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 와중에 새로 등장한 말들이 많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백신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피부에 와닿는 것이 있다. '백신 민족주의'. 코로나 백신을 생산하는 국가들이 자국이나 동맹국 위주로 공급해 다른 나라에서는 백신 보릿고개 현상이 빚어지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해 백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다. 이로 인해 국제사회가 시끄럽다. 일반 재화와는 달리 생명을 좌우하는 물품임에도 자본주의 논리가 기승을 부린다는 비난까지 나온다.

백신 한 번 맞기가 가뭄에 콩나듯 어려운 나라가 있는가 하면, 미국과 이스라엘은 백신이 남아돌아 2차 접종에 이어 부스터 샷(추가 접종)까지 추진하고 있다. 백신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세계 백신공유 계획인 코백스 퍼실리티(COVEX)가 가동됐지만, 격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백신 불평등이 '죽음의 불평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온다.

국민에게 한 차례 이상 백신을 접종한 비율은 캐나다(72%), 영국(70%), 스페인(64%), 이탈리아(62%), 독일(61%), 프랑스(60%) 순으로 높았다. 언뜻 봐도 돈 많은 나라들이다. 반면 아프리카는 백신을 한 번 이상 맞은 비율이 3%에 그쳤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 종식을 위해 백신 110억회분이 필요하다며 선진국들에게 백신 기부를 요청했다. 하지만 미국은 6월 말까지 8000만회분을 타국에 보내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아프리카는 아직 미국으로부터 백신을 전달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아니마 유엔에이즈계획(UNAIDS) 사무국장은 “코로나 백신은 시장에서 사는 명품 핸드백이 아니라 세계적인 공공재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신 민족주의는) 부유한 사람들이 빵집을 움켜쥐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비유도 등장했다.

백신 불평등은 국가 간, 국민 간 위계를 형성하고 생명의 등급을 매긴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또 코로나 위기의 세계적 장기화와 변이 바이러스 지속적인 발생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요즘 백신 수급으로 볼 때 전세계가 집단면역 형성에 약 4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수록 코로나 변종에 의해 현재의 백신이 무력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백신 이기주의'로도 불리는 백신 민족주의는 결과적으로 인류 전체를 위험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그러면 백신 강대국들이 즐기고 있는 '백신의 봄'도 물거품이 될 것이다. 인류 공존을 위해 국제적 연대와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백신 민족주의는 비도덕적이고 근시안적이며, 비효율적이고 치명적이라 할 수 있다.

 

/김학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