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11월19일-비뿌리는 늦은 가을날 오후 항동의 오림포스호텔 언덕밑에서 뜻깊은 행사가 있었다. 이듬해 맞게 될 한국의 기독교 선교 100주년을 기념하는 기념탑의 첫삽을 뜨는 자리였다. 인천시내 기관장과 교계 지도자들이 모인 기공식에서 강원룡 목사는 `지혜로운 건축사""라는 설교를 통해 `과거회상에만 머물지 말고 미래를 향해 새역사를 창조""해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100주년기념사업회의 지원과 인천시내 교회로 부터의 헌금 등 당시 3억원을 들인 이 기념탑은 이듬해 봄 완공된다. 총면적 600㎡의 부지위에 높이 17m의 탑 구조물 175㎡이 조각가 윤영자 교수에 의해 세워졌다.
 탑의 모양은 세개의 기둥으로 한국종을 형상화하여 내부에 아펜젤라 부부와 언더우드 선교사의 청동 조각상을 앉히고 있으며 좌대에 100년전 인천항에 첫발을 딛으며 했다는 기도문이 적혀있다.
 아펜젤러와 언더우드는 우리나라에 기독교를 전한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이다. 물론 그이전에도 선교사들이 거쳐간 흔적은 있다. 토마스 목사가 대동강에서 셔먼호 사건으로 순교한 것은 이보다 20년전인 1865년의 일이요 그를 전후해서 압록강변이나 황해도지방에 선교사들이 잠입 활동했는데 선교목적의 허가를 얻어 입국한 것은 그들이 처음이었다. 1885년 4월5일 그해 부활절날 인천에 상륙하면서였다.
 그이후 우리에게 생생하게 기억되는 선교사들이 여럿 있다. 게일박사는 서울에서 모페트는 평양을 근거로 선교했다. 호주 장로교의 아담슨은 문등병 구제에 힘썼으며 멕켄지 스크렌튼은 황해도 지방에서 활약했다. 근년 우리나라에 돌아와 작고한 `조선회상""의 저자 홀박사는 해주에서 결핵퇴치에 힘썼다. 내리교회의 아버지 존스 목사 부부는 근대교육의 효시인 영화학교를 설립했다.
 기독교100주년 기념탑이 관리부실로 외면당하고 있다. 변변한 안내표지도 없고 불법주차 차량들로 둘러싸여 접근조차 용이치 않다고 한다. 그곳에는 기념탑만 아니라 국제마라톤 기념석 인천항선거 준공기념비 도로원표 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