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구 선생’ 유적지 탐방 행사에 참여한 ‘2021 한강하구 평화의 배 띄우기 조직위’ 일행이 인천감리서 터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1 7.27 한강하구 평화의 배 띄우기 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는 25일 평화 콘퍼런스 이틀째 일정으로 인천 중구 개항장 일대에서 백범 ‘김구 선생 유적지’ 탐방행사를 가졌다.

탐방단 일행은 송미영 문화관광 해설사의 안내로 중구청 앞 조계지와 개항기 건물을 리모델링해 복합 문화예술 공간으로 꾸민 아트 플랫폼, 근대문학전시관, 우리나라 최초로 쌀과 콩을 경매하던 미두취인소, 1923년 세워진 중동우체국 건물, 인천세관 역사공원 등을 돌아봤다.

현재 조성공사가 한창인 신포동 ‘김구 거리’로 자리를 옮긴 일행은 김구 선생이 옥살이를 하던 인천감리서 터에서 김구 선생과 인천과의 인연, 모친 곽낙원 여사의 눈물겨운 옥바라지 일화를 들었다.

탐방단에 참여한 정세일 조직위 상임대표는 이 자리에서 김구 선생 동상 건립지로 유력하게 거론됐던 중구 자유공원의 역사와 명칭 변경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했다.

자유공원의 원래 명칭은 ‘만국공원’이다.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뒤, 국내에 수립된 한성 임시정부의 밑그림이 이곳에서 완성됐다. 1919년 4월 2일 전국 13개도 대표와 종교계 지도자들이 만국공원에 모여 12명의 임시정부 각료를 임명하고 국민대회 취지서 채택, 일제의 통치권 철거, 군비 철퇴, 일본 관청 납세 거부 등을 결의했다.

정 대표는 “세계 모든 나라의 중심지에는 독립이나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했던 인물의 동상이 서있기 마련”이라면서 “우리도 김구 선생의 동상을 당시 인천의 중심지인 만국공원에 세우려고 했지만 반대에 부딪혀 인천대공원 한 구석에 모실 수밖에 없었다”며 아쉬워했다.

특히 “이승만 전 대통령은 수도 서울의 관문인 인천의 중심지에 외국 군인인 맥아더의 동상을 조성하고 이름도 자유공원이라고 바꿔 버렸다”며 “이 때문에 인천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은 이 모습을 보고 몹시 의아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이라도 잘못된 과거를 바로 잡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만국공원’이라는 원래의 이름을 되찾는 것”이라며 “인천내항 제1부두에 김구 선생 기념관과 동상 조성이 추진되는 만큼 이런 노력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달라”고 당부했다.

/글·사진=정찬흥 논설위원 report61@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