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이자 유일의 지역 인권보호관
2015년 수원시 인권센터 초대 보호관 임명
시·산하기관·시민문제까지 해결 특명 받고
구제를 위한 그물망 같은 제도 및 체계 구축

▲의심의 눈초리 바꾼 소변봉투 사건
'지자체가 무슨 인권이냐'는 경계의 시선 속
공무원 시험장 응시생에 벌어진 인격침해에
결정문 작성·인권위 진정 등으로 제도 개선
지역 인권기구의 성공 가능성 보여준 계기돼
지금은 연 70건 상담 · 시민 기구로 자리매김

▲두번째 인권기구의 탄생을 꿈꾸며
인권문제 시대적 명제됐지만 깜깜 무소식
지역인권은 결국 지자체장 의지가 핵심
남은 임기동안 시스템 토대 다지기에 노력
▲ 박동일 수원시 인권담당관은 인권센터 초대 인권보호관으로, 공무원 사회에서 발생하거나 시민들이 겪는 인권침해 사례들 찾아 제도 개선과 인격권 보장 등에 힘을 싣고 있다. /사진=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기본적 권리'. 쉬운 듯 가까워 보이는 사전적 해석과 다르게 전 세계 인류가 오랜 세월 풀어내지 못한 최대 해결과제 중 하나가 바로 '인권'이다. 어쩌면, 해답의 실마리가 촘촘하고 '작은 단위'의 체계에 있지 않을까. 이 물음을 실험하기 위해 6년 전 수원시는 사상 초유의 인권기구 설립에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그렇게 박동일(57) 수원시 인권담당관은 누구도 해보지 않은 '기초자치단체 1호 인권보호관'이 된다.“수원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인데, 내가 은퇴하기 전 고향을 위해 무슨 도움이 될만한 일이 없을까 생각했죠. 마침 지인이 권유하면서 지원하게 됐고 운 좋게 합격했습니다. 운명의 끈이 저를 이 자리로 이끈 게 아닐까 싶습니다.”

박동일 인권담당관은 2015년 개소한 '수원시 인권센터' 초대 인권보호관이다. 그 전에는 법률 자문 관련 일을 했다. 외부인사, 즉 공무원이 아닌 민간인 출신이 이 같은 직함을 얻은 건 전국 226개 기초자치단체 어느 곳에도 없었다. 마치 '암행어사'를 연상케 한다. 시와 산하기관 행정 내부는 물론 시민 인권침해 문제를 해결하라는 특명하에 시장으로부터 인권조사, 시정권고, 정책개선 등을 직접 시행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가히 파격적이었다. 인권 보호는 전적으로 국가인권위원회 소관이다. 그러나 시민 입장에서는 친숙하지 않은 기관이라 다가가길 꺼린다. 업무가 워낙 많아 구제 절차가 꽤 오래 걸리기도 한다.

/사진=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

“지자체가 무슨 인권이야?” 그래도 인권은 생소했고, 의식이 부족했다. 시 안팎으로 좋은 반응만 나오지는 않았다. 실제 2012년 인권위가 각 지자체로 권고한 '인권기본조례'를 반영한 곳도 손에 꼽았다. 그나마 인권에 깨어있는 지자체라 해도, 전문성이 없는 공무원을 앉혀 실효성이 없었다. “경계의 눈초리를 받았고 공직이 여러 가지로 비협조적이라 마음도 많이 상했죠. 스스로 길을 내면서 걸어왔다고 표현하고 싶어요. 참고할 만한 선례나 자료가 전혀 없어 모든 것을 처음부터 하나하나 만들어가야만 했죠. 인권구제업무를 수행하는 곳이 서울과 광주밖에 없었으니까요.”

가시밭길로 출발했으나 결국 해냈다. 인권센터를 찾는 상담은 매년 증가한다. 최근 3년간 연평균 약 70건 이상이다. 시민이 찾는 인권기구로서 자리 잡았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는 지표다. 지금까지 무려 376건을 상담했고, 137건을 조사한 인권센터는 일종의 '성지'가 됐다. 전국에서 인권을 다루거나, 다루고자 하는 모든 곳은 여기를 방문해 벤치마킹했다고 한다. 지자체만 아니라 경찰청, 삼성전자, 연구기관까지 모두 27개다. 지자체가 인권을 제대로 다루려면 기구 구성부터, 기본계획·인권교육·인권영향평가 등 실효성 있는 장치마련이 선행되어야 한다. 박 담당관은 전국 최초로 시 행정을 자치법규, 정책, 공공건축물 등 3대 영역으로 나눠 각각 영역에 맞는 평가지표와 절차를 마련하는 등 그물망 같은 체계를 구축했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시험기관에서 응시자의 화장실 이용을 제한한 것은 시험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응시자의 인격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결정문 中) 

사실 박 담당관이 지역 인권기구의 가능성을 세간에 알린 계기는 따로 있다. 센터가 개소한 그해 6월 발생했던 '지방공무원 시험장 소변봉투 사건'이 대표적이다.

도내 30개 시·군이 2595명의 공무원을 뽑기 위한 필기시험이 1567개 시험장에서 실시했는데, 감독관이 '근무요령'에 따라 화장실 출입을 원칙적으로 금지한 것이 발단이다. 감독관은 화장실이 아닌 시험장 뒤쪽에서 소변 봉투를 사용하도록 했고, 여성의 경우 우산으로 가리고 용변을 해결할 것을 공지하면서 응시자들의 반발이 일었다.

직권조사에 착수한 박 담당관은 인간이 지녀야 할 기본적 품위를 유지할 수 없도록 한 행위로 판단, 센터가 '지방공무원 임용시험 응시자의 인격권 보장을 위한 제도개선 권고'를 결정하기 이른다. 박 담당관은 경찰에게 관찰될 수 있고 냄새가 유출되는 실내화장실을 사용하도록 한 강제가 인권침해라는 헌법재판소 판례 등을 포함한 결정문을 작성했으며, 인권위·인사혁신처·행정자치부로 진정까지 제기했다. 이후 인권위는 침해구제위원회를 통해 해당 사건을 인권침해로 인정하는 결정을 했다. 인권계는 지역 인권기구의 움직임으로 우리 사회 전반의 인권 향상과 제도를 변혁한 유일무이한 사례로 부른다.

기간제라는 이유로 미혼임에도 불구하고 주민센터 공무원들에게 '~여사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려야 했던 노동자. 도서관에서 무슨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았는데 쫓겨나야 했던 노숙인. 공공수영장 강습이 주부와 여성으로 한정돼 참여를 거부당한 남성 시민. '모든 국민은 평등하고, 누구든지 신분·성별 등에 의해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아래, 누군가의 소중한 인권을 지키기 위한 박 담당관의 활동은 늘 분주했다. 권한 부족 등 어려움이 있어도 포기한 적이 없다. “인권담당관은 행정 전반을 아우를 수 있는 권한과 지위가 부여되어야 하며, 행정의 최고 결정권자인 시장 직속 하에 편제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지자체장의 인식이 인권 제도의 커다란 성공 요인으로 작용함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사진=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

박 담당관은 지난 2019년 감사관 조직이었던 인권팀과 통합해 시장 직속 인권담당관으로 임명됐다. 인권센터의 보호관 신분이 기초단체 중 유일했다면, 이 같은 시스템은 광역단체를 통틀어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힘입어 지역 체육계, 사회복지시설, 산하기관, 공직사회 등을 대상으로 종합적인 인권실태조사를 진행하는가 하면 '인권청사(지동행정복지센터)'도 올해 10월 준공하는 성과를 거뒀다. “현재까지는 수원밖에 없어서 안타깝죠. 아직도 지역 안에서의 인권 보호는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각 지자체가 실정에 맞는 인권제도를 단계별로 만들어 나가는 과정을 밟으면, 그 과정에서 지역 구성원들의 인권 공감대가 넓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는 독립된 인권조사기관 설립 등을 추진한 염태영 수원시장을 예로 들면서, 결국 지역 인권은 '지자체장'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안타깝게도, 수원시 인권센터 다음의 두 번째 기초단체 인권기구는 탄생하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 인권사에 '지역'을 새로 써낸 박 담당관. 그의 임기는 2년도 안 남았다. 하지만 아쉬워할 틈도 없다. 자신이 떠난 후에도 지역 인권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가동되도록 토대를 더욱 굳건히 하는 역할에 주력해야만 한다. “사회적으로 인권문제가 자연스러운 시대적 명제로 대두된 것을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만들어온 인권 보호 체계를 지속가능하게 잘 가다듬고 후임자에게 인계하는 것이 남은 시간 동안 제 소명입니다.”

/김현우 기자 kimhw@incheonilbo.com

 

박동일 수원시 인권담당관은…

1964년생으로 연세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2015년 5월 개소한 수원시 인권센터 초대 시민인권보호관으로 부임, 수년 간 인권침해 구제활동 뿐만 아니라 제도개선도 일구면서 지역 인권발전에 크게 기여 했다는 평가다.