민 체육대회가 열렸던 어느 날이었다. 단상의 의자에는 구청장이 중앙에 좌정했고 그 왼쪽에 경찰서장을 포함한 관내 기관장들이, 오른쪽으로는 부구청장부터 구청의 실·국장급 간부순으로 자리를 잡았다. 언론사나 기자가 흔치 않았던 시기였고 남구 출입기자는 달랑 한 사람이었다. 출입기자가 현장에 도착한건 행사가 시작된지 꽤 시간이 흐른 뒤였다. 기자를 보자 단상의 사람들은 거의 모두 일어났고 부구청장부터는 아예 자리를 한칸씩 이동하면서 구청장 옆자리에 기자가 앉도록 이끌었다. 27살의 한창 젊은 수습기자 정도가 감당하기에는 어처구니없는 자리 배열이었고 얼굴이 붉어진 기자는 인사도 제대로 못한 채 도망치듯 현장을 빠져 나왔다. 어줍잖은 고백이지만 감출 게 많았던 권위주의 시절, 기자들에 대한 대접은 늘상 과잉이었다.
 인천 검찰청에 기자실이 생긴건 93년이었다. 수사와 취재간 갈등이야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터이고 판·검사들이라고 기자가 반가울 리는 더더욱 없다.
 “공익의 대표인 검사들이 진정으로 국민들을 대표키 위해선 언론과 함께 호흡해야 한다. 항차 관공서의 본래 주인이야 국민들이고 국민들의 알 권리는 헌법에 보장된 일임에랴.”
 좁디좁은 석바위 검찰청사는 검사실조차 부족해 난리를 피우던 지경이었다. 법률과 논리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검찰은 마침내(우여곡절이야 왜 없었겠는가마는) 기자실을 설치했다. 이후 북구청 세도사건, 법원 횡령사건 등 전국을 떠들석하게 한 대형사건이 잇따르면서 전국의 기자들이 몰려든 인천지검 기자실은 제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88~89년 당시 기업마다 노동조합이 우후죽순처럼 생겼다.
 권위주의에 가로 막혔던 노동자들이 억압을 뚫고 답답함을 봇물처럼 토해내던 시절이었다. 고압적이긴 회사측이 항상 한 발 앞서갔지만 노조도 머리띠를 두른 채 사장이나 회사 간부들을 상대로 그전 같으면 어림 당치도 않을 고함도 쳐보고 책상도 탕탕 두드렸다.
 처음엔 다들 그런 모양새가 너무 신기했고 일반 조합원들의 눈길에 노조 집행부의 그런 위상은 지난 세월의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린 쾌거에 다름 아니었다.
 협상의 핵심은 온데 간데 없고 노·사간 폭력적 대립만 남았다라는 비난이 아무리 이어져도 그땐 그게 더 중요했다. 어용(御用)이 아니라는 선명성을 담보받기 위해선 오히려 더욱 폭력적이어야 했을 정도다.
 그러나 몇 년 지나지 않아 노·사 모두 불필요한 힘 자랑이 별 것 아닐뿐 아니라 가치의 본말이 전도된 어깻짓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역시 세월이 가면 철이 드는 이치다.
 시청 기자실을 놓고 인천시 공무원 직장협의회가 분기탱천(憤氣큖天)이다. 공직협이야 공무원 노조의 바로 전 단계이고 구청장·시장을 상대로 하위직 공무원들의 단합된 힘을 적잖이 과시해 왔다.
 이번에는 기자실이 시민들의 혈세를 낭비한다고 전제하고는 기자실 폐쇄를 목적으로 한 일전 불사의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공직협은 이미 인천지역 구 단위 기자실에 대해 실력행사를 통한 폐쇄라는 짜릿한 경험을 맛 본 뒤다. 부평구청에 이어 시청 기자실 출입문에도 망치로 못 질을 해버렸다. 관청의 잘한 일보다는 늘 잘못한 일에 관심이 더 많은 언론 보도는 공무원들을 괴롭히는 주적으로 인식되고 그 최종적 스트레스는 하위직인 실무자가 가장 많이 뒤집어쓴다. 그래서 기자들이 모여있는 기자실에의 못질은 통쾌하기 이를데 없다. 기자 모시기를 강요받았던 공무원들 입장에서야 언감생심 꿈도 못 꿔보던 일이기도 하다.
 공직협 집행부는 구성원들에게 달리 방법이 없다는 이유로 폭력을 정당화하면서 `우리도 하면 된다""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공무원들이 밉다고 관공서를 없애자는 주장에 귀 기울이는 시민은 없다. 6급 이하 하위직 공무원들이 사건의 주범이었던 북구청 세도사건은 인천의 공무원들이 인천 시민들을 세계적으로 욕되게 한 사건이었다.
 공직협의 논리라면 당시 인천의 공무원들은 모두 짐을 싸서 집으로 가든지 아니면 길바닥에서 근무를 해야 옳았다.
 기자실은 그저 기관과 언론을 잇는 물리적 공간에 불과하다.
 기자나 언론이 미울 수 있고 기자실 운영의 방법이야 다시 정할 수도 있지만 기자실 자체가 미운건 웃기는 발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