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주르~ 프랑스도 사랑한 마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문화 불모지 행궁동

성안 사람들의 개발 반대로
쇠락해 가던 구도심에
자택 개조한 복합문화공간
벽화마을 프로젝트로 활기


▲대안공간 눈…'예술공간 봄'으로

14년간 2500명 전시지원 등
마을공동체 일으켜 대통령상
경제적 위기에 맞부딪히며
현재 카페·공방만 남았지만
매향교에 '다리밑 갤러리' 등
예술가·주민 위한 고민 지속


-프랑스서 선보일 두번째 '눈'

얼마 전 한인 외교관 부탁으로
노르망디 1800년대 수도원
개조 통한 조성계획 세워
내년부터 K-도시재생 본격 전파
▲ 이윤숙 예술공감 봄 대표가 “예술이 확산될 수 있는 거점 공간이 지역 곳곳에 생겨난다면 어두운 세상이 좀 더 밝아질 것”이라며 “제2, 3의 대안공간 눈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기꺼이 역할을 하겠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문화·관광 산업계가 직격탄을 입고 침체돼 가고 있다는 뉴스가 연일 터져나온다. 이런 뉴스를 비웃기라도 하듯, 수원 행궁동 일대는 주말이면 타지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발디딜 틈 없다. 수원시는 각종 행사들을 축소하는 등 방역을 위한 조치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행궁동을 찾고 있다. 불과 20여 년 전 만 해도 행궁동은 쇠락해 가던 구도심이었다. 성안 사람들의 자부심이 지켜낸 전통과 개발을 막아서면서 심화된 양극화 현상은 행궁동을 몰락의 길을 걷게 했다. 이때부터 일찌감치 문화를 통한 도시재생으로 지역 발전을 꾀한 이가 있었다. 도시재생의 불모지에서 도시재생의 성공신화를 이끌기까지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엔 예술공간 봄, 이윤숙 대표가 있다. 수원의 문화 도시재생, 나아가 K-도시재생을 알리기 위해 도전장을 내민 이윤숙 대표를 7일 만났다.

#마을의 등불

밤이 찾아오면 짙은 어둠이 깔리던 수원천 다리 밑이 빛으로 환해졌다. 흉흉했던 산책로에서 걸음을 재촉하기 바빴던 시민들은 언제부턴가 발길을 멈춘 채, 한 여름밤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지난달 매향교 밑으로 조성한 '다리 밑 갤러리'가 다시 한번 성안 마을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 역시나 행궁동 소식엔 이윤숙 대표의 이름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누가 이런 기가막힌 아이디어를 냈는가 살펴봤더니 역시나는 역시나다.

“코로나로 실내 미술관을 찾기 어려워진 요즘, 전시공간이 없어 힘들어하는 예술가들이 많아지면서 이들에게 전시할 공간을 마련해주기 위해 고민하다 다리밑 갤러리를 떠올리게 됐죠. 또 매향교 일대는 시민들이 밤낮 가릴 것 없이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장소 중 한 곳인데 주변으로 조명시설이 없어 시민들이 불편해하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밤에도 관람할 수 있는 갤러리를 설치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다리밑 갤러리를 열게 됐습니다.”

2년 전, 이 대표는 청년 작가들의 전시 활동을 지원하고 지역민들의 소통 거점 역할을 해 오던 '대안공간 눈'의 운영을 전면 중단하고 현재는 카페와 문화 공방인 '예술공간 봄'의 운영만을 어렵사리 꾸려가고 있다. 그런데도 이 대표의 얼굴에선 한결 여유가 느껴진다.

“예전에 비해 여유로워진 것이 사실이에요. 코로나 여파도 무시할 수 없을테고, 예술공간 봄 운영은 전적으로 아들에게 맡겨두고 최근엔 화성 봉담에 둔 작업실에서 작품 활동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근근히 농사일도 하고 고추, 토마토, 푸성귀를 수확해 이웃들에게 나누기도 하고요. 또 요새 매실이 제철이잖아요. 매실주를 담궈 나눠 먹기도 하고 이전보다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요즘이네요!”

이윤숙 예술공감 봄 대표가

#이웃들을 위한 '눈'

푸근한 인상과 소탈한 옷차림이 평범한 우리네 이웃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윤숙 대표는 수원 지역 문화예술계에서 입지전적한 인물이자 상징적인 인물이다. 더욱이 '대안공간 눈'이 일으킨 파급력은 대한민국 문화 역사를 뒤흔들만큼 큰 사건이었다. 그렇기에 대안공간 눈의 폐업 당시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 했다. 2005년에 세워진 대안공간 눈은 이윤숙 대표와 그의 부군인 김정집 관장이 슬럼화 돼 가는 북수동에 활기를 불어넣고 젊은 예술가들의 활동 지원을 위해 기거하던 자택을 개조해 만든 복합문화공간이다. 14년간 비영리를 목적으로 2500여 명의 예술가들에게 전시를 지원하고 지역민들에겐 소통 공간으로 활용되면서 주민자치 실현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개인주의적 사고가 만연해짐에 따라 무너져가던 마을공동체를 일으키고 일자리를 창출해 내는 등 큰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 결과 2011년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대통령상의 영예가 주어졌다, 전국 각지에서 대안공간 눈의 성공사례를 답습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그러나 경제적인 위기에 맞부딪히며 결국 대안공간 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10년 넘게 대안공간 눈을 운영하며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었죠. 대안공간 눈은 제 삶의 원천이기도 했습니다. 몇몇 이웃의 음해와 유언비어에 속앓이를 하는 일도 있었지만 여지껏 북수동 살며 김치를 손수 담궈 본 적이 없을 만큼 따뜻함과 감사함을 항상 간직하고 있는 곳이 바로 이 북수동입니다. 또 기꺼이 자신의 집을 제2의 대안공간 눈으로 만들어줄 것을 내어주시는 분들이 계실 만큼 보람을 안겨준 공간이기도 합니다.”

▲ 행궁동 벽화마을.
▲ 행궁동 벽화마을.

#마을이 만들어 낸 기적

이윤숙 대표와 대안공간 눈을 대신하는 또다른 이름은 '행궁동 벽화마을' 프로젝트다. 지난 2010년부터 2011년까지 1년여 에 걸쳐 행궁동 일대로 진행된 벽화 프로젝트는 지역 사회에 활기를 불어넣고 주민 거버넌스의 시초격이자 기폭제가 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경기문화재단의 공모 사업을 통해 진행된 벽화마을 프로젝트에는 독일, 브라질 등 세계 각국의 작가들과 지역민, 자원봉사자, 이윤숙 대표가 모두 한 마음 한 뜻으로 힘을 모아 추진한 프로젝트다. 도시재생의 불모지로 여겨지던 한국 사회에서 이 대표가 시도한 벽화마을 프로젝트는 도시재생의 모범 선례를 남기며 전국으로 확대돼 갔다. 당시 브라질 작가 라켈 셈브리가 행궁동 금보 여인숙 벽면으로 그린 황금물고기가 각종 매체를 통해 화제 선상에 오르며 행궁동의 벽화마을은 더더욱 주목받기 시작했다.

▲ 라켈 셈브리(브라질)가 생전에 그린 행궁동 금보 여인숙 벽화 '황금물고기'.
▲ 라켈 셈브리(브라질)가 생전에 그린 행궁동 금보 여인숙 벽화 '황금물고기'.

“행궁동을 정말 사랑한 작가였죠. 자그마한 체구에 밝은 에너지가 쏟아져 나오는 친구였는데 한가지 일화를 전하자면 금보여인숙의 사장님은 처음엔 벽화 그리는 것을 매우 반대 하셨었어요. 그런데도 라켈은 유독 금보 여인숙에 벽화를 그리고 싶어 했습니다. 결국 직접 찾아가 서툰 한국어로 사장님을 설득하고는 금보여인숙 앞에 삐라루크라는 아마존 물고기를 그렸죠. 금보 여인숙 대문은 마치 물고기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형상처럼 느껴져서 화제가 됐었죠. 사장님도 매우 만족해하셨고. 혹자는 그 벽화가 30억의 가치가 있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멋진 작품으로 남았습니다.”

안타깝게도 5년 전 라켈 셈브리는 아이를 낳던 중 세상을 떠났다. 이 때문에 매년 그녀의 기일이면 이 대표는 추모제를 열고 있다. 예술공간 봄의 한 켠에는 라켈을 추억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두고 있다. 최근에 이 대표는 SNS를 통해 라켈의 자녀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라켈 셈브리를 추억하는 공간.
라켈 셈브리를 추억하는 공간.

#제2의 대안공간 눈

역사 속 한 페이지로 남게 될 '대안공간 눈'에 최근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도시재생과 마을공동체 활성화라는 2마리 토끼를 모두 거머쥔 대안공간 눈의 성공사례는 세계 각국에도 전해졌다. 에코뮤지엄과 뉴딜 정책이 전 세계적인 화두로 제시됨에 따라 행궁동 대안공간 눈의 가치가 더욱 커져가고 있다. 이 대표는 내년을 기점으로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에 제2의 대안공간 눈을 세울 계획이다.

“얼마 전 프랑스 지역에 계신 한인 외교관분이 자문을 요청해 오셨죠. 1800년대에 만들어진 수도원을 하나 매입했는데 이곳을 대안공간 눈과 같이 만들고 싶다는 얘길 하시더라고요. 이곳을 문화거점으로 만들고 싶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 오셔서 코로나 사정이 좋아진다면 내년 쯤 프랑스로 넘어가 제2의 대안공간 눈을 세워볼 계획입니다.”

오랜 시간 지역 문화에 중요성을 강조해 온 이 대표는 문화도시로의 도약을 앞 둔 수원시에 대한 애정 어린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수원은 이미 문화도시죠. 그만큼 문화 자원이 많은 도시이자 동시에 인문학의 도시이기도 합니다. 구슬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 이 좋은 자원들을 잘 활용한다면 문화도시 수원은 꿈이 아닌 현실이 될 것입니다.”

/글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사진 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